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선생님의 첫 작품

"평생 동안 공상과학 소설과 판타지 소설을 읽어 왔지만 이 소설에 대해선 특별한 감명을 받았다. 재미있는지 보려고 조금 읽는다는 것이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해리포터를 좋아한다면 분명 <시티 오브 엠버>도 마음에 들 것이다."
- 아마존 리뷰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해리포터 열풍이 뜨겁지만, 미국에서는 학교 선생님의 데뷔작 하나가 전역을 뜨겁게 달궜다. 가장 큰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 <시티 오브 엠버>에 달린 리뷰만 400편에 육박할 정도다. 이 책은 대중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수상의 영예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 '미국도서관협회(ALA) 주목할 만한 어린이 책', <커큐스 리뷰> 편집자들이 선택한 책', '뉴욕 공공도서관 추천도서 100선' 등에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주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을 받았고, 지금도 수상 목록은 멈출 줄을 모른다.
 
Florida Sunshine State Book Award 수상,
Texas Lone Star Reading List 수상,
West Virginia Children's Book Master List 추천도서,
Arkansas Charlie May Simon Award 수상,
Colorado Blue Spruce Young Adult Book Award 추천도서,
Illinois Rebecca Caudill Young Readers Award 추천도서,
Iowa Teen Book Award 추천도서,
Kansas William White Award 수상,
Kentucky Bluegrass Master List 수상,
California Young Reader Medal 수상,
New Jersey Garden State Children's Book Award 수상,
New Hampshire Great Stone Face Children's Book Award 수상,
Connecticut Nutmeg Children's Book Award 수상

언론의 찬사도 이어졌다.

“충격적인 데뷔작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결말은 2권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증폭시킨다.” - 커큐스 리뷰

“뒤프라우의 첫 번째 소설은 인류 종말 후의 세상을 사실적으로 창조해 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의 『재커라이어를 위한 Z(Z for Zachariah)』에 비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 USA 투데이

“엠버 시는 색깔이 없는 암흑 세상이지만 이 책의 묘사는 빛나며 풍부하다.…… 신비롭고, 모험에 차 있으며, SF 같지 않은 SF적인 특징을 가진 소설이다.” - VOYA(Voice of Young Advocate)



인류의 마지막 운명을 간직한 채 어둠과 비밀에 싸인 도시인 엠버에서는 빛과 전기가 고갈되고 감자가 전염병에 걸려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는 등 전반적인 위기의 징후가 나타났다. 직업 배정이 추첨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고질적인 정전사태는 마치 북한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작가는 학교 선생님 답게 청소년과 어린 독자들에게 현실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거리와 토론거리들을 제공한다. 예컨대 클레리 아줌마와 주인공 리나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데,

"이것 좀 보렴." 클레리의 손바닥 위에 하얀 콩 한 알이 놓여 있었다. "이 씨앗 안에 있는 뭔가는 이 콩이 어떻게 하나의 식물로 자라나는지 알고 있단다. 그걸 어찌 알고 있을까?"
"글쎄요." 리나는 단단하고 납작한 통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건 이 씨앗이 그 안에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명이란 무엇일까?"
...
"등북을 한번 생각해 봐. 전기 등불에 달린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아 연결하면 등불은 그 나름대로 생명을 디게 되지. 불이 들어오잖아. 그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와 등불이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 콩은 그 어떤 것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우리에게ㅔㄴ 발전기에 우리를 연결시킬 플러그와 전선이 달려 있지 않잖아? 살아 있는 것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그들 내부에 숨어 있는 어떤 힘이란다."
- 101~102쪽

독서지도안, 독서토론, 독후활동이 매우 발달돼 있는 미국 내 많은 학교에서 이 책을 문학이나 토론 수업에서 교재나 부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 교육의 문제를 진지하게 녹여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해리포터>를 넘어서는 면이 있다.


