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달려온 삶 김길 목사의 제자도 시리즈 1
김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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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냥 노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

도시에 우뚝 솟은 교회당 건물을 보면서 ‘저 교회의 담임목사는 누구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한다. 교회의 건물만큼이나 담임목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하고 큰 종(?)이라는 공식을 갖고 있다.
명동 한 복판에서 복음을 전하는 김길목사, 그의 교회는 명동, 도시가 교회다. 어마어마하다. 꿈과 같은 이야기일까! 하나님이 그곳으로 부르셨기에 그가 서있다. 도시 한 복판에 서서 복음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의 시선이 바뀔 수 있을까? 우리는 교회 건물이나 건물 안의 교회를 섬기라고 모두 다 부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복음을 위해서 도시사역자로, 상담사역자로, 디자이너로 부름 받아서 그곳을 섬기고, 그곳에서 복음을 증언한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달려온 사람이라고, 증언의 삶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의 시선은 언제쯤이나 바뀔 수 있을까?
“하나님께 순종한 한 사람이 큰 교회보다 더 크다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잊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건물과 프로그램에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있는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분노의 불, 성령의 불
“쇼윈도의 화려함이나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없는 분노가 내 속에서 올라왔다. 불을 지르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만큼 내 안의 분노도 커졌다. 내 안에는 불이 있었다. 분노의 불이...” 분노로 가득한 사람을 성령의 불로 채워주신 하나님은 그를 성령의 음성에 가장 민감한 사역자로 바꾸셨다.
그는 진보정당운동의 깃발 대신 십자가의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든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떠나온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우는 그에게 하나님은, “네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좋은 일인데 울고 있느냐. 눈물을 그치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와 죽음, 형의 비극적인 죽음, 어머니의 처절한 모습을 통해서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이셨다. 새벽마다 올리는 통곡의 눈물, 성경일독을 위한 염원으로 하루에 다 읽어버리는 신약, 죄와 싸우는 모습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죄와 싸우고, 고난과 싸우고, 연약함과 싸우고,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 분노의 불보다 더 뜨거운 성령의 불로 승리할 수 있게 하였다.

영적인 거인
저자는 군대에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거듭남의 체험을 경험한다. 그리고 섬 전도여행의 풍랑 중에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제자훈련학교에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체가 성령으로 하나 되어 훈련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삶의 순간마다 자신을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영적인 거인은 영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예수님을 나타나게 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를“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 혼자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섬길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가셨다.”성숙한 사람 또한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물론 몸의 모든 구성원이 예수님을 잘 알도록 몸을 섬겨 하나가 되게 하는 사람이다.”

고난의 사람
저자는 고난의 사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한 이사와 가족들 간의 갈등, 마음 편히 쉴 곳도 찾지 못하고, 남 앞에서 폼 제고 싶은 양복 한 벌이 없어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외로움은 친구처럼 바짝 따라 붙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을 때 찾아온 것은 높은 교회당 건물이나 담임목사의 자리가 아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환락의 도시 한복판이었다. 이뿐이랴 재정적인 훈련으로 다져진 사람인데, 3,000원짜리 치마를 산 아내마저 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서 회개하며 용서를 빌어야할 판이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담임목사로 오지 말고 바로 개인으로 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셨다. 부흥하며 성장하는 교회를 떠나라는 말씀 앞에서 순종해야 하는 고난은 그를 아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삶의 깊은 고난에서 건져내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고난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했다.”고백한다. 그래서 고난의 순간에는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고난이 올 때마다 난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고난은 힘들지만 순종을 배우게 하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다.”그리고 고난의 순간에는 하나님께 원망 대신에 호소하라고 한다. 왜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 물음에는 답이 없다. 오로지 고난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을 알 뿐이다. “우리가 십자가 고난을 이해할 때,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정서의 핵심인 십자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깊이 알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훈련의 사람
제자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훈련이 있다. 훈련이 필수코스다.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난 이후로 가장 많이 받은 훈련 중에 하나가 재정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돈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그리스도인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재정, 돈에 관한 시련은 있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재정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백하기까지는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한다.
양복과 구두, 노트북 등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야만 했다. 초청받아 간 교회에서 여러 번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필요한 것에 넉넉하게 주셨다고 고백한다. 돈의 수입과 지출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쓸려고 했다는 마음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느껴지지만 작은 액수와 내가 필요한 것에는 당연히 내 뜻대로 하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쓸려는 재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잘 썼을까? 뒤돌아보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재정이 마르면 즉각 뒤돌아보았다. 혹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지출이 있었거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출을 내 마음대로 제한 한 것이 있는지”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15일 동안 건축현장에서 번 돈마저 전부를 헌금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획했던 대로 쓰지 않고 헌금을 하였다. 때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면서 버스 안에서 우는 아내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하나님이 아셔”라고 슬픔으로 위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일한만큼 번다.’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재정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돈은 하나님이 주신다. 내가 일한만큼 버는 것 같아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조금만 하나님을 알게 되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하나님이 돈을 주시는 원칙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필요였다...재정은 나의 능력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항상 필요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주셨다.”이렇게 재정을 채워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다. 그 하나님께서 재정을 책임져 주심을 알 때 우리가 할 일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염려는 끊임없이 올라오는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와 같다고나 할까. 염려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 몰려왔을 때, 아내랑 손을 잡고 ‘우리 염려하지 말고 그 일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면 내 마음엔 염려가 사라지지 않고 저만치서 턱을 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는 슬픈 목소리로‘염려가 되는데 어떻게 염려를 안 해요.’ 한다. 웃으면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훗날 그 일이 염려보다 더 좋은 일로, 하나님의 선한 일로 바뀌어져 있음을 보곤 한다. 그렇다. “염려는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염려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오직 믿음을 없애기만 한다.” 오직 믿음을 없애기만 한다는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가! ‘염려는 오직 믿음을 없애기만 한다.’ 이런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과감하게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염려는 하나님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관계, 모든 상황에서 깊이 신뢰하는 관계를 평소에 구축해야 한다.”

