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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이름 그 자체가 장르인 작가들이 있다. 이를테면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라며 스타일이 문학의 처음이자 끝이라 천명했던 귀스타브 플로베르처럼. 그는 흔하디 흔한 유부녀의 불륜과 사치의 일탈을 ‘마담 보바리’라는 걸작으로 탄생시켰다. 내용이 아닌 형식을 중시하는 그의 작품은 지금도 수많은 독서가들의 서가에 꽂혀 수없이 읽히고 있다. 위대한 문학가를 고름에 있어 극단론은 지양하고 싶지만,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스타일’의 정점에 선 사람은 단연코 ‘구병모’이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과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이세계에 속해 있다. 아가미가 있는 인간, 현역 살인청부업자인 노년의 여성, 소원을 이루어주는 특별한 빵을 만드는 제빵사 등등. 구병모의 인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신작도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타인의 절창의 단면을 만져야만 생각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젊은 여성과 그를 원하는 의문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니. 어떻게 읽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남편과의 사별 후 입주 가정교사 면접을 위해 한 대저택을 방문한다. 그녀는 대저택의 정원에서 느닷없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누군가 한 남성을 죽기 직전까지 고문하고 구타하고 있었던 것. 그래도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오언은 한 아가씨가 다가가 베인 상처에 손을 대더니 그가 끝까지 숨기던 비밀을 알려주고 홀연히 저택 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나를 저택의 주인인 성공한 사업가 ‘오언’은 합격시키고, 이 수수께끼의 대저택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집 안에는 그 아가씨와 오언의 수행비서들, 입주 도우미만 있을 뿐이며, 오언은 수시로 집을 비우기 일쑤다. 냉정했던 아가씨는 점차 나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아가씨의 능력의 기원과 과거와, 그녀와 오언의 관계에 대해 점차 알아가게 된다. 이윽고 나는 아가씨를 위해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는데…
구병모의 스타일은 ‘특별하다’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의 문장은 다량의 수식어가 접목된, 호흡이 매우 긴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그의 스타일은 ‘미사여구로 현혹하는 늘어진’ 글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과 여기서 파생되는 심연의 철학적 사유를 탐구하는 구병모의 소설은, 어떻게 보면 이런 화려한 스타일의 글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이 눌변이자 단변인 경우를 보지 못했듯이.
구병모는 소재의 발굴에 있어서도 또한 특별하며 변칙적이다. 접촉 사이코메트리는 흔하디 흔한 히어로의 능력이나, 상처를 접촉해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설정은 너무나 기발하지 않나? 타인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종국적으로는 빈번하게는 내면의 상처로, 드물게는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에서의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결국 ‘상처’라는 것은 이해의 트리거가 되는 것이며, 이를 비틀어 외면의 상처를 만져야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야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p.344)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 상처를 만지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하지만, 결국 만져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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