아마존 리뷰어들의 반응

"책을 읽고 있다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책이 으슬으슬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디어인지 모른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 아마존 리뷰


작품의 대중적 성공으로 <시티 오브 엠버>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명한 톰 행크스가 제작하고 팀 로빈슨, 빌 머레이 등이 출연했다. 특히 최근 <어톤먼트>로 예민한 감수성의 소녀 역을 실감나게 연기한 시얼샤 로넌이 리나 역을 맡아 개봉이 기다려진다.


▲ 어톤먼트 브라이오니 탤리스 역을 맡으며 언니를 애간장타게 만들었던 여동생이 이번에는 어둡고 음습한 엠버를 종횡한다. 조만간 국내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400개에 육박한 아마존 리뷰에 올라간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전혀 다른 세계 속으로 빠져 들고픈 어린이들에겐 <시티 오브 엠버>가 아주 제격이다. … 무슨 일이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다음 이야기를 집어들 것이다. 어둡고 깊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용감한 소년과 소녀의 매력적인 이야기."

"간결하여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 아이 사이에 토론 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숨겨져 있는 주제(메시지)에 관해서."

"나는 이 책을 6학년들의 낭독수업 첫 번째 시간을 위해 골랐다. 처음엔 천천히 진행되었으나 곧 학생들이 좀 더 읽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상적 사회의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참신한 특색을 지닌 긴장감 넘치는 소설이다."

"중학교 선생님으로서 독서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다.
…  속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전형적이고 평범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는 새에 빠져들었다. 페이지를 점점 빨리 넘기고 있다는 걸 의식하기 전까지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을 끄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의 아이디어가 매우 도발적이라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불빛, 고립된 느낌, 놀라운 발견, 이런 생각들은 책을 다 읽은 후에도 한동안 나를 붙들었다. 그리고 결말을 읽고 나서 더욱더 많은(리나와 둔의) 모험을 원하게 됐다."

"영문학 선생님으로서 <시티 오브 엠버>를 추천한다.
…  주의 깊게 통제되어 온 사회가 무너지는 이야기로, 같은 장르에 속하지만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텍스트인 <1984>나 <멋진 신세계> 등을 시작하기 전에 읽기 좋은 책이다."

"독자들은 엠버의 세계에 대한 환상적인 묘사를 통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다. 이상하고도 신비한 엠버의 세계가 소설 전체에 걸쳐 천천히 그리고 사려 깊게 펼쳐져 있다."

"탁월한 소설이다. 생동감 있는 어휘로 씌어 있고, 독특하고 간결하고,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넘치는 이야기다. 작가는 어둠의 도시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잔 뒤프라우 (지은이), 김윤한(그림), 신여명 (옮긴이) |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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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일치법칙 2009-05-0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한 번 읽어봐야지

제라늄 2010-01-0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톤먼트의 그 소녀군요ㅎㅎ
미국 아이들용 책 중에 재밌었던게 꽤 되어서 이것도 기대되네요~

믿음이 2010-03-2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이 울렁거리는 내용입니다..새로운 소식 제 머리에 꼭 박힙니다..고맙습니다.
 



02 The City Of Ember

막내동생에게 사주었더니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린 소설이다.

2권이 언제 나오냐고 보채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관심도 안보이던 애가,
이 책은 결말이 궁금하다면서 밤새 이 책을 붙잡고 읽었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우리 막내를 이처럼 빨아들인(!) 것일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펼쳐들었다. 

예쁜 삽화(다정다감한 느낌이 드는!)와
큼지막한 글씨체가 어린이들이 읽기 편한 책이었다.
무엇보다, 모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아이들이 '이게 뭘까?'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보기에 좋은 책이었다.

Posted by yaleeliza(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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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두 축하드립니다. 책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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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0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6장 옷장 안의 상자






 사람들이 정전사태에 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다니 이상했다. 전력공급이 끊어지면 사람들은 으레 모퉁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활발히 토론하곤 했다. “정전됐을 때 자네는 어디 있었나?”라거나 “전기 기술자들의 문제가 대체 뭐야? 지금 일하는 놈들은 다 해고하고 새 일꾼들을 뽑아야 한다니까”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이번엔 정반대였다. 이튿날 리나가 출근하는데 거리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사람들은 땅바닥만 쳐다보며 바삐 걸어갔다. 멈추어 서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나지막이 할 말만 하고는 서둘러 제 갈 길을 재촉했다.

