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을 즐겨 읽는 나는 가끔 좀비로 멸망한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아이가 셋이나 있고 별다른 생존 기술이 없는 내가 과연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무법천지의 세상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상상은 내 머릿속을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인데, 잠깐의 생각이라도 너무나 끔찍한 좀비에게 가족을 잃는 것과 같은 일은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 없는 쾌락은 어찌나 달콤한지!
그러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의 배경이 현실과 맞닿아 있어 정말로 그런 세상이 될 것 같다면, 그 세상에서의 나를 상상하는 일은 조금은 진지하고 무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한 환경 오염, 매일 지구 어딘가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는 전쟁, 현대 기술을 잠식하는 AI가 제2의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될 거라는 공포감 등은 근미래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전 지구적인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위계와 정치의 통제를 벗어난 인간이 얼마나 야만적이 될 수 있는지는 수많은 역사의 과오가 증명해왔고, 우리는 이런 세상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쓸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열다섯 살 소녀 로런이 사는 세상이 그렇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지속된 경제 위기로 2024년 미국은 무법지대가 된다. 마약과 총, 살인과 방화와 매춘이 득세한 세상에서 인간들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장벽을 둘러싸는 것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로런은 어머니의 약물 남용으로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병은 본인이 인지하는 고통이나 쾌락 같은 타인의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병이다. 험난한 이 세상에서 초공감증후군이란 큰 약점이 되기에 로런은 이 병을 숨기고 위해 노력해왔고, 다른 사람보다 더더욱 모든 이가 고통받지 않고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그녀는 또한 인류가 미래와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변화'를 신으로 믿는 지구종(Earthseed)을 만든다. 그녀는 믿음과 교리를 글로 기록하고 이 종교가 세상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그녀는 장벽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장벽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고립 상태에서의 완전한 자립과 물리적으로 완벽한 장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풍의 눈처럼 불안한 평화가 지속되던 장벽 안에서의 삶은, 조그마한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광기와 폭력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외부인의 약탈과 살육과 방화로 모든 가족을 잃은 로런은 결국 장벽 밖으로 내몰리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지구종의 믿음을 품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고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이 소설을 기획할 때 마법이나 초능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세상이 아닌, 현실성 있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근미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세상 편하게 살고 있는 인류에게 강력한 경고를 가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 소설에서 그려내는 기후 변화, 환경 오염, 경제 위기, 무너진 공권력과 국가, 거대 자본을 앞세워 노동자를 착취하는 대기업,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의 풍경은 좀 과장하면 현실의 2026년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서사는 다중적일 수밖에 없다. 로런을 포함한 인간들의 다채롭고 제각각인 생존기와 지구종 종교의 창설기, 지구의 멸망기라는 진중하고 복합적인 이야기는 그녀의 뛰어난 문장력과 유려한 내러티브로 화려하게 빛난다.
그날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인간이 우주로 나가서 인류의 씨를 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를 창시하는 꿈을 꾼다는 것은 얼마나 황당무계한가? 아니, 그렇지 않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당신도 지구종의 교인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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