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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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꾸준히 읽는 애독자로서, 이 책은 더할 나위없이 반가웠다. 14명의 사람들,
의젓한 마음과 의젓한 인생. 인터뷰집을 즐겨읽는다면,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책. <위대한 대화>를 읽었다면 이 책도 당연히 읽어야 할 책! 김지수님의 인터뷰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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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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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이면 나는 내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으며, 그 누구와도 내 자리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요란하게 웃고, 이제 내가 울지 않아서 기쁜 이다는 미소를 짓는다. 나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지만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다가 있고, 이다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p.105)


알콜중독 엄마, 
어린 동생 이다, 
이 둘을 모두 보살펴야 하는 틸다.

틸다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수영장. 
레인을 스물두 번 수영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일상을 마주한다.

틸다가 동생을 돌보면서 느끼는 책임감, 
한편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 
그 사이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는다. 
그것이 인생 아닐까.

알콜중독같은 극한 환경은 아니더라도, 
가정환경 때문에 무언가 하고 싶었던 것을 접거나
마음내키는대로 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나 역시 그러한 시절이 떠올랐다. 

허영된 마음에 부푼 아빠는 사기를 여러번 당했고, 우리의 화살은 늘 아빠를 향해 있었다. 
피폐했던 마음과 여유가 없었던 우리.

엄마와 나는 언제나 각자의 몫을 해냈다. 
서로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하게. 

다행히도, 
엄마는 언제나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내가 엄마한테 그런 존재일까. 

이제는,
강인했던 엄마가 한없이 여린 사람으로 보인다.
튼튼한 갑옷을 껴입은 줄 알았던 엄마가
사실은 나약한 마음을 감추기위해서였다는 것,
나중에서야 알았다. 

서로의 보호색이 되었던 우리 둘. 
상처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고, 
나의 단단한 마음은 지난 시절의 흔적 같은 거다. 

틸다와 이다가 서로를 의지했던 것처럼, 
이다가 어느새 커서 엄마에게 맞서 말을 하고,
틸다가 자기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틸다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렸고, 
나는 틸다만큼 이다를 응원했다.
이다는 그 누구보다 단단하게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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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스스로 끄는 아이 - 통제와 허용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모님을 위한 가이드
이윤정 지음 / 미류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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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이하 아이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아이들은 아직 평가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판단보다 ‘감정’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바라보죠. 재미있으면 좋은 것, 익숙하면 좋은 것으로 생각해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콘텐츠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p.49)


우리 아이들에게 최근 유튜브 영상을 금지했다. 
무비판적으로 영상을 보다 보면 부적절한 영상을 접하게 되고, 그 영상이 잔상으로 남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족만의 시간을 더 많이 만들고 대화를 나누자, 
가족 모두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아이들은 동의했고, 그렇게 3주가 지났다.

이제 대화의 중요성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동안 나 스스로 대화보다는 숙제 확인과 
채근만 하지 않았는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나는 아이랑 대화하는 사람이야. 다시 해보자’라고요. 이 말은 스스로에게 거는 세뇌에요. 끊임없이 유혹을 걸어오는 미디어에게서 아이를 지키려면, 차단하고 혼내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다시 가르치고 다시 이야기해야 해요. (p.181)

이 책은 아이와 어떻게 대화하고 어떤 규칙을 만들면 좋을지 이야기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룬 책이 있었던가.

예를 들어 
가족만의 미디어 문화를 어떻게 만들지, 
미디어는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이런 팁들은 유용하고 실천해볼 만하다.

또한 아이에게 꼭 알려주어야 하는 것들,
예를 들어 미디어는 의견에 가깝다는 것. 

나 역시 매번 아이에게 말하지만,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여러 번 말해야 한다.
부모도 지치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디어는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사실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죠. 사실을 보도하는 뉴스도, 나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적는 일기도 모두 재현이에요. 어떤 경험이든 기록은 취사 선택되어 나타나요. 미디어에서 제공되는 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의견’에 가깝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해요. 이것이 비판적인 사고의 시작이기도 하죠. (p.50)

미디어와 함께 살아갈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자기조절과 비판적 사고다.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를 겪으며 체득했겠지만,
지금 아이들은 일찍부터 미디어와 함께하니 부모가 만들어주는 환경부터 그 시작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지나칠 수 없다. 

