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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다 읽었슴둥~.
네 장으로 나눠져서 첫번째는 어떤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번째는 어떤 기능이 과잉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번째는 이제까지의 기계적인 뇌과학 체계로는 분석할 수 없는, 영혼이 관련된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네번째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화성의 인류학자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사람은 환자에 대해 그의 '병'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기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임상사례집(실제로 여기에 실린 글들은 의학 잡지등에 기고된 글들이다)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문학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걸 모두 병에 걸렸다고, 고쳐야 하는 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천재조차도 일종의 병증으로 취급되고 말테니.
여기 나오는 환자들은 자신의 이상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알면서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고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현실 생활에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가끔 있으면(혹은 적당히 조절만 하면) 도움이 되는 '병'도 있다! 하지막 역시 병은 병이라 얽매이고 정체성을 상실하고 불행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반대로, 억지로 보통 사람들에 끼워맞추려고, 치료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 정체성을 파괴하고 무기력한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으로 무난하게 생활이 가능한 무미건조한 인형같은 사람과, 활력에 넘치며 자신만의 가치를 간직한 사회부적응자 중에 어느 쪽이 옳은 걸까? 아니 사실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부적응자이면서 무기력하다가 어느 한 순간만 반짝 진실되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슬픈 일이지만 어딘가 완전히 부서져버려서 더이상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치료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어떻게든 생활이 가능하지만 무기력한 인형 같은 사람'과 '자신만의 가치를 갖고 있고 무의식중에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냥 정신병자인 사람' 정도이겠지. 어느 쪽이 나을까. 올리버 색스도 조금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사회적으로 적응도 잘하고 활력도 넘치고 정체성이 확고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야... 그렇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