재정의 훈련 못지않게 손해 보는 법을 가르쳐주신 교관이신 하나님의 코칭에 감격을 하고 만다. 옳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생각을 굽히지 않는 것이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분노가 많은 사람은 불의를 보면 잘 참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틀린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MBTI의 16가지 성격유형 중에서 T(Thinking)의 유형의 사람들은 사고와 판단, 비판으로 먼저 인식한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하여도 그렇게 먼저 보이는 것을. 이런 사고와 판단으로 보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는 냉혈인간처럼 쿡쿡 찔러대기만 한다. 저자의 고백처럼 배려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배려의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마치 배려의 마음이 문(門)에 갇혀있어서 문을 열어주기만을 주인님께 바라는 것처럼 사고형의 사람들은 쉽게 배려의 마음을 열지 않고 먼저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배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새벽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시니 사랑을 부어주십시오”라며 눈물로 서럽게 울었다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기질로 사는 것이 사실이지만 거기에 사랑을 더하지 않으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되어서 자기는 정의의 사람, 의의 사도가 되는 것에 만족하겠지만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한다. 결국 그 아픔은 본인에게로 돌아와 황폐해지고 자멸감과 자책감에 울게 된다.
손해 보는 마음을 십자가 정신에 비유했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법을 공부하고, 규칙을 정하는데 십자가의 정신은 목숨까지도 달라고 할 때 내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는 당하겠는데, 바보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참겠는데, 내 가족이 당하는 손해는 참을 수가 없다. 몇 달 전에 아내는 목사요 상담사인 남편이, 채우지 못하는 재정을 채우기 위해 위층에서 하는 부업을 받아서 했다. 목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잠을 자지도 않으면서 했다. 그런데 그 부업을 관리하던 분이 물건을 가지고 간 후에 전화도 받지 않고, 부업해서 주어야 할 돈도 주지 않는 것이다. 너무 화가 나서 다른 전화기로 전화했더니 목소리 확인하고 바로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문자로 그러지 말라고 달래기도 하고, 으름장도 놓았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이럴 때 경찰에 신고를 하여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하나? 며칠 전 거리를 지나는데 우연찮게 우리와 비슷한 피해를 본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 마음 같아서는 결속이라도 해서 고소를 하고 싶었다. 십자가 정신, 손해 보는 마음, 마음이 복잡하다. 제자가 아니라면, 아니 목사가 아니라면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
훈련은 고난과 비슷하다고 소개하면서,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 어려움을 벗어버리고자 하면 훈련은 중단된다. 그리고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훈련을 받아들이고 통과하면 전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훈련의 동기는 무엇이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훈련의 동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훈련해야 한다.”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삶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연약함에 대해서 긍휼한 마음이 들어서 자신이 어떻게 연약함과 싸웠는지 정직하게 나누어서 그들을 세울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조이 도우슨은 훈련에 임하는 제자의 자세에 대해서 ‘훈련을 받아들이고, 훈련을 받을 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지 말고, 이 훈련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질문하라고 한다. 그래서 훈련을 통해서 영향력 있고,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훈련은 하나님께서 ‘완전하고(integrity), 손이 능숙해지는(skillful)’ 제자로 다듬어 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에 단련이 되거나 완수해 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훈련은 넘어짐의 반복이며, 십자가를 배우는 시간이다.” 그래서 훈련을 받다가 “넘어졌을 때 기다려야 하고, 배울 것을 배우고 깊이 깨닫고 다시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개념을 분명하게 잡기 전까지 기다려야 한다.”

연약함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잘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오랜 세월을 거쳤든 바로 생기게 된 것이든 간에 연약함이 있다. 연약함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 그 연약함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약함을 치유 받고 훈련받은 사람들이 배려하고 부딪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물론 본인은 “연약함이 드러날 때마다 나의 연약함을 짊어지신 예수님께 들고 나가야 한다.” 예수님은 반드시 그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아름다운 심성으로 바꾸어주실 것이며 만져주실 것이다. 정직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 놓는 훈련이 필요하다. 얼마 전 TV에서 하는 부부치료 장면을 시청하게 되었는데, 위기 부부들이 손을 맞잡고 서로의 연약함을 드러내 놓는 것이었다. 연약함을 드러낼 때 상대 배우자는 거기에 재해석이나 비판을 전혀 가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결혼생활의 기간과는 상관없이 배우자가 연약함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결혼했는데 그것이 채워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서 위기가 온 것이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 내놓는 배우자와 비판 없이 들어주는 배우자로 인해 나중에는 서로가 포옹하고 울면서 회복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정확한 방법이야 결혼 전에 연약함을 치유 받아 온전한 인격으로 결혼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연약함을 드러내놓는 훈련이 결혼생활에 큰 유익을 준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시간뿐만 아니라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상담사나 이웃을 만나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할 수가 없다. 마치 우리의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는 것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은 성령 안에서 그 마음이 하나로 연결된 몸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라.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고 타인을 도우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연약함에 대해 판단하는 마음이 죽은 것이다.

