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주말 동물원에 가게 되었다. 낯설었다. 머릿속에서의 동물원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기에 비 오는 날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걱정이 많았다. 혼자도 아니고 17개월짜리 아기를 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내야 했다.  가야만 했다. 미리 버스를 예매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깥나들이를 좋아하는 아들을 집에 콕 박혀서 돌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할 활동이 필요했다.

  비 오는 날의 동물원이 궁금해졌다. 평소 ‘드르렁’ 잠만 자는 모습이 아닌 상쾌한 비를 맞으며 신나게 활개 치는 호랑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우려와 달리 하루가 알찼다. 말을 좋아하는 아이덕분에 회전목마를 세번 연달아 탔고 그동안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체험 활동도 빠짐없이 즐겼는데 줄 서는 과정도 불편하지 않았다. 대기시간을 잡아먹는 적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진하는 동료로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기대와는 달리 동물들도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를 싫어했다. 모퉁이로 피해서 우리를 열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반평생 박혀있었던 동물원에 대한 이미지를 바꾼 경험이었기에 인상에 남았다. 그동안 모험 대신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혁신적일 만큼 새로워야 생각했기에 힘이 들었고 무엇보다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했기에 익숙함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 변화는 새롭지는 않았기에 행동할 수 있었다. 바라봤던 것에서 날씨만 바꿨을 뿐이다. 글자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인생을 입체적으로 쌓을 수 있었던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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