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단백질>

나는 은박에 싸여 작은 종이 상자에 담겨져 있다가 당신에 의해 개봉되었다. 튀겨진 내 몸은 채 열기가 가시지 않아, 은박이 젖혀지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나는 여덟 살 난 닭돌이. 하늘을 날고 싶었지만 날개가 작아 날 수 없었다. 그리고 가난한 아버지는 나를 잡아, 털을 뽑고, 기름에 튀겨 당신에게 팔았다. 그렇게 내 몸 값은 9천 원. 차마 내 목을 내리칠 수 없었던 아버지에 의해 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튀겨진 내 모습은 참혹하다. 당신들은 쉽게 나를 먹을 수 없다. 그런 당신들에게 아버지는 생전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인다. 오,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나는 이 튀겨진 뜨겁고 참혹한 몸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그들로 하여금 어서 빨리 나를 먹어치우게 하세요. 그래서 나를 방귀이게, 트림이게 하세요. 나는 이제 그저 공기이고 싶어요.....그들 중 하나가, 내 뼈를 갈아 종이컵에 담는다. 그들 중 다른 하나는 풍선에 내 생전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오오...나는 그 풍선에 매달려 난다. 날고 있다.

<콜라맨>

아이들은 순수하고 또 그만큼 잔혹하다. 영화 <킬링 필즈>에서 사람들의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워 무심히 살인을 저지르는 아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비뚤어진 집>의 소녀처럼, 어린 나처럼, 그리고 이 만화 속의 아이들처럼. 그들에게 콜라맨이라 불리는 이 정신지체 장애인은 사람도, 어른도 아니고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콜라 한 병이면 꼬추도 까보여주고, 콜라 한 병이면 수족처럼 부려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발적으로 발생한 어떤 사건을 은폐시키고, 그 죄를 뒤집어 씌울 수도 있다. 콜라 한 병이면 말이다. 컬러로 그려진 <내사랑 단백질>에 비해 펜선이며 그림체가 세련되지 못하지만 그게 오히려 이 이야기의 남루한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진다.

<공룡 둘리>

그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를 생각하는 자리에 낙관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피엔딩의 영화, 사고나 화재의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사람,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연인이나 더없이 예쁜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내게는 다 슬프고 불행하게만 그려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나 뿐인 건 아니었는지 여기, 불법체류자가 된 둘리와, 고길동에게 사기를 치다 그 아들 철수에게 팔려버린 도우너와,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어 몸을 파는 또치와, 양아치가 되어 감방에나 드나드는 희동이와, 밤무대 가수가 된 마이콜이 있다. 제대로 공룡이 되지도 못하고 어린 시절의 동글한 얼굴에 주름만 잔뜩 껴버린 둘리는, 마지막에 고길동의 무덤 앞에 몸을 둥글게 말아 눕고, 정말 공룡의 모습이 되어..다시..빙하기가 오려나봐요...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제...무엇이 멸종될 것인가.

 

이 책이 도착한 날은 5월 4일이었고, 그 날은 고조할아버지(할머니인가 암튼) 제사였다. 나는 사흘동안 머리를 콕콕 찧어대는 편두통때문에 돌기 직전이어서 조용히 우리 방으로 들어와 이 만화책을 펴들었는데, 작은엄마가 들어와선 일은 안돕고 결혼도 안 하는 주제에 늦게 들어와 만화책이나 보고 있네, 하는 눈으로 나를 봐주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은 너무나도 괜찮았고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그 늦은 시간에 제삿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새벽 2시 넘어까지 뒷설겆이를 다 하고 나서도 잠이 오지 않아 오래 뒤척였었다.  이 책엔 위의 세 작품 외에도 단편 세 편이 더 수록되어 있고, 또 몇 편의 쪽만화가 같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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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쏠키! 이거야원. 나가 금방 방청소를 했는데(요즘엔 왜 자꾸 방청소만 하는 거야)진공청소기를 벽에 세우려고 가져가면서 이 청소기가 꼭 나뭇잎을 뜯어먹던 목이 아주 기다란 브라키오사우르스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 공룡이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룡 둘리...아, 그런데 내가 저 이미지 그림을 어데서 보았단 말인가. 야구모자를 쓴 공룡 둘리...신문에서 보았던가. 왜 갑자기 기억살싱증 환자처럼 그렇게 저 그림만 수면위로 불룩 튀어오르고 만 것일까. 아, 쏠키 어린이, 오랜만의 감상글 아주 잘 봤어요. 대략 추천이오.

비로그인 2004-05-0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공룡 둘리]와는 너무나도 극명한 시점인가봐. 극과 극은 통한다던데..근데 저 만화작가가 누구여? 아, 최규석이란 만화작가구나..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블랙코미디 종류인가...땡기는구만. 일단 보관함..

soulkitchen 2004-05-0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실은 울덜의 찌찌뽕에 대해서 저도 어제 성님 동요 얘기 아래에다 좀 길게 썼는데 보니 너무 주책이라 지워버렸떠요. 저도 요새 만화노래가 잘 불러진다 뭐 요런 요지로다가 썼는데..어,음..이 만화 그림 이거 아마 보셨을 거예요. 저도 지난 주던가, 지지난 주던가 신문에서 봤거덩요. 그러곤 바로 주문해버렸는데, 성님이 공선옥의 리뷰를 좀만 더 일찍 써주셨으면 그것까지 같이 주문했으면 딱 좋았는데 하면서 안타까움에 무릎팍을 내려쳤댔죠. 헷,,제가 책을 자주 못 사서뤼..

2004-05-06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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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6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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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6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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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6 1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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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옴마나, 저 시악시, 창피한 줄도 모르고..쭈쭈 보인다, 쭈쭈..음, 역쉬 수희브랜드가 인지도가 있긴 있어..수희섹쉬버전인가..어, 동사무소 갔다와야는디..글고 은행도. 카드 마그네틱이 고장났나벼. 암튼 오널 나가 쉬는 날이거덩. 회사도 갔다와야 되고..엇뛰..

2004-05-08 0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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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8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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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8 0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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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8 0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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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8 0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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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8 0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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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8 1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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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9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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