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주말 동물원에 가게 되었다. 낯설었다. 머릿속에서의 동물원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기에 비 오는 날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걱정이 많았다. 혼자도 아니고 17개월짜리 아기를 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내야 했다.  가야만 했다. 미리 버스를 예매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깥나들이를 좋아하는 아들을 집에 콕 박혀서 돌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할 활동이 필요했다.

  비 오는 날의 동물원이 궁금해졌다. 평소 ‘드르렁’ 잠만 자는 모습이 아닌 상쾌한 비를 맞으며 신나게 활개 치는 호랑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우려와 달리 하루가 알찼다. 말을 좋아하는 아이덕분에 회전목마를 세번 연달아 탔고 그동안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체험 활동도 빠짐없이 즐겼는데 줄 서는 과정도 불편하지 않았다. 대기시간을 잡아먹는 적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진하는 동료로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기대와는 달리 동물들도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를 싫어했다. 모퉁이로 피해서 우리를 열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반평생 박혀있었던 동물원에 대한 이미지를 바꾼 경험이었기에 인상에 남았다. 그동안 모험 대신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혁신적일 만큼 새로워야 생각했기에 힘이 들었고 무엇보다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했기에 익숙함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 변화는 새롭지는 않았기에 행동할 수 있었다. 바라봤던 것에서 날씨만 바꿨을 뿐이다. 글자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인생을 입체적으로 쌓을 수 있었던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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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준비생의 도쿄 - 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퇴사준비생의 여행 시리즈
이동진 외 지음 / 더퀘스트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한다. 대게 관광이 목적이다. 일부는 업무 목적으로 방문한다. 혜안을 얻기 위해서다. 선진 도시를 벤치마킹하며 사업적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그들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구상하던 사업을 구체화하고 싶어 도쿄로 떠났다. 도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5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도쿄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발견, 차별, 효율, 취향, 심미) 사례를 통해 사고 과정을 배워보고자 읽었다.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조깅족을 위한 건강식을 판다. 그런데 식당에는 정장을 입은 손님들이 더 많다. 오피스 빌딩에 있기 때문이다. 표적을 좁힐수록 넓어졌다. 역설의 현장이다. 식당은 '운동'을 정체성의 한 축으로 삼았다. '체대 학생'들을 위한 식당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훈련한 후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시작이었다. 스포츠 영양학에 기반을 두고 고안한 검증된 식단으로 차별화했다. 그 후 유명한 조깅 코스를 중심으로 점포를 확장했다. 식당과 함께 조깅족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조깅 전후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탈의실이나 운동복 등을 대여했다. 전문성에 기반을 둔 대중성은 막강했다. 높은 기준의 고객을 만족시킨 저력은 대중의 신뢰로 이어졌다. 오피스 빌딩에서도 '애슬리트'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다.
  고층 빌딩의 전망은 고급 레스토랑과 바를 위한 전유물일까? 롯폰기 모리타워 49층에 공부하고, 토론하며,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카데미 힐즈'는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라 불린다. 단순히 높은 곳에 있다고 지성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생각을 트이게 하는 필요조건이긴 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수직 도시론'이라는 이론을 현실로 구현했다. 수직 도시론은 탈공업사회, 지식산업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공간 디자인이다. 공업사회에서는 일터와 주거가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식산업 사회에서는 일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여가도 중요하다. 휴식의 기능도 있지만 일을 위한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직도시론은 결국 일터, 주거지, 놀이시설, 휴식 공간의 경계를 없애서 지식산업사회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막대한 투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을 10년 이상 설득했다는 점에서 부동산 개발의 철학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그동안 고층 빌딩의 최상층부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월간 회원 수만 삼천여 명. 기존의 방식에도 탈피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증명했다. 결국 무엇을 할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였다.
  손님이 요리하는 튀김 가게가 있다. 2,500엔. '쿠시야 모노가타리'에선 90분 동안 꼬치 튀김과 대게를 무한정 먹을 수 있다. 손님도, 가게도 즐거울 수 있는 곳이다. 정교하게 설계한 비즈니스 모델 덕분이다. 뷔페, 셀프, 튀김의 3요소를 정교하게 디자인하였다. 만약 낱개로 사 먹었다면 쿠시아게에만 거금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식당은 '튀김'이라는 핵심 프로세스를 고객에게 내주었다. 이를 통해 인건비뿐 아니라 책임에 대한 압박도 덜 수 있다. 손님은 직접 한 요리에 대해서 관대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일을 시키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하면 된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중 '신나는 페인트칠'의 마지막 문장이다. 동기부여에 대한 삶의 지혜를 잘 보여준 사례이다.