 그날 리나는 똑같은 메시지를 무려 열두 번이나 배달했다. 다른 메신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고 있는 이 메시지의 내용은 간결했다. “7분.” 정전 시간이 지금까지 있었던 다른 최장 시간 때보다 두 배나 길었던 것이다.

 공포가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리나는 오싹한 한기 같은 공포를 느꼈다. 직업 배정의 날에 둔이 이야기했던 것이 진실임을 리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엠버는 매우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 다음 날 온 도시의 알림판에 다음과 같은 공고문이 나붙었다.




시민 총회 안내




모든 시민 여러분들은 내일 저녁 6시에

하큰 광장에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대한 사항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시장 르맨더 콜




 중대한 사항이라니 뭘까? 리나는 궁금했다. 좋은 소식일까 아니면 나쁜 소식일까? 리나는 얼른 듣고 싶어 애가 탔다.

 이튿날, 사방에서 하큰 광장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서로 따닥따닥 붙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들은 아이들을 목말 태웠고, 키가 작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밀치며 맨 앞줄로 가려고 애썼다. 리지를 본 리나는 반가워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나온 빈디 찬스도 보였다. 리나는 고민 끝에 할머니와 포피를 집에 두고 나왔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선 포피를 잃어버릴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시계탑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여섯 번 진동하며 울려 퍼지자, 시민들이 기대에 차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모여든 군중 위를 물결치듯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더 멀리 보려고 발끝으로 서서 목을 쭉 뺐다. 공회당의 문이 열리고 시장이 경비병 두 명을 양옆에 데리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경비병 하나가 시장에게 확성기를 건네자 시장이 연설하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시장의 목소리는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갈라지는 소리까지 났다.

 “엠버 시민 여러분.” 시장이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기다렸다. 사람들은 조용히 하며 정확히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엠버 시민 여러분.” 시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장은 좌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불빛에 비친 시장의 대머리가 번들번들 빛났다. “우리 도시가 최근 조그만 어…… 어리엄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때는 우리 모두에게 대다난 차믈써엉이 필요하지요.”

 “시장이 뭐라는 거야?” 사람들이 다급히 속삭였다. “시장이 뭐라고 했어? 잘 못 들었다고.”

 “조그만 어려움이래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우리 모두에게 대단한 참을성이 필요하답니다.”

 시장이 연설을 계속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시장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왔습니다. 다음과 같이 보장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어려운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초시어언의 노려역을 다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날카롭게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말한 거야?”

앞줄에 선 사람들이 뒤편으로 말을 전달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최선의 노력.”

 “더 크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시장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더욱 우렁차게 울려 퍼졌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확실하기만 했다. “다…… 아화앙해서는 아아됩니다. 두려엄, 두려어워 해애선 아안된니다. 무우우서어 하아리유가 저언히 엄써요오.”

 “못 알아듣겠어요!” 다른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자 주위 사람들도 서서히 흥분과 불만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미는 바람에 리나는 앞으로 밀려났다.

 “시장이 말하길, 우리는 당황해서는 안 된대요.” 어떤 사람이 말했다. “공포심이야말로 가장 나쁘다는 거예요.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죠.”

공회당 계단 위에 서 있던 경비병 두 명이 시장 곁으로 좀 더 가깝게 붙어 섰다. 시장은 확성기를 다시 들어 올리고 연설을 계속했다.

 “해겨어채애글 차자가느은 주우웅임니다.” 그는 이제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해결책을, 해결책을 찾는 중입니다’, 라는군요.” 앞줄에 서 있던 사람이 뒤쪽으로 내용을 전달했다.

 “어떤 해결책?” 리나 곁에 서 있던 여자가 물었다. 군중 속의 다른 사람들도 이 여인의 말을 되풀이했다. “어떤 해결책? 해결책이 뭔데?” 이들의 부르짖음은 어느덧 합창이 되어 더 크고 힘차게 울려 퍼졌다.

