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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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몸에 붙어 있었고,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p.69)

팔, 다리가 사라졌을 때 겪는 환지통처럼,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바움가트너,
아내가 쓴 글, 때로는 그가 쓴 글을 통해
이야기는 연결된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 
읽는 맛을 더했다.

자전적 글에는 당연히 강렬한 기억이 글로 남을테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커다란 단초가 될 수 있으니까.

<프랭키 보일>은 애나의 깊은 상처였으며,
<자연 발화>는 남편과의 사랑이야기였다.

너무 아픈 기억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글로 남기고나면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바움가트너는 이러한 글을 읽으며
아내를 애도하고 기억한다.

소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에서도
삶의 마지막 날, 그동안 썼던 장부를 들추며
그동안 만났던 사람을 추억한다.

어쩌면 남겨진 기록들은 큰 힘을 발휘한다.

휘발되는 기억의 파편을 붙잡으며
좋았던 어느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이것은 바움가트너에게 인간의 역사에서 벌써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고 어떤 사람도, 심지어 가장 고립된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일 뿐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도 마찬가지인데, 만일 프라이데이가 나타나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p.171)

바움가트너 어머니 이야기에서도,
어떠한 순간마다 구세주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게 신기했지만, 
이 역시 인생의 보편적 진리 아니었을까.

바움가트너가 마주한 친절한 검침원,
아내 애나의 작품을 연구하고 싶다는 코언,
사람은 그렇게 연결되고 인생은 계속된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아프지만,
또 다른 누군가로 인해 또 살아가게 된다.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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