  여행 중 행선지에 독일이 있었다. 중세의 성으로 채워진 거리에 익숙한 사무실이 보였다. 업무로 사용하는 솔루션을 만든 곳이다. 들어갈까 고민했다. 사장들의 해외출장을 모방하고 싶었다. 벤치마킹을 해서 발표를 하는 상상을 했다.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다. 사업적으로 풀어낼 수 없었다. 경험도, 공부도, 고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들어갔을까? 아니다. 부족하다. 다만 책을 통해 사업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이 누군가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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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싶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입원하고서부터다. 췌장염으로 한 달 넘게 금식했다. 체중이 반 이상 빠졌다. 병상에서 음식 관련 영상을 즐겨 보았다. '먹으면 힘이 날까?' 보양식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두 시간 동안 연달아 나오는 중식을 먹는 영상을 보았다. 그중 '고법불도장'이 눈에 들었다. 노란 배경, 청룡이 그려져 있는 사기그릇에 담겨 있었다. 국물 한 숟갈만 먹어도 몸이 나아질 것 같았다. 먹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가격과 양 때문이었다. 우연히 부산롯데호텔 뷔페에서 만났다. 요리사가 큰 항아리에서 담아주었다. 배경에는 요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수십가지 재료를 열 시간 이상 우려냈다고 소개했다. 어원처럼 절에서 채식을 하는 승려조차도 육식을 하도록 꾀어낼 수 있을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재료를 두반장에 찍어 먹어 볼 걸 그랬다. 정성은 무시할 수 없었다. 따스한 온기가 작은 토기에 남아있었다. 모처럼 대접받았다.
  남구로역 들깨삼계탕집이 방송에 나왔다. 서울 3대 삼계탕으로 소개했다. 방앗간 운영 경험을 살려 찹쌀, 들깨, 땅콩을 배합했다. 들깨죽을 먹는 듯 걸쭉했다. 고소해 보였다. 기력 풀충전각이었다. 영등포였지만 멀었다. 집 근처 숯불 구이집에서 녹두삼계탕으로 대신했다. 삼과 녹두 향이 진하게 풍겼다. 찢는 순간 촉촉 야들한 살결들이 드러났다. 배 속을 녹두와 찰밥이 가득 채웠다. 양이 많았다. 남은 것을 포장할 정도였다. 든든한 한 끼였다.
  집 근처 맛있는 식당을 찾고 싶었다. '영등포 맛집'을 검색했다. 그 중 영등포시장 근처에 있는 나주곰탕 전문점이 보였다. 친정어머니를 시작으로 60년 전통을 이어가는 집이다. 본점은 나주시청 앞에서 영업 중이다. 본점에서 13년을 운영하던 셋째 딸이 서울에 분점을 냈다. 고기는 한우만 사용했다. 함평 나비골농협에서 공수했다. 김치, 깍두기도 직접 담았다고 설명했다. 자부심이 넘치는 문구였다. 믿음이 갔다. 곰탕을 시켰다. 맑은 국물이었지만 칼칼했다. 고춧가루, 후추 때문이다. 고기가 부들부들 촉감이 좋았다. 다음에는 수육 한 접시를 먹고 싶다.
  왜 보양식을 먹고 싶었을까? 힘내고 싶었다. 보상이 필요했다. 최근 무기력했다.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리워드가 없었다. 게으르다고 비난했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다그쳤다. 몸은 축났다. 내일 점심은 보양식이다. 격려의 의미로. 지금껏 잘 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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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8-1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마로 고생중이시네요. 건강 꼭 회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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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고 싶은 선물이 생겼다. 부들부들한 검정 양피, 속은 두툼한 미색의 고급 양장지, 이를 묶어주는 고무 밴드로 구성된 수첩 그리고 만년필이다. 신간을 구경하려 교보문고에 갔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독서 용품에 관심이 갔다. 몇 달 만의 퇴원 후 보상을 원했다. 망설여진다. 써 본 적이 없다. 비싸다. 굴러다니는 볼펜이 한가득이다. 꾸준히 쓸 수 있을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는 도구도 바뀌었다. 일상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모았다 필요할 때 꺼내고 싶었다. 첫 선택은 구글 노트북이었다. 검색이 쉬웠다. 유지보수 걱정도 없었다. 서비스 종료 전까지. 그 후 블로그로 이전하였다. 수일이 걸렸다. 일일이 올려야 했다. 글의 제목을 짓기 어려웠다. 구글 노트북은 제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공개형과 공개형으로 나누어 운영했다. 비공개형은 서류 등 타인에게 노출되면 안 되는 항목 등을 담았다. 공개형은 인터넷 서점 블로그를 활용했다. 당시 추천을 받으면 적립금을 받을 수 있었다. 꽤 쏠쏠했다. 쓰임이 다하면서 생명력을 잃었다. 방금 비공개형 블로그가 사라진 걸 알았다. 아직 서점 블로그는 살아있다. 생각이 나면 다시 글을 올렸다. 오래가지 못했다. 그동안 올렸던 글들의 발행일이 보였다. 띄엄띄엄 간극이 컸다.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지층처럼 보였다.
