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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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루즈베리에서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이 주관하는 성 베드로 축일장이 사흘간 열린다. 큰 규모의 장이만큼 각지의 내노라 하는 장사꾼과 손님들, 구경꾼들로 내전의 상처가 봉합되지 않은 슈루즈베리에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데… 축일장 첫 날 개장을 준비하던 상인 토머스가 살해당해 알몸으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용의자는 누구일까?
첫번째 용의자: 수도원이 거둬들인 축일장 사용료의 일부를 슈루즈베리 복구비용으로 쓰게 해달라는 마을 청년들의 시위 주동자 필립. 그는 전날 시위 행진을 주도하다 희생자와 마찰을 빚었고, 토머스는 이 청년의 몸짓을 오해하고 지팡이로 필립을 가격해 중삼을 입혔다. 이 사건으로 청년들과 상인, 구경꾼 간의 큰 패싸움이 벌어짐
두번째 용의자: 온갖 값진 물건들이 모여드는 축일장에서 한탕을 노리다 저항하는 이를 우발적으로 죽인 익명의 절도범
세번째 용의자: 희생자가 큰 규모로 운영하던 전국구급 상인이만큼, 복잡하고 정신없는 축일장을 노리고 토머스에 대한 사적인 원한을 갚은 익명의 살인자. 이 주장은 토머스의 값비싼 외투가 근처 강에서 발견되며 힘을 얻는다
네번째 용의자: 토머스와 동행한 그의 조카 에마. 그녀는 외삼촌의 죽음 이후 계속해서 벌어지는 절도 등의 일련의 사건에도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라는 둥 외삼촌의 죽음과 연관 있을지도 모르는 절도범에 대해 유리한 증언을 하는 모습에서 생전의 외삼촌과 사이가 좋지 않았음이 드러나게 됨

벌써 네 번째 사건이다. 추리소설은 장르문학으로서 아주 큰 결점이 있다. ‘살인의 도구화’가 그것인데,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사건이 점점 패턴화되기 때문에 독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자극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범행의 동기나 트릭, 추리 및 범행 입증 과정은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으로 저품질화되며, 이를 막기 위해 다시 자극적인 범행 방법을 사용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로서 살인은 소설의 도구로서 전락하게 되는 것인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는 추리 장르의 이런 구조적 단점이 전혀 없다. 범행의 동기와 방법이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리즈 내에 깊게 깔린 신 앞에 만인은 평등하며 인간의 죄악은 신만이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기나긴 참회의 시간이 필요한 범인을 인간의 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기조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하느님이 보기에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할 죄인은 화끈하게 벌을 받는다는 것. 이번 시리즈의 범인은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진정한 악인이었고,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았다. 너무나 통쾌한 결론이었다.

#성베드로축일 #캐드펠수사시리즈 #추리문학 #도란군의서재 #엘리스피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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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과 문학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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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독일어 원제목은 ‘Luftkrieg und Literatur’으로 ‘공중전’으로 번역된 ‘Luftkrieg’는 ‘공중의 군사력을 이용해 적의 군사력이나 도시를 공격하는 전쟁의 한 형태’를 의미하며, 책 내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불리한 전황을 극복할 거의 유일한 방책으로서 적대국에 가했던 무차별적 폭격 작전을 뜻한다. 1943년 7월의 영국 공군의 ‘고모라 작전’은 군사시설의 정밀 타격이 아닌 한 도시 일대의 완전한 파괴를 목표로 함부르크를 폭격하였으며 단 하루 밤 사이에 4천 파운드의 폭탄의 투하로 약 4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수십만 번의 출격으로 이어진 이 공중전으로 100만 톤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타겟인 131개 독일 도시 중 몇 도시가 완전히 붕괴되고 약 60만명의 독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숫자 몇 개로 축약된 이 짧은 사실의 나열 속에 담긴 무서울 정도로 잔혹함은 인간의 본성이 결국은 사악한 것이 아닐까 라는 강한 의심을 갖게 한다.