선교적 관점의 교회
큰 교회, 말씀이 좋은 교회, 분위기가 평온해서 많은 사람이 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은, “선교지에 이름 없는 선교사 한 명을 더 크게 본다.”고 하신다. 이 말을 통해 좋은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하면서 삶에 부담을 주지 않고 사례금의 부족이 없으며, 서로가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사역, 사랑으로 섬기는 사역을 원했던 나와 저자에게는 충격을 준다.

“하나님, 나는 실패했습니다.”
“길아, 넌 실패하지 않았다.”
담담한 주님의 음성에 나오지 않는 눈물, 개척교회를 6,7여년 섬기다가 다른 사역자에게 위임하고 나왔을 때, 그리고 지금도 내겐 ‘실패감’이 제일 연약한 마음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난 외로웠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가기에는 내가 철저히 무능했기 때문이다.”로렌 커닝햄의 1961년의 사역 중에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성경을 믿지 않습니까?” 그 마음으로 모든 성도들이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교회를 책임지는 성도이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등지게 하는 촉매제 역할만 할 뿐이었다. 사명을 이루기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시급했던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도 먹고 살기에만 바쁘고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한 청년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명동한복판에 서서 찬양하며 예배하는 목사님을 생각하면 갈등 아닌 갈등을 한다. 명동 한복판 나또한 청소년사역자로 내세울만한 상담실이나 사무실이 없다. 교회부속 건물에 얹혀있기도 하였고, 밤새 고생해서 붙였던 간판을 떼라고 해서 추운 아침 수고로이 떼기도 하였다. 지금은 또 교회부속 건물로 가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개인으로나 집단으로 상담도 하고 강의도 하고, 한적한 식당에서도 개인상담도 하고 온 가족을 상담하기도 하고, 교회에 가서 가정 사역에 대한 강의도 하고, 대학에 가서 강의도 하고, 우리 집을 오픈 하여 상담도 하는 내게 사람들은 묻는다. “상담센터가 어디에 있어요?”
“장소는 힘이 세다. 장소가 없으면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섬겨야 할 도시가 있다. 그러나 예배당이 생기면 하나님과 도시는 없어진다. 오직 그 장소에서 은혜 받고, 행복하게 교회생활 하는 것만 남는다.”고 장소의 소중함과 장소로 인해 우리의 시야를 가리게 함에 대해서 말한다.
‘상담센터가 어딨어요?’라고 장소를 묻는 질문을 듣고 우물쭈물 하는 내게 김길목사의 사역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얼마나 내가 당당함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장소에 대한 갈등을 몰아가게 한다. 정체감을 세워준다.

종종 교회 안의 전임사역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 때도 있다. 건물과 재정의 어려움에 짝을 이루어 미래마저 불투명해지고 아이들이 커가며 가장(家長)으로서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너 이래도 상담목회할 거냐? 네가 원하는 진정한 상담목회가 무엇이냐? 너는 누구를 위해 상담 목회하느냐?”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김길목사가 명동이라면 나는 학교다. 차비 한 푼 주지 않아도 청소년과 그의 가족을 상담하고 치유하는 일이라면 달려간다. 때로는 심리검사지를 살 돈도 없고, 차를 운전해 갈 기름 값이 없어도 간다. 이 일을 위해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 말고는 다른 일을 할 마음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기 때문(저자는 이것이 사명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이다.

딸과의 이야기
“딸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놀랍긴 한다. 그러나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무섭다고 했다. 딸아 너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아빠도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단다. 나는 딸에게도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힘들다.”
나의 큰 아들이 고3이다. 진로를 정하는데, 신학대학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둘째는 고1, 막내는 중3, 어느 누구도 아빠처럼 힘들게 살까봐 목회는 절대로 하기 싫고, 목사도 되기 싫다고 한다. 그들이 보고 온 것은 힘들고 어렵다는 것, 그것을 직간접으로 보고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애들아, 세상에서 제일 복된 일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성도를 섬기는 목사가 되는 것이란다. 아빠는 다시 태어나도 목사님이 될거야. 그렇지만 너희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대로 응답하고 순종 하거라. 그리고 마음껏 즐기면서 살거라. 하나님 안에서 즐기면서 사명 감당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단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난 행복한 도시 선교사”
도시사역자, 아시아의 대도시를 타깃으로 삼는 도시선교사, 스타벅스를 경쟁상대로 삼은 청년 사역자, 김길목사님. 목사님의 사역, 증언의 삶을 통해 청년들이 행복하고 하나님이 행복합니다.
목사님은, “그냥 노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귀한 일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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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의 삶 김길 목사의 제자도 시리즈 2
김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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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이루는 제자의 삶

