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바로 여기, 지금의 진보를 위하여 - 진보 지식인의 눈으로 현실 읽기" 

(조국, "보노보 찬가", 생각의나무, 2009) 

  제목을 장식한 보노보는 아프리카의 열대 밀림 속에 사는 영장류의 한 종류이다.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와는 서식지도 생김새도 많이 닮았지만, 정작 그들이 이룬 사회의 모습이나 그 속의 생활양식은 완전히 다르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경제적 이득이나 권력을 둘러싸고 공동체 내부에 경쟁과 권력 싸움이 일어나고, 그 사이에서 구성원들의 권리는 무참히 짓밟힌다. 그러나 보노보 사회는 평화와 상호 공존, 그리고 평등을 지향하며, 구성원들 간의 갈등 해결은 무력 충돌이 아닌 사랑과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폭력적인 ‘침팬지 사회’와 평화로운 ‘보노보 사회’의 대비 구도는 이 책에서 현대 한국의 상황을 표현하는 중요한 비유로 쓰인다.

   조국 교수가 『보노보 찬가』를 쓴 2009년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반쯤 지난 때였다. 그 1년 반 동안 사회 전반에서는 노동, 복지, 평화, 인권과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기업 친화적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적 ․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졌고,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미덥지 못한 모습은 수많은 시민들을 촛불 넘실거리는 거리로 불러냈다. 저자는 이렇게 인권이나 복지 등 기본적 가치가 경시되고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침팬지 사회’에 비유하여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2011년 5월, 이 책이 나온 지도 또 1년 반이 흘렀다. 서울에서 개최된 G20 회의는 한국이 신자유주의를 충실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연달아 터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은 한반도의 평화를 다시금 위협했다. 진보 진영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각 세력 간의 분열도 계속되어 지방선거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두고 많은 논란이 빚어졌다. 결국 그 이후로도 한국 사회는 그리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현재의 진보 진영에 대한 진보 지식인의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 사회의 진보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겠다는 너무 큰 목표만을 바라보다가, 혹은 투쟁과 엄숙한 시위라는 너무 낡은 방식과 구호만을 고수하다가 대중과 유리되어 버렸다.

   조국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침팬지의 정글 세계, 즉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의 한국 사회 비판이 전반부의 내용이다. 저자는 현 상황의 위기를 다양한 측면에서 진단하고 있는데, 노동과 복지 문제, 평화 문제, 그리고 인권 문제가 주요 쟁점이다.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한국 사회도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되었고,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상품화시키고 있다. 노동 문제는 더 심각해서 비정규직은 점점 늘어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현 정부 하에서 거의 소득이 없다. 청년실업은 점점 늘어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진영이 집권하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평화 구도에도 문제가 생겼고, 촛불시위를 진압할 때 등의 상황에서는 이전 두 정부보다 훨씬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배려는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을 가속화시킨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책의 전반을 구성한다.

   모두가 공존하는 보노보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보 진영이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내용이 책의 후반부를 이룬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이전까지의 진보정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보수당에 대비되어 대안세력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진정한 대안으로서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진보 진영 자체에서 목적과 행동 방식을 변화시킬 것을 촉구한다. 이전까지 큰 목표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진보적 가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여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며, 평화를 위해 남북 관계 개선과 탈권위주의를 추구하는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유권과 사회권, 그리고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의 인권까지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단순히 현실 한국 사회와 그 사회 기득권층인 보수 세력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서, 진보 진영 내부의 시선에서 현실을 명확히 파악하고 한국 진보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의의이다. 이제까지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은 보통 그 상대편인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때때로 합리적 비판보다는 비합리적 비난만이 오가곤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현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조국 교수 자신이다. 진보적 가치를 옹호하고 그 가치가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눈으로 진보 진영 내부를 바라볼 때 진정어린 비판과 조언이 가능하다.

   저자의 현실 비판은 또한 단순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보노보 사회’라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이어진다. 이제까지의 진보 진영이 오래된 구호와 큰 목표만을 바라보고 보수 세력에 투쟁해 왔다면, 저자가 지향하는 진보 진영 모습은 평화와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유쾌한 보노보들이 서로 대등하게 만나 기득권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 보노보 사회에서는 큰 목표나 시대착오적이고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과격한 구호 대신,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 요소들이 저항의 중심이 된다. 이전까지의 진보 진영에서의 주장과는 달리, 비정규직 문제 등 보다 ‘촛불 정국’의 현실에 맞고 융통성 있는 새로운 진보 담론을 제시했다는 것에 이 책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물론 이 책의 이러한 성과는 또 다른 한계점을 안고 있다. 우선 조국 교수가 현재의 진보 진영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며 비판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진보주의자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의 진보 세력의 시각에서 보면 저자는 엄연한 기득권층이며 사회 엘리트이다. 이제까지 사회 진보를 위해 ‘투쟁해 왔던’ 현재까지의 진보와는 다른, 일종의 외부인의 시각인 것이다. 실제로 노동 현장에 투신한 적 없고 복지가 필요할 만큼 빈곤한 상황을 겪어 보지 않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미국 유학파 교수가 현재까지의 진보 진영의 움직임을 얼마나 진정성과 치열함을 갖추고 바라볼 수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사회적 ․ 경제적 배경이 그 사람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설령 저자의 주장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해도, 민중해방운동이나 노동 운동 등 ‘프롤레타리아’가 중심이 된 운동을 펼쳤던 이전의 진보 진영에서 ‘좌파 부르주아’이자 외부인인 저자의 주장을 진정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저자가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교수의 신분이라는 점도 비슷한 문제 요소로 작용한다. 저자가 이 책과 이후의 저서에서 비판과 조언의 진정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회 현실과 진보 진영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자칫 사회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자칫 사회와 동떨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딜레마는 이 책의 두 번째 한계점과도 연관된다. 과연 조국 교수가 이 책에서 추구하는 ‘보노보 사회’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조국 교수는 이 책에서 현재의 진보 진영이 대중에게 생소하고 실천 가능성이 낮은 목적, 즉 ‘크고 낡은 깃발’만 내세운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한 비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노보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 몇 가지 요소 역시 이전에 진보 진영에서 제시한 담론보다는 훨씬 구체적이다. 이러한 주장을 저자가 원래 추구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으로서의 진보 세력(70면)”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제시해 주었지만, 정작 어떤 정치적 방법을 통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 앞서 지적한, ‘직접 행동하는 정치가로서의 조국’이 아니라 ‘비판하고 조언하는 외부 지식인으로서의 조국’의 정체성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국 교수의 목소리는 현재의 진보 진영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비록 외부자의 시선이라도, 혹은 ‘강남 좌파’라고 때로는 비난받는 기득권자의 비판이라도 한국 진보 진영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상당히 냉철하고 또 유익하다. 저자가 맺음말에서 거듭 지적하듯 “한국 사회는 롤링 같은 부자나 진보나 인권을 위해 뛰는 하버드 졸업생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198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조국 교수가 ‘부르주아 좌파’인지가 아니라, 그 “‘위선’과 ‘가식’(198면)”을 지금 행동에 옮기고 있느냐이다. 최근 몇 년간 저자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배신(199면)”을 계속하며 직접 행동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은 자신을 위해서도,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헛되지 않은 듯하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피 끓는 혁명가는 물론 필요하지만, 그 과정을 냉철히 지켜보고 따끔히 충고하는 지식인 역시 언제나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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