<불안세대>를 읽고 아이를 온라인 세상에서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고민했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덧. 아이들은 유튜브 없이도 잘 적응하고 있다. 끝말잇기를 즐겨 하는데, 게임에서 이기려고 보리국어사전을 펼쳐 단어를 찾는 아이를 보면, 유튜브를 본 것도 결국 내가 문제였다. 
책을 읽으며 반성했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런 종류의 책을 다수 접했었는데 문제인식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챕터에 살짝 방법을 열거하다 끝나는 식이라 아쉬웠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부모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부모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책!
학교에서 미디어의 부작용이나 맹목적인 맹신에 대한 주의를 주었으면 하는데, 오히려 관대한 편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었다. 결국 부모가 그러한 부분을 채워줘야 하니, 이런 책으로 아이들의 자기조절과 비판적 사고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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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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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몸에 붙어 있었고,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p.69)

팔, 다리가 사라졌을 때 겪는 환지통처럼,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바움가트너,
아내가 쓴 글, 때로는 그가 쓴 글을 통해
이야기는 연결된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 
읽는 맛을 더했다.

자전적 글에는 당연히 강렬한 기억이 글로 남을테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커다란 단초가 될 수 있으니까.

<프랭키 보일>은 애나의 깊은 상처였으며,
<자연 발화>는 남편과의 사랑이야기였다.

너무 아픈 기억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글로 남기고나면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바움가트너는 이러한 글을 읽으며
아내를 애도하고 기억한다.

소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에서도
삶의 마지막 날, 그동안 썼던 장부를 들추며
그동안 만났던 사람을 추억한다.

어쩌면 남겨진 기록들은 큰 힘을 발휘한다.

휘발되는 기억의 파편을 붙잡으며
좋았던 어느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이것은 바움가트너에게 인간의 역사에서 벌써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고 어떤 사람도, 심지어 가장 고립된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일 뿐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도 마찬가지인데, 만일 프라이데이가 나타나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p.171)

바움가트너 어머니 이야기에서도,
어떠한 순간마다 구세주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게 신기했지만, 
이 역시 인생의 보편적 진리 아니었을까.

바움가트너가 마주한 친절한 검침원,
아내 애나의 작품을 연구하고 싶다는 코언,
사람은 그렇게 연결되고 인생은 계속된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아프지만,
또 다른 누군가로 인해 또 살아가게 된다.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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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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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은 대단히 인간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지루함을 경험할 때 무엇에 의존하는가는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받으며, 시대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 매개된 방법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매개되지 않은 틈새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p.147)


지루함을 없앤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얻은걸까?
효율성을 얻었고 집중력을 잃었다.
쾌락을 얻었고 인내심을 잃었다.
나의 취향을 아는 건 나일까? 알고리즘일까?
결국 남는건 뭘까.

고쿠분 고이치로의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에 이러한 문장이 있다.

“지루함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디까지나 자신과 관련된 물음이다. (p.326,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2014)

이 책도 맥락을 같이 한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 인내, 지루함, 백일몽,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다.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p.169)

지루함을 알 틈이 없는 아이들,
공상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무언가에 몰입하는 시간이 충분할까?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패스트패스로 기다리지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요즘 보이는 새로운 신호등 아래 빨간색 숫자는 언제 신호가 바뀔지 표시해준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술은 우리의 사고, 습관을 변화시킨다.
기다림의 미학은 더이상 미학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이 데이터가 되고 우리의 세계가 감성보다는 센서에 의해 움직인다면 우리의 경험은 더 이상 고유한 것이 아닌 단순한 정보가 된다. 우리의 감정이 데이터로 변환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무엇일까? 또한 감정 경험이 표준화되면 어떤 위험이 있을까? (p.211)

블랙미러 시즌7 <보통 사람들>을 보면서 섬뜩했던 장면은, 감정까지 구독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뇌 손상으로 수술을 받게 된 아내가 나중에는 기쁨, 평온 등 감정 상태를 설정할 수 있는 프리미엄 기능까지 가능해지는 장면.

기술은 인간의 어디까지 넘나들게 될 것인가? 인간 고유의 경험이 모두 데이터화되고 콘텐츠화된다면, 궁극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결코 블랙미러 이야기가 먼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은 책이었다.

최근 범람하는 미디어 전시를 보면서, 과연 이것들이 크나큰 감동을 주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SNS로 공유하기 위해 모두가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는 모습을 보며,

보여줄 수 없는 경험은 소비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 같지만,
공허함은 더 커지는 것 같은 느낌.

한편으로는,
기술이 경험을 대체할수록, 사람들은 실제 경험에서 더욱 엣지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그리고 내 생각엔 그 엣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터치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를 알아가야 할지 어떠한 사고방식과 습관을 갖아야할지,
생각해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공상에 빠져도 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모든 틈을 일, 일종의 소통, 짧은 오락거리들로 채우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제하고, 속도를 높이고, 정량화하는 방법을 찾아버렸기 때문이다. (p.33)

책날개만 봐도 충분히 읽어보게 된다. "책을 읽지 않고 기기에게 요약해달라고 하는 일은 독서의 종말을, 문서 작성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일은 생각의 종말을, 지시어만을 입력해 그림을 얻는 일은 창작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의 영역이라고 불렀던 모든 경험을 기술에 맡기게 된다면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 문구를 보고 읽지 않을 수 없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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