 들어가면서
 첫 책 <증언>을 통해 이렇게(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사는 삶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명신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 모습 그대로 진행되고 있을까?’ 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사명>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명신교회 그 후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첫 책이 자신의 죄와 연약함과 싸우는 제자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사명을 이루는 제자의 삶에 관한 것이다. 제자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어떻게 사역을 할 것인지에대한 김길목사의 고민의 산물(産物)이다.  ‘명신교회가 과연 그곳에서 큰 부흥을 이루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증언>을 잘못 읽었다는 증거다. 이 책의 부제가 반대로 살핀다.’는 뜻을 가진 반성(反省) 제자도. 나의 뜻과 욕심에 대한 반대, “제자의 삶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기 위해 매일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사람, 예수님 닮아가는 삶이기 때문에 제자로의 삶, 나의 욕심과 반대되는 사명을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그 사명을 다시 찾게 하고, 아직 찾지 못한 자들에게는 찾게 해 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기 위해 부르신다. 그리고 제자로 만들어 가신다. 제자는 예수님의 손 안에서 만들어진다

당신은 무리인가, 제자인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제자로 부름 받았으나 무리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신다. 평안이 아닌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니 갈등을 겪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가 누구일까?
제자훈련을 하여야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예수,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던 한 분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서 예수님 품으로 가셨다.
 그분이 제자훈련이라는 거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고민했다.
 “사랑의 교회에서도 나는 제자가 아직 아니에요. 훈련을 받지 못했거든요라고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시각인가를 잘 알면서 목회자들 역시 비슷한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어떤 사람은 제자로 대접하고 어떤 사람은 무리의 한 사람처럼 대접한다. 자연히 한 쪽에서는 무슨 특권층이나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게 되고 다른 쪽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살게 된다. 누가 제자인가에 대한 오해의 불씨는 프로그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하시던 내용과 방법에 비하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제자 훈련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에서 고() 옥한흠 목사님이 밝혔다.

 윌킨스의 <제자도>를 통해서, “예수님이 요구하신 제자도의 길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교훈이다.... 일단 예수를 믿고 무리 가운데서 앞으로 나온 사람이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요 또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누구일까?
바로 예수님이 부르셔야 하고,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김길목사는,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제자는 자신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원하시고 부르셔야 한다. 만약 부름 받았다면 정말 영광스러운 것이다.라고 자신이 원하여 되는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제자의 영광스러움에 대해 피력했다.

 목회자로서도 성도들에게 그저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할 때에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했고, 제자의 삶을 목이 쉬도록 강조하였었는데, 목사로 안수를 받고 거친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게 사역을 하면서 나는 내가 듣고 싶은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강조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 책은 제자훈련을 하면서도 제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있는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도 목사인 나를 일깨워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억하자! 제자는 예수님이 부르셔야 제자가 될 수 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내가 서있다

 제자의 삶은 온전한 삶이다
 헌신 하는 것을 염려하고, 고난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심지어 제자들- “예수님과 친한 사람은 엄청난 특권을 갖게 된다. 바로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은혜라는 것이 없다. 예수님 앞에 오기만 하면 받는 값없이 주시는 은혜! 물론 예수님을 믿어도 고난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예수님 믿는 사람이 고난을 더 적게 받는다. 통계적으로도 예수 믿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돈을 더 벌고, 교육도 더 받는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어도 고난은 오지만 반드시 더 작고, 그 작은 고난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 ...예수님과 친한 사람은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의 깊은 심정을 이해하고 친해진다. 고난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피폐해지는데 예수님과 친한 사람은 고난 때문에 오히려 삶이 더 온전해진다.” 그리고 헌신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셨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다. 온전한 삶을 누리게 하는 이 가슴 벅찬 제자로 부름을 받아 살고 있다. 감격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다. 김길목사가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나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나 요행히 앞날의 일을 알아맞히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의 인격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수전도단의 로렌 커닝햄 목사님과의 인터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내게 청량음료와 같은 시원함을 주었다. “매일 아침 묵상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붙잡는다.” 그렇지 바로 이거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내게 말씀으로 말씀하신다.

 삶을 걸 수 있는 것이 사명이다.
 제자에게는 사명을 주신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삶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아닌 예수님이 주신 사명이라면, 반드시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사명을 이루자면 삶을 걸어야 한다. 그냥 되는 것은 없다. 자신의 사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해야 한다. 내가 헌신하지 않는데 누가 헌신한단 말인가. 꿈이 있다고 말만 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걸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감동할 만큼,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그 소원을 이루어주시겠다고 결심하실 만큼.
 큰 비전을 말하는 이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당신은 그 큰 꿈을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다. 제자들이 사명의 삶을 살자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꿈을 이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명의 현장 가정(家庭)
 사명을 이루는 곳으로 가정과 직장을 생각할 수 있다.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곳이다. 속세가 아니라 임마누엘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가정은 제자의 사역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다.
 원수가 제일 싫어하는 그림이 있다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의 그림일 것이다. 그만큼 원수는 행복한 가정에서 경건한 아이들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한다. 깨어진 가정에서 아이들이 생겨나도록 지금도 원수는 쉬지 않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형인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훈련과 사역이 필요하다.
 이렇게 소중한 가정에서는 수많은 영적인 전쟁이 일어난다. 특히 마음을 지켜야 하며, 마음이 어려운 사람을, 약점을 보완해야 하고, 이해하여야 한다. 원수가 가정을 공격할 때 가장 주요한 공격 루트는 영향력이 있는데 훈련되지 않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가장 좋은 공격 대상은 영향력이 있는 데 마음이 연약한 사람이다. 그 사람을 공격하면 여러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중함과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말씀을 통해 감동을 받다가 갑자기 원수의 공격이 영향력이 있는데 마음이 연약한 사람이라는 말에 띵해진다. 지도자가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다는 말은 곧잘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했는데, 마음이 연약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공격해서 주변의 여러 사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원수의 속셈을 읽으면서 얼마나 더 내가 강해지는 훈련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약해지면 무너진다. 내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무너진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훈련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가정은 하나님의 좋은 성품을 강하게 경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사랑과 화평과 희락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긴장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막아서는 사람이 사역자다. 그 사역은 쉽지 않다. ..서운한 마음이 들게 만들어서 서로 원망하게 하는 원수를 결박하는 힘은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다. ”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가정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