 리나는 또다시 뒤에서 공회당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떠미는 압력을 느꼈다. 난폭하게 떠미는 사람들의 팔이 리나의 몸을 찔러 댔고, 육중한 몸집이 리나를 밀어붙였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리나는 이 생각뿐이었다.

리나는 사람들 팔 아래로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대로 돌진해 가며 군중들 뒤쪽으로 뚫고 나갔다. 시장의 목소리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잡음이 되어 갔고, 모여든 인파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발밑에 깔릴까 두려워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리나는 누군가에게 발을 밟혔고, 목에 둘렀던 스카프는 절반쯤 풀어져 버렸다. 불과 몇 초였지만 리나는 사람들의 발아래에 짓밟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마침내 겨우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온 리나는 학교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리나는 경비병들이 시장을 보호하며 공회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군중들은 고함치며, 일부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자갈, 쓰레기, 구겨진 종이, 심지어 자신들의 모자까지도-닥치는 대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리나는 뛰어가고 있었다. 시장의 연설 내용 따위는 이미 마음속에서 지워 버렸다. 오터윌 가에서 가게 문을 열기 위해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달려가던 리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믿어 주기를 바라는 거야…….” 누군가 말했다. “시장은 단지 우리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대재앙을 향해서…….”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모든 목소리들이 분노와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리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리나는 보도블록 위를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밟고, 등 뒤로 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렸다. 리나는 그저 빨리 집에 도착해서 식구들과 함께 뜨거운 감자 수프를 만들어 먹고, 그러고 나서 새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털실 가게 옆에 난 계단을 한 번에 두 단씩 뛰어오른 리나는 아파트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들어섰다. 그런데 문 앞에 놓인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팔과 무릎을 바닥에 사정없이 부딪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리나는 놀라 빤히 쳐다보았다. 훤히 열린 옷장 옆에는 외투와 장화, 가방과 상자 들이 높게 쌓여 있었고, 그것들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은 몽땅 쏟아져 나와 어지러이 엉켜 있었다. 옷장 안쪽에서 쿵쿵대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쿵쾅대는 소리가 몇 번 더 울렸다. 할머니가 옷장 모서리에서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오래 전에 이 안을 살펴봤어야 했는데. 그 물건은 여기에 있을 거야, 그렇고말고. 이 안에 뭐가 있는지 좀 와서 보렴!”

 “할머니.” 리나의 가슴이 갑자기 철렁 내려앉았다. “아기는 어디 있어요?”

 “아! 포피는 여기 있지!” 옷장 안 깊숙한 곳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할미를 도와주고 있었단다.”

 리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포피가 눈에 들어왔다. 엉망진창 어질러진 바닥 한가운데에 놓인 소파 뒤에 앉아 있었다. 포피 앞에는 어둡고 광택이 나는 무언가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에는 경첩으로 연결된 뚜껑이 달려 있었는데, 뚜껑은 열린 채 뒤쪽으로 덜렁거렸다.

 “포피, 그거 언니가 좀 봐도 될까?” 리나는 허리를 굽히고 내려다보았다. 뚜껑 테두리에는 기계장치로 보이는 게 달려 있었다. 일종의 자물쇠가 아닐까, 리나는 생각했다. 상자는 훌륭하게 만들어졌으나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상자의 표면에는 움푹 들어간 상처와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있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리나는 상자를 집어 들고 확인하려고 안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확실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었니, 포피? 찾은 거 없어?” 하지만 포피는 좋아서 깔깔 웃기만 했다. 포피는 잔뜩 구겨진 종이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포피는 손에도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걸 찢고 있었다. 포피 주변에 어지럽게 널린 종잇조각들 중 하나를 리나가 집어 들었다. 그 종잇조각은 작고 완벽한 서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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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밤거리에서