  요즘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남긴다. 간단했다. 다른 기기와 동기화가 되었다. 부족함을 느꼈다. 노션 등 요즘 대세인 서비스를 배워볼까 고민했다. 필기, 일정 등을 한 공간에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멋져 보였다. 거부감이 들었다. 복잡해서? 언젠가 사라지기 때문일까?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투병이 계기였다. 시간을 자산으로 남기고 싶었다. 후회된다. 회상할 추억이 없었다.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써야 한다. 핸드폰에서라도. 간단하게라도. 그 후 수정하면 되니까. 쓰기 전과 후는 달랐다. 그동안 나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취향이 없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몰랐다. 놀랐다. 감정이 살아났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려웠다. 그때마다 물었다. 어디서 왔는지? 답변을 생각했다.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자신을 알아가고 있다. 오직 나만을 위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유일한 순간. 신성한 의식에 걸맞은 도구를 갖고 싶다. 주술적 힘을 발휘해 글이 잘 써지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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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공간들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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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방은 아픈 손가락이다. 베란다에서 동떨어졌고 냉난방이 되지 않아 고민이 많다. 수차례 평면의 해제와 변형이 이뤄졌다.
  시작은 서재였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업무를 쾌적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깔끔한 데스크테리어를 원했다. 책상 공간을 아끼고 싶었다. 양쪽에 모니터암 두 대를 설치했다. 왼쪽에는 노트북 거치대를, 오른쪽은 모니터를 달았다. 마치 두 대의 화면이 공중에 떠 보이는 효과를 만들었다. 책상 하판 아래쪽에 그물망을 설치하여 전선, 어댑터 등 지저분한 장비들을 숨겼다. 상판에는 회색의 데스크 매트를 깔아 단정하게 연출했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공기가 통하는 사무용 의자를 구매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쓰지 않는 날이 많았다. 결국 왼쪽을 담당했던 노트북 거치대와 모니터 암은 중고 거래로 팔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기 방으로 바뀌었다. 독립수면이 목표였다. 옷장에는 아기 옷들로 채워졌다. 바닥에 놀이용 매트를 깔았다. 그 위에 중고거래를 통해 얻은 침대와 장난감들로 채웠다. 책상 위에는 콧물 빼는 기계, 기저귀 등 아이에게 필요한 용품으로 채웠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굴러다니며 자는 습관 때문에 침대를 처분해야 했다. 잘 때 돌 볼 사람이 필요했다. 냉난방이 안 되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외풍으로 새시도 바꾸었지만 효과가 작았다. 더울 때는 더웠고 추울 때는 추웠다. 결국 아들은 안방에서 잤다. 놀이방 매트 및 장난감들은 거실로 옮겼다.
  그렇게 작은 방은 정체성을 잃어갔다. 책상은 모니터, 마우스, 기저귀 가방, 인형, 램프 등으로 어수선해졌다. 공구놀이세트를 옮기지 못했다. 다른 구석에는 청소기, 충전대가 있었다. 아기가 잘 때 야식을 먹고 쉬었다. 정리가 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습하고 더워서 불쾌했다.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할까도 생각했지만 쉽지 않다.
  이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면적도 작고 쾌적하지 않은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왜 이 공간을 좋아할까? 나를 닮았기 때문이다. 개성이 없고 부족하다. 미워 보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좋든 싫든 나의 공간, 일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잡다한 물품이 쌓여있는 책상부터 치우고 선반을 가져와 보려 한다. 해제와 변형이 계속 될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계속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할 것이다. 어제보다 선명한 자아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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