 기업의 사명을 말한다. 간사들에게도 장학금을 받도록 강조한다. 전공에 대해서 실력을 갖추어서 주위에 영향력을 미치도록 하고 부모님들에게도 안심을 시킬 수 있도록 권한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사람을 낚는 것이다. 사람을 낚자면 일터와 학교에서 전문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제자의 삶 중에서 공동체, 소그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의 소중함과 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소그룹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냥 친한 관계에서, 열매를 나누는 관계로, 나중에는 사명을 함께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면 좋다. 자신이 받은 사명을 함께 이룰 사람들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열매를 맺고 영향력을 갖는 삶으로 삶의 스타일을 바꾸어야 한다. 혼자 있는 사람은 제자가 아니다. 혼자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관계가 사명 중심으로 되면, 그러니까 제자들의 모임이 되면 항상 건강한 소그룹이 일어난다.”
 작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의 심정으로 심겼다고 고백한다

나가면서
 사명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식어져가고, 식어짐이 속도를 더하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게 된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며 가는 사명의 길 위에서 만나는 김길목사님의 <사명>은 우리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거룩한 삶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쳐 준다. 또한 소그룹, 공동체의 소중함과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유다의 아하스 왕이
, 다메섹의 우상 신전을 보고 직접 그려, 제사장에게 그대로 만들게 하고, 성물의 위치를 바꾸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척 하여 두었던 놋제단! 그 어리석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김길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사명자들에게 삶의 모든 곳이 그분의 음성을 듣는 삶, 순종의 삶이 되어야 한다. 고 한다.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성전중앙에 치워버린 성물(聖物)들을 다시 놓으며, 하나님의 자리에 선 세상이라는 신과 물질과 승리의 축배를 마시게 하는 우상들을 치우고 오직 하나님만을 모시라고 한다.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잊지 말라고 하는 이사야의 불타는 가슴이 이 책에 담겨있다

 “
사명을 이루어가는 삶은 자신의 생명보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다....사명을 따라 살지 않으면 좋은 가정, 행복한 직장,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좋은 교회는 없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사망을 이기고 생명의 세계, 사명의 세계로 나갈 수 있다.”
 부디 주께서 주신 사명을 기쁨으로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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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 - 10년 후 자녀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기록
김유숙.박진희.최지원 지음 / 이너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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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숙 교수는 임상심리를 전공하였다.
가족치료의 슈퍼바이저이고, 가족상담 지도감독자, 놀이치료 교육전문가 그리고 모래놀이치료 지도감독자이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족상담의 대가이기도 하며, <청소년 가족상담>, <가족치료>, <가족상담> 등을 저술하였다. 더 폭넓게 <은둔형 외톨이>, <이야기치료>, <아동과 청소년 심리치료> 등을 출간하였다.

이론적이고 저술의 저자인 김유숙 교수가 이번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씨줄과 날줄을 엮어 가면서 자신들만의 무늬를 가진 천을 만들어’ 가기를 원하면서, <10년 후, 자녀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가족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펼쳤다.
책의 많은 부분이 빈 공간이다. 빈 공간에 가족들의 이야기로 꾸며가기를 바랬다.

학부모교육을 강의하면서 우리 가족 별명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동이나 청소년들에게 부모님이나 가족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꽃이나 도형, 색깔이나 날씨, 또는 어떤 촉감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으면 정말 귀한 상담이 된다. 여러 말보다도 더 세세하게 아동이나 청소년들의 마음을 살필 수가 있어서 상담현장에서나 가정에서 효과적이다.