여하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독일은 그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들이 행한 원죄가 있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나 아이러니한 것이, 희생된 독일 민간인 중 상당수는 ‘나치’와 무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원혼은 누가 달래주나? 그럼에도 독일 사회는 부끄럽고 잊고 싶은 과거를 재건되는 도시의 땅 아래에 묻어버리기 위해 집단적인 망각을 선택했으며, 문학계는 이에 동참하며 큰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 흔히 나타났던 ‘전후문학’을 생략하는 태도를 취했다. 바로 이 점을 제발트는 비판한 것이다. 누군가를 폭행해서 죄값을 치루게 된 가장이, 자신의 죄가 부끄럽다고 하여 불의의 폭행의 피해자가 된 가족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윽박지르며 막는 것이 맞는가? 수많은 군인들과 유대인인, 독일과 영국과 프랑스 등의 민간인의 죽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인 전쟁’으로 인한 필연적인 폭력과 파괴의 희생양으로서 구별 없이 추모 받아야 마땅하며, 그 원이 된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은 비판 받아야 마땅한 것이며, 이 추모와 비판의 도구로써 문학이 기능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제발트가 평생을 거쳐 추구해온 길인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공중전을 겪고도 자성하지 않는 인류에게 드는 준엄한 채찍질로 말이다.

#공중전과문학 #WG제발트 #문학 #도란군의서재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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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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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 전작주의의 여정이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의 평생의 저작 9편 중 남은 작품은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뿐.(이 글을 쓰기 전 ‘공중전과 문학’은 완독)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대문호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은 그러나, 문학성과 가독성은 반비례한다는 문학계의 오랜 법칙의 완벽한 예시라 할 정도로 엄청나게 난해하다. 그의 작품은 본인이 명명한 ‘산문 설화’라는 문학사상 가장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는데, 산문인지 운문인지, 사실인지 허구인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형식의 모호한 경계와 화자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가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파편화됨과 동시에 장과 장의 구별이 되지 않는 텍스트가 독자의 마음을 어지럽히는데, 결국 독자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사용해도 절대 탈출할 수 없는 미궁의 빠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글을 읽어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 모호함 그 자체 같은 글은 그 표현방식과는 다르게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트라우마의 회복’이 그것이다. 개인 또는 집단의 잊고 싶은 과오를 과거의 기억을 통해 끄집어내어 회상하는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의 상처를 봉합하는 것.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멜랑꼴리한 텍스트는 제발트식 글쓰기의 특징이자 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킥이 되는 것이다. 그가 이런 글쓰기 방식을 통해 집요하게 천작한 것은 자신의 민족이 행했던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집단의 과오-나치와 유대인-였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이 민족의 의도된 침묵과 망각에 처음에는 의아해하다, 이윽고 분노했다. 이 침묵과 망각에 동조하지 않고 자신의 글을 통해 강하게 비판하는 방법을 선택한 그는, 이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가 되었고 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 ‘아우스터리츠’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나’가 우연히 만난 노년의 건축사가 자크 아우스터리츠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히틀러의 유럽 장악 당시 유대인 어린이를 영국으로 구조하는 운동을 통해 네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살았던 아우스터리츠는 막연하고 모호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진실을 찾기 위해 떠났던 여정을 주인공에게 담담히 고백한다. 그 고백은 처연하며 동시에 아름답다. 우리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우스터리츠의 고백을 통해 기억의 복구와 진실을 위해 그가 거쳐갔던 장소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나치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했는지 알게 된다. 그의 성 아우스터리츠는 나폴레옹의 격전지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우리는 이 이름이 소설에서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아우슈비츠’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아우스터리츠가 끝내 표출하지 못했던 분노에 강하게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분노는 우리에게 역사적 소명의식을 부여하며, 이것은 제발트가 인류에게 주는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아우스터리츠 #WG제발트 #소설 #도란군 #도란군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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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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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이번 편의 제목은 '수도사의 두건'이다.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사용된 도구일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책 초반부에 답이 나온다. 이는 수도사의 두건을 닮은 맹독성의 약초를 의미하는 것으로 캐드펠이 만든 피부에 발라 근육통과 관절염을 완화하는 데 쓰이는 치료제로,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누군가 이것을 훔쳐 누군가를 살해하는데 쓴 것이다. 희생자는 자신의 장원인 말릴리를 기부하는 댓가로 수도원에서 죽을 때까지 숙식을 제공받는 계약을 진행하고 있던 거베이스 보넬이라는 영주. 수도원이 제공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부수도원장이 영지 기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냈던 음식을 먹고 중태에 빠졌다 끝내 죽게 된 것. 사건 현장에는 그의 재혼한 아내와 젊은 하녀, 그가 소유하고 있던 농노의 자식이라 자유민 자격이 있었으나 그의 결정에 의해 자유민 자격을 박탈당한 농노 청년, 그가 데리고 있던 하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가 함께 있었고 사건을 조사하던 행정관은 알고 보니 보넬의 유일한 법적 상속자였던 아내가 그와의 재혼 전에 낳은 자식인 소년 에드윈도 현장에 있었고, 보넬과의 다툼 끝에 현장을 먼저 벗어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행정관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에드윈은 보넬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되었는데, 캐드펠은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망인인 에드윈의 친모는 캐드펠과 결혼을 약속했던 첫사랑이었고 캐드펠은 이 사실이 밝혀지며 금족령이 내려지게 되는데...

