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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평점 :
이런 순간이면 나는 내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으며, 그 누구와도 내 자리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요란하게 웃고, 이제 내가 울지 않아서 기쁜 이다는 미소를 짓는다. 나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지만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다가 있고, 이다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p.105)
알콜중독 엄마,
어린 동생 이다,
이 둘을 모두 보살펴야 하는 틸다.
틸다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수영장.
레인을 스물두 번 수영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일상을 마주한다.
틸다가 동생을 돌보면서 느끼는 책임감,
한편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
그 사이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는다.
그것이 인생 아닐까.
알콜중독같은 극한 환경은 아니더라도,
가정환경 때문에 무언가 하고 싶었던 것을 접거나
마음내키는대로 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나 역시 그러한 시절이 떠올랐다.
허영된 마음에 부푼 아빠는 사기를 여러번 당했고, 우리의 화살은 늘 아빠를 향해 있었다.
피폐했던 마음과 여유가 없었던 우리.
엄마와 나는 언제나 각자의 몫을 해냈다.
서로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하게.
다행히도,
엄마는 언제나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내가 엄마한테 그런 존재일까.
이제는,
강인했던 엄마가 한없이 여린 사람으로 보인다.
튼튼한 갑옷을 껴입은 줄 알았던 엄마가
사실은 나약한 마음을 감추기위해서였다는 것,
나중에서야 알았다.
서로의 보호색이 되었던 우리 둘.
상처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고,
나의 단단한 마음은 지난 시절의 흔적 같은 거다.
틸다와 이다가 서로를 의지했던 것처럼,
이다가 어느새 커서 엄마에게 맞서 말을 하고,
틸다가 자기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틸다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렸고,
나는 틸다만큼 이다를 응원했다.
이다는 그 누구보다 단단하게 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