가족의 과거, 현재, 미래를 더듬어 살펴보면서 더 나은 가족,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곳곳에 사티어나 다른 심리학자들의 꼭 필요한 이론들을 첨가하여 활동에 더 효과를 가하게 하였다. 단순한 활동이 아닌 이론에 기초한 활동이다.
부록으로는 ‘가족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기억창고’로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활동을 소개하였다. ‘가족일기쓰기, 우리 집 사진 찍기, 가족 유니폼, 우리 집 모노폴리- 게임판 만들기, 얼마나 크고 있을까요, 도시락을 싸서 운동 경기를 보러 가기, 여행일지, 대학교 탐방기, 세상의 모든 직업 목록 만들기,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를 기념하기, 도서관 탐방기’ 등의 17가지를 소개하였다.
마치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전해주려는 의도가 충분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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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꼬옥 안아줘요 - 평생 부부사랑을 지속하기 위한 프로젝트
Susan M. Johnson 지음, 박성덕 옮김 / 이너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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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알찬 내용 적용가능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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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꼬옥 안아줘요 - 평생 부부사랑을 지속하기 위한 프로젝트
Susan M. Johnson 지음, 박성덕 옮김 / 이너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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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구워진 빵
애착형성에서 출발하여 긍정으로 인도하는 부부관계 강화방법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lby)의 애착이론은 삼 세 이전, 즉 생후 36개월 이전에 부모 또는 양육자와 아동과의 상호관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그는‘사랑의 기초’는 ‘정서적 반응을 주고받는 것’이라 하였다. “불화부부를 치료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적절하게 교육받고 경험이 풍부한 부부치료자가 부족한 것”이다. 또한 이미 출판된 책들은 의사소통방식이나 협상기술, 양보와 타협 등을 가르치고 조언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Susan Johnson은 ‘정서중심적 부부치료법(Emotionally Focused Couple Therapy)’을 제시하였고, 여기에서 한 걸음 나가 이번에는‘주고받는 정서적 반응’을 토대로 “날 꼬옥 안아줘요(Hold Me Tight)"를 통해‘애착이론’을 성인-부부관계-에게 적용하고자 하였다.

 부부치료자로서 불화부부들에게 주어야 할 치료방법들에 대해서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이 책은 바른 길잡이가 되었다. 또한 결혼생활 20여년을 지내고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바쁘게 살아온 세월들을 잠시 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아이들이 우리의 품을 떠난 뒤에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행복한 부부관계를 평생 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대화법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어서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의 정서에 맞게 고쳐가면서 사노라면 평생 동안 사랑하며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애착과 정서적 결합’이 Susan이 제시한 부부관계 회복에 필요한 치료제다.
 
그래서 ‘애착형성은 사랑의 표현이다.’라고 한다. 애착형성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진화론적 관점으로 사랑을 얘기했다. “‘Love’, 사랑은 인간의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사랑은 단순히 짝짓기와 자손을 퍼뜨리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성관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인생의 풍랑을 만나더라도 서로 위로해 주고 정서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나를 꼬옥 안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애착 대상을 찾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로 우리의 유전자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애착 대상을 향한 욕구는 음식, 주거, 성을 향한 욕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존, 행복을 향한 기본 욕구의 하나다.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존하기 위해서 정서적 애착 대상이 필요하다.”

 정서적 결합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정서적 결합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를 안아 달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은 성관계 그 이상이며,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사랑은 산소와 물 등과 같이 인간에게 충족되어야할 기본욕구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부부관계에서 유발되는 문제의 핵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즉 사랑은 기본욕구이다.

 이렇게 사랑해야할 부부가 사랑이 없음으로 불화부부가 된다. 불화부부를 회복시키고, 관계를 정상적이고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사랑할 대상을 찾는 것은 어린 시절, 볼비의 주장처럼 3세 이전에 어머니와 또는 양육자와 아동과의 사이에 형성된 애착형성이 성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를 형성하게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이 사랑할 대상, 사랑을 나누는 대상, 대상과의 사랑하고 있음을, 사랑받고 있음을 믿고 확신하는 것이 애착이다. 나중에 이 책의 골자가 될 견해들이 여러 상황과 여건 속에서 볼비를 만들어 갔다고 할 수 있으며, Susan의 견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들만이 이런 애착형성을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생각하고 후학들이 발표하기를, 성인에게도 애착형성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영국의 보수적인 상류층 사람들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을 당하였는데, Freud가 말한 대로 ‘사랑을 기본 충동의 하나로 여기면서 단순히 성적 도취 상태’로 보았다. 어떤 이들은 사랑을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하였고, 그밖에도 도덕적인 관점에서 사랑은 이기적이기보다는 희생하는 것이고, 요구하거나 빼앗기보다는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당시에는 007의 제임스 본드나 위험을 홀로 헤쳐 가는 전사의 이미지가 강조되던 시대로 ‘성인은 독립적인 삶을 살면서 자기 충족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 심리학적인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문화였고,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기주장을 못하는 사람을 미분화, 의존성, 공생, 연합의 용어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효과적인 의존’에 대해 언급하면서 타인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요청하는 것을 건강하다고 보는 볼비는 아주 급진적이었고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볼비를 배척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요즘도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의존중독’의 현상이 나타나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부모의 의견만 듣고 그 의견에 따르는 성인아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 없이 무조건 배우자의 의견과 생각에만 의존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볼비가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장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볼비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한 급진적인 모습에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이해는 하지만 너무 급진적이었다라고 할까?


 “애착이론은 사랑하는 사람이 피난처임을 알려준다. 부부 사이에 정서적 접근과 반응이 사라지면 무력감과 고립감이 몰려온다. 이때 몹시 화가 나고, 우울하며, 쉽게 상처받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절되면 안전감이 위협을 받는다. 또한 존 볼비가 주장한 애착의 핵심관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시각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거울이 되는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유대감이 상실될 때 우울증을 앓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정서중심적 부부치료의 탄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일에 빠짐으로서 가정과 배우자에게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사회적으로 남성의 역할을 물질적으로 책임지는 것에 무게를 많이 두기 때문이기도 하고, 볼비의 주장처럼 어머니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어머니와의 애착관계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말함으로 욕구를 충족시켜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오히려 배우자를 비난하는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어서 불화부부가 되는 것이다.
 

애착이론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거울이다.’