 날이 갈수록 할머니는 점점 더 정신이 흐릿해져 갔다. 리나가 저녁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설 때면 할머니는 으레 깡통들과 뚜껑 열린 항아리들을 벌여 놓은 채 부엌 찬장을 샅샅이 뒤지고 있거나, 리나의 침대 커버를 찢고, 뼈가 앙상한 팔로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곤 했다. “중요한 물건이었단다. 우리가 잃어버린 물건 말이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렇지만 할머니도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신다면, 할머니가 찾아냈는지 못 찾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할머니는 이런 리나의 물음에는 대답하려 들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리나의 손바닥을 찰싹 내리치고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마. 상관하지 말라고. 그냥 내버려 둬!” 그리고 계속해서 뒤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머도 부인은 자신의 집보다는 리나네 집 창가에서 꽤 오래도록 시간을 보냈다. 머도 부인은 할머니에게 친구가 되어 드리려고 찾아올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여자와는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은 걸” 하고 할머니는 리나에게 툴툴거렸다. 리나는 그런 할머니를 설득했다. “아마 아줌마도 외로운 가 봐요, 할머니. 기쁘게 맞아 주세요.”

 할머니와 달리 리나는 머도 부인이 곁에 있어서 왠지 마음이 든든했다. 엄마가 다시 생긴 것 같은 기분도 조금 들었다. 사실 머도 부인은 늘 꿈속을 헤매며 넋 놓고 살던 리나의 엄마와는 사뭇 달랐다. 머도 부인은 엄마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엄마’ 같았다. 부인은 리나네 식구 모두가 제대로 된 아침식사-대개는 버섯 육즙 소스를 곁들인 감자와 사탕무 차-를 했는지 날마다 챙겼다. 비타민 알약을 각자의 접시 옆에 가지런히 놓아 주었으며, 식구들이 완전히 약을 삼켰는지도 꼼꼼히 살폈다. 머도 부인이 집에 있을 때면 신발은 항상 제자리에 정리되었고, 가구에 묻은 얼룩도 말끔히 닦여 있었으며, 포피는 언제나 깔끔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부인이 곁에 있을 때면 리나는 마음이 놓였다. 부인이 모든 것들을 정성껏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 나이의 다른 사람들처럼 리나도 매주 목요일은 휴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쉬는 목요일, 리나는 그날 저녁 스튜를 요리하는 데 쓸 순무 한 봉지를 사려고 가안 광장 앞 야채 가게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이때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리나는 우연히 엿들었다.

“내가 사고 싶었던 건 우리 집 정문에 칠할 페인트였어. 원래는 회색이었는데 몇 년간이나 새로 칠하지 못했더니 칠이 죄다 벗겨져 어찌나 꼴사나운지. 그런데 마침 나이트 가 어딘가에 그런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 뭐야. 파란색을 살 수 있길 바랐지.”

“파란색으로 칠하면 진짜 근사하겠는걸.”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탐난다는 듯 말했다.

“한데 막상 그곳에 찾아갔더니, 글쎄 점원 말이 페인트 같은 건 없다고 하지 뭔가. 심지어 단 한 번도 판 적이 없다며 내몰더라고. 불쾌한 인간 같으니! 그가 가진 건 색연필 몇 개가 고작이라더군.” 첫 번째 사람이 이야기를 했다.

 리나는 자신이 그린 상상 속 도시 그림을 생각하자 색연필이 몹시 갖고 싶어졌다. 그 도시가 어떤 빛깔일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로 빛나는 장소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돈을 좀 더 유용하게 쓸 데는 많았다. 할머니의 단벌 외투만 해도 여기저기 헤진 구멍들로 가득했고, 실밥이 뜯어져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최근엔 거의 외출하지 않으시잖아, 리나는 마음속으로 중얼댔다. 할머니는 주로 집 아니면 털실 가게에 계시니까, 뭐. 사실 새 외투 같은 건 그다지 필요없으시지, 그렇고말고. 게다가 색연필 몇 자루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어쩌면 할머니께 드릴 외투를 사고도 색연필 몇 자루 정도는 살 수 있을지 몰라.

