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바케 - 에도시대 약재상연속살인사건 샤바케 1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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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상한 요괴소설이다. 소심하지만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이상한 면으로 대담하고, 어쩔 도리 없이 요괴들에게 시달리는 폼이 꼭 백귀야행을 보는 것 같다. 백귀야행의 에도시대 소설판이랄까. 나는 일본사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아, 그랬나보다 하고 열심히 읽었다. 재밌게 보긴 했지만 그닥 인상 깊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게 도련님의 출생비밀이라는 것도 생각외로 아, 그런가보다.. 하는 느낌이었고, 병석에 누워서 이리저리 추리해내는 도련님 모습이랑, 그게 또 죄다 들어맞는게 뭔가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다닥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었달까.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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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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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야 겨우 읽게 되었다. 에르큘 포와르는 평범한 정의로운 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범인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그것이 그당시의 생각할 수 있는 정의였을까. 베로날로 하자고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사람도 오싹했다. 원래 알고 있던 반전이었지만 마치 망량의 상자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약한 마음이 그런 비현실적인 일을 저지르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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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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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과 느낌이 비슷하다. 뉴욕 삼부작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다. 풍자극이라고 말은 하지만 풍자의 날카로움보다 삶에 대한 따스한 관조가 더 눈에 띈다. 교외의 한적한 주택, 평화로운 풍경은 꿈에 그리는 이상향이다. 하지만 서로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정신 하나 없는 뉴욕의 브루클린 같은 곳이 이토록 아름답고 생동감있게 그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스노우캣의 뉴욕이든 폴 오스터의 뉴욕이든 뉴욕은 참 신기한 도시로구나.

엉망진창으로 실패해온 사람들이 일어서는 이야기는 언제라도 감명깊다. 그것이 사회에서 말하는 대단한 성공은 되지 않더라도 삶 자체가 기적처럼 여겨지는 순간은 언젠가 오는 법이다. 그래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살아온 과거가 아무리 바보 같았더라도, 구제불능이었던 시절이 있었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좀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팠던 순간들이 축복처럼 느껴지는 어떤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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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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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을 가진 두 소년과 중년스럽지 않은 귀여움을 가진 중년 기자의 러브 로망...(퍽)은 아니고, 일단 미스테리물이다. 그렇지만 미스테리 자체로는 조금 헐거운 구석이 있다. 오히려 중점적으로 볼 만한 부분은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의 감정선을 그려내는 것. 흔한 패턴이긴 하지만, 뭐랄까 설득력있게, 동감할 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어서 좋았다. 화자의 러브스토리도 어쩔줄 몰라하는게 눈에 보여서 귀여웠다. 사람들의 어두운 부분을 전부 보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소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조건적인 희생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행할 수 있었던 희생이란 것.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 능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이런 저런 가능성을 추측해나가는 것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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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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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슴둥~.
네 장으로 나눠져서 첫번째는 어떤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번째는 어떤 기능이 과잉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번째는 이제까지의 기계적인 뇌과학 체계로는 분석할 수 없는, 영혼이 관련된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네번째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화성의 인류학자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사람은 환자에 대해 그의 '병'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기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임상사례집(실제로 여기에 실린 글들은 의학 잡지등에 기고된 글들이다)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문학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걸 모두 병에 걸렸다고, 고쳐야 하는 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천재조차도 일종의 병증으로 취급되고 말테니.
여기 나오는 환자들은 자신의 이상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알면서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고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현실 생활에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가끔 있으면(혹은 적당히 조절만 하면) 도움이 되는 '병'도 있다! 하지막 역시 병은 병이라 얽매이고 정체성을 상실하고 불행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반대로, 억지로 보통 사람들에 끼워맞추려고, 치료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 정체성을 파괴하고 무기력한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으로 무난하게 생활이 가능한 무미건조한 인형같은 사람과, 활력에 넘치며 자신만의 가치를 간직한 사회부적응자 중에 어느 쪽이 옳은 걸까? 아니 사실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부적응자이면서 무기력하다가 어느 한 순간만 반짝 진실되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슬픈 일이지만 어딘가 완전히 부서져버려서 더이상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치료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어떻게든 생활이 가능하지만 무기력한 인형 같은 사람'과 '자신만의 가치를 갖고 있고 무의식중에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냥 정신병자인 사람' 정도이겠지. 어느  쪽이 나을까. 올리버 색스도 조금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사회적으로 적응도 잘하고 활력도 넘치고 정체성이 확고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야... 그렇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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