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시작한 불은 책으로 꺼야 한다 - 박지훈 독서 에세이
박지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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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생명체란 말인가. 이 물음에 대한 수전 올리언의 대답은 ‘예스’다. 그는 “단어와 생각들이 담기면 책은 더 이상 종이와 잉크와 접착제가 아니다. 책은 인간과 비슷한 활기를 띤다”(75쪽)고 적어놓았다. (p.40)

독서 에세이라고 당당하게 적혀 있는 것부터 이미 내공이 느껴졌다.

내가 이미 읽었던 책이 나오면 옛 기억을 더듬게 되고, 읽지 않은 책이 나오면 괜히 질투가 났다.

책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이야기들이 좋았다.
책 속 문장도, 그 문장을 풀어내는 해석도.

1. 엄마
자식이 생기고서야 비로소 엄마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살면서 불러온 ‘엄마’라는 호칭은 어쩌면 껍데기에 불과했다. 지금도 나는 우리 엄마처럼 내 아이들에게 하지 못한다.

내리사랑에도 온도 차이가 있다는 걸,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가 되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미묘한 온도 차이를.
물론 그 미묘한 내리사랑의 미지근함도 부모를 향항 효심에 비하면 뜨겁겠지 싶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처지가 되면 절대적 존재이던 엄마도 애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것. 제 부모를 자랑하지 않는 자식이야 없겠지만 부모의 뜨거운 내리사랑에 견준다면 자식의 효심이란 미지근할 수 밖에 없다는 것. (p.92)

2. 자식
남편은 내게 곧잘 말한다. 우리에게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우리와 함께하지 않을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시기를 “우리 사진 많이 남겨놓자”라는 말로 붙들고 있다.

지구의 엄청난 중력 탓에 달이 공전을 반복하듯, 자식 역시 부모의 중력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자녀는 부모에게 달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서서히 멀어져 또래 집단의 중력장에 포섭돼버리는 미지의 행성이다. (p.234)

3. 회사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가고, 진짜 공론장이 펼쳐지는 회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담긴 보고서를 쓰고,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도 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어갈 수 있다면 과연 좋은걸까.

그런데 사실,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이 시대에 이렇게까지 안전하다면 오히려 수상한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이상하던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적대적이고 폐쇄적인 집단들이 존재하는 상태를 일컬어 ‘반향실 echo chamber’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공론장은 닫히고 반향실만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메아리가 돼서 돌아오는 내집단 구성원의 목소리뿐이다. (p.278)

독서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문장 수집가가 아닐까.

이 책에도 공유된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그래서 “이건 꼭 읽어봐야지” 싶은 책들이 줄줄이 생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책이 또 다른 책을 부르는 책이다. 전혀 안전하지 않은 책이다. ㅎㅎ

그래서 더더욱 강력 추천하고 싶다.
작가님의 독서 에세이, 그다음 편도 꼭 읽어보고 싶다.

소통은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나이가 들수록 중히 여겨야 할 것은 ‘듣기’다. 핵심은 듣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 잠자코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듣기의 기술 = 질문의 기술’이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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