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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공간들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1월
평점 :
작은 방은 아픈 손가락이다. 베란다에서 동떨어졌고 냉난방이 되지 않아 고민이 많다. 수차례 평면의 해제와 변형이 이뤄졌다.
시작은 서재였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업무를 쾌적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깔끔한 데스크테리어를 원했다. 책상 공간을 아끼고 싶었다. 양쪽에 모니터암 두 대를 설치했다. 왼쪽에는 노트북 거치대를, 오른쪽은 모니터를 달았다. 마치 두 대의 화면이 공중에 떠 보이는 효과를 만들었다. 책상 하판 아래쪽에 그물망을 설치하여 전선, 어댑터 등 지저분한 장비들을 숨겼다. 상판에는 회색의 데스크 매트를 깔아 단정하게 연출했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공기가 통하는 사무용 의자를 구매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쓰지 않는 날이 많았다. 결국 왼쪽을 담당했던 노트북 거치대와 모니터 암은 중고 거래로 팔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기 방으로 바뀌었다. 독립수면이 목표였다. 옷장에는 아기 옷들로 채워졌다. 바닥에 놀이용 매트를 깔았다. 그 위에 중고거래를 통해 얻은 침대와 장난감들로 채웠다. 책상 위에는 콧물 빼는 기계, 기저귀 등 아이에게 필요한 용품으로 채웠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굴러다니며 자는 습관 때문에 침대를 처분해야 했다. 잘 때 돌 볼 사람이 필요했다. 냉난방이 안 되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외풍으로 새시도 바꾸었지만 효과가 작았다. 더울 때는 더웠고 추울 때는 추웠다. 결국 아들은 안방에서 잤다. 놀이방 매트 및 장난감들은 거실로 옮겼다.
그렇게 작은 방은 정체성을 잃어갔다. 책상은 모니터, 마우스, 기저귀 가방, 인형, 램프 등으로 어수선해졌다. 공구놀이세트를 옮기지 못했다. 다른 구석에는 청소기, 충전대가 있었다. 아기가 잘 때 야식을 먹고 쉬었다. 정리가 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습하고 더워서 불쾌했다.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할까도 생각했지만 쉽지 않다.
이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면적도 작고 쾌적하지 않은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왜 이 공간을 좋아할까? 나를 닮았기 때문이다. 개성이 없고 부족하다. 미워 보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 좋든 싫든 나의 공간, 일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잡다한 물품이 쌓여있는 책상부터 치우고 선반을 가져와 보려 한다. 해제와 변형이 계속 될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계속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할 것이다. 어제보다 선명한 자아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