'정말로 재미있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평이 떠오르지 않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다. 사건의 원인도, 경과도, 결말과 범인도 매번 다르지만 캐드펠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구원의 의지는 항상 같다. 살인에는 이유가 있고, 죄인이 죄값을 치르는 것이 세상에 무든 이득이 있으며, 죄를 저지른 자라 할지라도 속죄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것. 추리 소설 장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가치관이다. 추리 소설의 범인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불문율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저지른 자가 캐드펠의 바람 대로 정말로 남은 생애 동안 진심으로 속죄를 해 낸다면, 그것 또한 추리 소설에서의 합리적인 결말 아닐까?



#수도사의두건 #캐드펠수사시리즈 #북하우스 #도란군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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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머문 날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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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가장 독창적인 작품 형식인 ‘산문설화’를 창조한 독일문학의 거장 제발트의 독창적인 작가 비평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장 자크 루소를 빼고. 그러나 루소가 시대의 뛰어난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소설가이자 작곡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멜랑꼴리한 상실과 파괴라는 제발트적 특성과 묘하게 어울리는, 시대와 현실에 어울리지 못하고 우울로 고통받았고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머물렀던-문학사에 있어서도 지리사에 있어서도-작가들에 대한 제발트의 무한한 사랑과 애정이 담겨 있는, 비평서라고 쓰고 덕질보고서라고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나름 애서가인 나에게도 생소한 독일문학사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여기에는 중세 서민들의 유일한 읽을거리였던 이야기가 담긴 달력 제작가와 극사실주의 화가도 포함되어 있다-에 대해 제발트는 어떻게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일까? 언뜻 보기에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6명의 인물들은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는 행위에 있어서 타협이 없는, 일종의 장인 정신이 깃든 수고스러운 수공예 작업을 고집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평범한 삶을 포기했을까? 그것은 그들의 타고난 성정 때문일수도,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한 시대의 핍박 때문일수도 있다. 그들은 이런 현실의 도피처로 ‘전원’을 선택했다. 정신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전원. 그러나 전원은 정신의 고통과 우울의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사경을 헤매는 불치병 환자에게 투여하는 모르핀과 같이 그들의 정신을 잠시간 고통에서 잊을 수 있게 해줄 뿐이다. 그들은 이 잠깐의 평온 속에서 필사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평범한 삶에서는 결코 작품을 탄생시킬 수 없는 예술가의 아이러니! 이제 중2밖에 안된 미술로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큰딸마저 ‘피곤하거나 우울하거나, 아무튼 정신적으로 극단에 몰린 상황에서만 그림이 잘 그려진다’고 푸념하는 예술의 고통!

평범한 우리 인간들은 참으로 다행이며 행복할지어다. 정신의 살을 도려내 가며 철저한 몰입과 예술혼으로 완성시킨 그들의 작품을 우리는 이토록 평온하게 읽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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