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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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일뿐이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 그들은-사람들은- 변한다고. (p.202)

이 소설은 기억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다.

소설 속 ‘나’는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스티븐과 진을 다시 만나게 한다. 40년이 지난 뒤에도 사랑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설정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에까지 이른다. 이후 이들은 번갈아 가며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고, 나는 그 말을 다른 쪽에 전하지 않은 채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끝내 그들의 결혼은 파국을 맞는다.

스티븐과 진이 떨어져 있던 40년 동안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시간을 건너뛰고 과거와 같은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자체가 얼마나 로맨틱한 상상이었는지, 소설은 조용히 드러낸다. 감정에 다시 불이 붙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지만, 그 불이 식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공백의 시간 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상대방의 삶과 변화. 화자는 결국 자신이 “삶과 픽션을 혼동하고 있었다”(p.184)고 고백한다.

_ 그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없는데 그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p.182)

사람은 모든 기억을 붙잡을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과 한 순간은 사실 찰나에 불과하다. ‘나’라는 정체성은 편집된 기억 위에 세워진다. 타인은 나와 모든 시간을 공유하지 않기에, 나 역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회사에 처음 입사하던 순간은 또렷이 기억나지만, 그 이후 몇 년간의 일상은 흐릿하다. 오히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휴직했던 시기의 기억이 더 선명하고, 복귀 후의 시간은 다시 희미해진다. 지금의 휴직 또한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또렷한 기억으로 남게 될까.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정작 남아 있는 기억은 이토록 적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으로 남기고, 무엇을 잊는 걸까. 어제와 같은 오늘은 잊히고, 그렇지 않은 날들만 기억에 남는다면,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가 오히려 행복한 시간은 아닐까. 아니면 그 평범함을 깨뜨리는 날들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일까.

줄리언 반스가 스스로 마지막 소설이라 말한 작품. 기억과 사랑, 그리고 삶의 공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읽어보시기를.

_ 사람들 말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잊고 있던 어린 기억이 자주 돌아온다. 동시에 중간에 낀 세월을 쥐는 힘이 약해진다.(중략) 우리 삶은, 다시 말해서,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이야기로 축소될 것이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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