 그래서 결국 리나는 그날 오후 포피를 데리고 나이트 가에 있다는 그 상점으로 출발했다. 최근 업히는 요령을 터득한 포피는 다리로 리나 허리를 감싸고, 작고 튼튼한 손가락으로 언니의 목을 꽉 붙잡았다.

 두 블록 더 걸어가자 아무런 간판도 붙어 있지 않은 상점이 나왔다. 이곳이 틀림없이 그곳일 거야, 리나는 생각했다.

 처음엔 가게 문이 닫힌 듯했다. 창문 안쪽이 어둠침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을 슬쩍 밀자 뜻밖에도 문이 스르륵 열리며 동시에 문손잡이에 달린 종이 소리를 냈다. 가게 뒤쪽 방에서 머리가 까만 남자가 나타났다. 큼지막한 이와 기다란 목이 두드러져 보였다. “무슨 일이죠?” 그가 물었다.

 리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메신저가 되어 근무했던 첫날, 시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배달해 달라고 리나에게 부탁했던 사람이었다. 이름이 후퍼, 아니 루퍼, 그래 루퍼였다.

 “연필을 판다고 들었는데요?” 리나가 물었다. 왠지 미심쩍어 보였다. 상점의 선반들은 재활용 종이 몇 다발 외에는 텅텅 비어 있었다.

 리나의 등에 업힌 포피가 몸부림을 치며 낑낑댔다.

 “이따금씩.” 루퍼가 대답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색연필이에요. 당신이 정말 가지고 있다면요.” 리나가 말했다.

 “몇 자루 있긴 한데, 좀 비싸서 말이야.” 그는 툭 불거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물건을 볼 수 있어요?” 리나가 말했다.

루퍼는 뒷방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작은 상자를 갖고 와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 리나는 자세히 보려고 상체를 숙였다.

 상자 안에는 색연필이 적어도 열두 자루는 들어 있었다.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보라, 오렌지. 그 연필들은 심지어 단 한 번도 깎지 않은 것들이었다. 연필 끝은 납작했고, 지우개도 달려 있었다. 리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전부 얼마죠?” 리나가 물었다.

 “네가 사기엔 아무래도 무리일 텐데.” 남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걸요.” 리나가 말했다. “나도 직업이 있어요.”

 “좋아, 좋아.” 그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불쾌하게 만들 것까진 없지.” 노랑 색연필을 집어든 그가 손가락 사이로 연필을 휙휙 돌렸다. “색연필 하나에 5달러.” 그가 말했다.

5달러라니! 일곱 자루면 외투를 살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낡고 누덕누덕 기운 게 뻔하지만 어쨌든 따뜻한 외투를 말이다. “너무 비싸요.” 리나가 말했다.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 추어올리더니 냉큼 상자 뚜껑을 닫았다.

 “하지만, 어쩌면…….” 리나는 다급히 생각했다. “한 번만 다시 보게 해 주세요.”

그는 뚜껑을 다시 한 번 들어 올렸고, 리나는 색연필들을 보려고 다시 몸을 굽혔다. 리나는 그중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깊고 맑은 푸른색으로 칠해진 연필 표면은 반질반질했다. 연필의 꼭대기 평평한 단면에는 푸른색 연필심이 동그랗고 작은 모습을 내밀고 있었다. 분홍빛 지우개는 빛나는 금속 테두리에 감싸여 연필 끝에 매달려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딱 한 자루만 사도 되잖아, 리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 더 돈을 모으면 다음 달에는 할머니께 외투를 사드릴 수 있을 거야.

 “결정해.” 남자가 말했다. “네가 사지 않아도 이 물건에 관심 있는 다른 고객들이 많거든.”

 “알았어요. 하나만 살게요. 아니, 잠깐만요!” 리나를 사로잡은 건 굶주림 같은 것이었다.

 리나는 아기가 잠든 방에 들어가 주머니에서 색연필 두 자루를 꺼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아까 봤을 때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색연필을 손에 쥐자 그 먼지투성이 가게에서 리나가 느꼈던, 갖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 느낌은 이제 공포와 수치심, 그리고 어둠과 마구 뒤섞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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