 

 그렇다. 이들을 위해 ‘정서중심적 부부치료’가 탄생을 하였는데, ‘정서적 접근, 반응 및 교감’을 강조하고 있다.
 부부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반응이 매우 중요하다. 부부가 정서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접근(당신에게 다가가도 되나요?), 반응(당신의 정서적 반응을 기대해도 되나요?), 교감(나를 존중하고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당신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나요?)의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어디서든지 나는 아내가 내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랑 있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된다. 웃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남자라서 남편으로서 부인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그럼에도 성숙하고 보웬(Bowen)의 말처럼 분화가 잘 된 부부는 함께 있을 때도 좋고, 따로 떨어져 있을 때도 좋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Susan의 말은, 불화부부의 예로서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갖게 되는 감정의 부정적인 방식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남편이나 아내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만 사랑해 주세요’ 또는 ‘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나요?’ ‘내 곁에 있어주세요’라는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주 표현함으로서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데, 표현하지 않고 담아둠으로서 나중에는 침묵을 거쳐 부정적인 방식으로 나가고 불화부부가 된다는 것이다.

 Susan은, ‘ 애착이론은 부부관계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생각에 영향을 준 존 볼비는, “사랑하는 사람과 주고받은 수많은 상호작용을 일반화하면 사랑을 이해하는 틀이 형성된다고 믿었다. 이런 틀에 의하여 현재관계에 대한 기대와 반응이 생긴다. 부정적이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지 않고 긍정적이고 명확하고 적절한 과거의 틀이 형성되어 있으면 현재의 관계에 대한 기대와 반응은 긍정적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낭만적인 관계에서 안전한 애착, 성관계, 정서적 지지는 함께 회복된다. 부부는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점차 친밀감이 높아지고, 관심과 반응을 보이며 희망을 찾아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정신적 외상으로 인한 고통은 사건 자체보다는 위로해 줄 사람의 존재 유무가 결정한다고 말한다. 

“갈등자체가 결혼 실패의 원인은 아니다. 결혼생활이 실패하는 이유는 감정과 감정적 반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5년 후 부부가 느끼는 행복감의 정도를 예측하는 데는 갈등의 심각성보다 감정반응의 감소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우리는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상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가 나의 고통과 욕구를 알고 이해해 주고 감싸 주며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부정적인 대화를 하다가 감정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침묵이다. 그런데 절대로 침묵하지 말라.
 결혼하고 나서 처음에는 작은 말에도 반응을 보여주던 나의 아내로 인해서 불화는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 셋이 태어난 후로 쌓여져 가는 감정으로 인해서 아내는 침묵을 사용하곤 하였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침묵이 나에 대한 거절과 모욕이라고 생각하였다. Susan의 말처럼 원상처(raw spot)를 건드린 것이다. 사람은 원상처를 자극받은 이후에 나타나는 이차적인 반응에 집중한다. 이차적반응은 방어적 태도로서 위축되고 회피하거나 반대로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부부관계에서의 침묵은 독이다.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화를 내더라도 입을 열어야 한다. 침묵하지 말고 입을 열어 말하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배우자에 대한 모욕감을 줄 수 있다.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두려움을 끄집어낸다는 표현이다. 또한 실수할지도 모르고 자신의 숨겨놓은 감정을 들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드러내야 한다. 특히 부부관계에서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갈등을 끝내고 사랑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특효약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을 넘어서“한 사람이 부정적으로 사건을 표현하면, 상대 배우자는 위로와 함께 보다 긍정적인 큰 그림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부가 감정을 회피하면 부정적인 대화 방식에 빠져들고 만다.
 부부들이 결혼을 하고 갈등 상황일 때 회복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보다 정서를 드러내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하다고 말하고, 힘들었으면 힘들었음을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서(emotion)란 라틴어 ‘emover(움직이다)’에서 유래했다. 정서가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정서를 드러내면 상대방의 마음은 움직인다. 만일 부부가 재결합하려면 정서를 이용하여 새롭게 행동해야 관계가 변한다. 부부는 용기를 내어 부정적 대화방식에 감춰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반응하라. 정서적인 반응은 사랑을 유지시키는 열쇠이다.”

“펄벅은 ‘정서적인 반응을 받지 못한 사람의 심장은 멈추고 만다.”고 하였다.
“나는 불화부부가 고통에서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부부가 표현하는 감정에 귀 기울이고 새로운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치료자는 도와주어야 한다.”

 남편과 부인이 나쁜 사람이라서 부부 불화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격해져서 싸움을 하게 되면 말꼬리를 잡게 된다. 말의 의미와 말하려는 의도를 생각하지를 않는 것이다. 배우자가 무슨 말을 전달 하려는지에 대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이미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부정적인 감정을 싣게 되는 것이 더 싸움을 크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Susan은 불화부부를 통해서 숲을 보는 부부대화법을 소개하고 있다. 

 제6대화법에서 Susan은, ‘접촉하기- 신체적으로 접촉하라’를 통해서 ‘감각적인 성, 정서적인 성, 조화로운 성’을 소개하면서, ‘행복한 부부는 성관계를 기쁨과 친밀감을 얻는 하나의 방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불화부부는 성에 매달리고 성관계 자체를 부부 갈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한다.’

 기억에 두고 싶은 평범한 말이 있다. “나는 부부 사이에 배려와 위로가 사라졌다고 말하면 살짝 고민이 된다. 부부간에 성관계가 없다고 말하면 염려가 된다. 그런데 부부간에 접촉이 사라졌다고 말하면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성들은 성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 그에 반해 여성들은 신체접촉을 통해서 그 마음을 받고, 편안함과 위로를 얻기를 원한다. 아는가?“신체접촉은 성적• 애착적 언어”라고 인류학자였던 Asheley Montagu는 말했다. 일반적인 지식으로 ‘접촉과 포옹이 결핍된 어린아이는 뇌 발달과 정서통합 능력, 정서지능 발달이 지연된다.’고 하니 성관계의 범위를 넓게 확대하여서 안아주고, 만져주고, 포옹해 주는 것이 신체적으로 접촉하여 부부간이나 자녀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옥시토신, ‘포옹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이 옥시토신은 포유동물에서만 분비되며 행복감과 쾌감, 위안,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경우는 애착대상에게 접근하여 신체적으로 접촉될 때, 특히 성적으로 흥분된 절정기와 수유 중에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만 하더라도 옥시토신의 분비가 촉진된다. 옥시토신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감소시켜 준다. 심지어 불화부부가 강하게 포옹하는 훈련을 하면 이 옥시토신의 분비로 인해 점차 서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장류는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애착반응을 보인다. 부모는 자녀가 집을 나서면 습관적으로 입을 맞추고, 돌아오면 포옹하고 환영한다. 이러한 행동을 성인이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못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내게 의미가 있어.’ 라는 메시지를 규칙적으로 전달하는 작은 의식관계를 유지시키고 견고하게 만든다.”

 포옹이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지를 몰랐었다. 전혀 몰랐었다. 남자들은 물론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성관계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알지만 포옹의 훌륭한 점은 배우지를 못한 것 같다. 굳이 포옹의 중요성을 생각했다면 성관계 전의 의식 정도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Susan은, 포옹의 훌륭한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 피력해 갔다. 여성으로서의 포옹과 접촉의 필요성과 강점을 강하게 느낀 것 같다.

 나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아내에게 포옹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엉덩이를 토닥거려주었다. 손을 잡고 기도해 주는 것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아내는 남편의 기도와 포옹과 토닥거려줌에 출근으로 인한 스트레스 호르몬이 사라지고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것은 사춘기의 나의 자녀들에게도 적용되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을 안아주고 기도하며 격려한다. 저녁에 만났을 때는 두 팔을 벌려 ‘어서 오세요. 수고하셨어요.’, ‘공부하느라 고생했다.’고 격려하면 달려와 기쁨으로 안기며 고마워한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부모님의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상담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어서 전혀 새롭지 않으나 그렇다고 질리지 않는 사실이다. “당신이 자녀와 안전하게 결합되면 그 사랑은 자녀의 배우자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세 살 이전에 어머니와 안전하게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훨씬 많은 동정심을 갖는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안전하게 결합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늘어난다.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정서적 교류가 늘어난다. 많은 사랑과 안전감을 경험한 사람은 타인에게 친절하고 인내심이 강하다.”는 것이고, 그들은 부모의 사랑과 정서적 결합을 보고 자라면서 사랑의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청사진을 제공받게 된다것이다.

 자녀들에게 행복한 부부에 대한 청사진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행복한 부부관계는 사회에 크게 기여한다. 부부관계가 좋으면 자연히 가족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나아가 긍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은 관심이 많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청소년과 가족상담의 치료자인 내게 Susan Johnson의 책 “날 꼬옥 안아줘요‘는 값진 선물로 안겼다.

 먼저 이 책은, 정서중심적 부부치료에 대해, 초보자에게는 바른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고, 숙련된 전문가에는 더 넓은 길들을 보여 줄 것이다.
 
 특히나 여성 치료자로서 감정과 정서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감정과 정서를 중요시 하는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부정적으로 변해버린 부부관계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가서게 하는 치료자의 모습이 환하게 비추어졌다. 단순히 보이지 않고 붕 떠있는 듯 한 허공의 긍정만을 외치지 않고 현실 가능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서의 긍정의 심리학을 전달하는 모습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강의하고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을 좋은 사례를 소개하여 주었다. Susan의 책‘정서중심적 부부치료모델’이 이론서라면 “날 꼬옥 안아줘요”는, “정서중심적 부부치료 모델”의 이론을 토대로 한 실습서이자 강의서이다. 그러기에 심리학을 연구하는 자들에게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고 깊이 있게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이 책과 이너북스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부부관계에 평안과 안정과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Susan이 놓치고 있는 것인데, 바로 부부관계 둘 사이에 애착과 정서적 결합은 성숙한 인격으로서의 ‘부부치료 모델’이 효과를 거두고, 치료와 회복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 부족한 것이야 채우면 되겠지만,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이상심리(강박증, 불안증 등)에 속하거나 미성숙한 인격이라면 ‘부부치료 모델’은 Bowen의 염려처럼 ‘자기미분화’로 인해 배우자에게와 가족에게 상처만 안겨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Ursla Le Guin의 이야기와 더불어 나의 '날 꼬옥 안아줘요’의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부부는 사랑을 위해서 서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부부는 비로소 변할 수 있다. ‘사랑은 고인돌처럼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빵처럼 다시 만들어지고 새롭게 구워져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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