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래, 현실과 소통하다 - 칠레 현대사와 민중가요, 시, 문학"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의 시, "칠레의 밤""부적"- 로베르토 볼라뇨> 

우선 제목에 대한 변명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글의 ‘노래’는 보통 말하는, 가락이 붙은 노랫말을 가수가 부르는 형식의 노래만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문학 작품은 결국 ‘노래’이다. 작가는 현실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노랫말로 전하고 자신만의 문학적 변주를 통해 가락을 붙인다. 노래는 현실 속에서 태어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민중의 힘을 더해주고 역사의 슬픔을 위로한다. 사회주의 아옌데 정부의 집권부터 1973년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 그리고 이후 이어진 17년간의 군부 독재까지. 역동적이면서도 슬픈 현대사를 간직한 칠레의 노래들이 유독 깊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칠레 현대사의 흐름에서 탄생한 노래들을 민중가요, 시, 문학의 순서대로 범위를 확장시키면서 다루려 한다.

  거듭 강조하듯, 노래는 현실에서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칠레 현대사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류의 노래들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굴곡진 역사를 명확히 반영하고 있다. 1970년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의 아옌데 정권이 집권하고,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정치를 선언한다. 이는 사회주의의 확산을 우려한 미국과 이전까지의 기득권층의 반발을 부른다. 결국 1973년 피노체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죽는다. 이후 17년 동안 군부 독재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등 인권유린이 자행된다. 야만적인 억압의 시대는 1990년이 되어야 끝이 난다.

  칠레의 노래들 중 대부분은 앞서 말한 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가장 작은 범위로 민중가요가 있다. 아옌데 정부가 집권한 ‘칠레 혁명’부터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까지 역동의 세월을 직접 관통한 빅토르 하라(Victor Jara)의 노래들이 대표적이다. 사회의식이 강한 노래를 통해 민중과 소통하고 사회주의 운동에 실제로 참여한, 그리고 쿠데타 직후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빅토르 하라는 쿠데타 아래 스러져 간 저항 세력들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빅토르 하라가 살해당하기 직전 국립 경기장에서 쓴 노랫말은 당시의 비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불렀다는 ‘우리 승리하리라(Venceremos)’는 아옌데 정부,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칠레 민중가요이기도 하다.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의 소설 『영혼의 집』에 등장하는, 블랑카의 연인 페드로의 모습에서 기타 하나를 들고 민중의 편에 서서 노래하는 저항 가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민중가요 곡에서 가락을 떼고 보면 한 편의 시가 된다. 칠레 시의 중심에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가 있다. 그 자신이 공산주의자였던 네루다는 다양한 민중시를 자신만의 아름다운 문학적 감수성으로 써냈다. 네루다의 시 세계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부터 삶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는 시, 그리고 정치적 신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시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네루다의 정치적 신념과 민중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뛰어난 문학성은 네루다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칠레의 ‘국민 시인’으로 만들었다.

  시에서 함축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말을 구체적으로 풀어 놓은 것이 소설이다. 이 시점에서 노래는 문학 전반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나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이 칠레의 현실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볼라뇨는 그의 소설 『부적』과 『칠레의 밤』등에서 군부독재 하의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부적』에는 억압적인 현실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고, 『칠레의 밤』에는 군부 체제에 유착하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칠레 문인들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다. 그 자신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친척이며 망명자인 아옌데는 소설 『영혼의 집』에서 페미니즘적 시각과 마술적 사실주의의 기법을 통해 칠레의 역사를 그린다. 특히 사회주의 대통령의 탄생에서 쿠데타 직후까지를 그리는 작품의 후반 부분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수파의 대표자 격인 에스테반 트루에바나 사회주의 혁명가인 페드로, 그리고 학생운동을 하는 미겔은 당시의 사회를 명확히 반영하는 인물이다.

  현실을 반영한 노래는 현실 속에서 움직인다. 칠레 역사 속에서 노래는 크게 ‘현실에 대적하기’와 ‘현실을 위로하기’라는 두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노래는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처하는 수단이 된다. 노래는 민중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억압적 현실을 비판하고, 보다 많은 사람의 참여를 위해 민중을 선동하며, 그 힘을 모아 부당한 현실에 저항한다. 볼라뇨의 소설은 군부독재 시절 칠레 사회, 그 중에서도 기득권층을 차지한 문인들을 비판한다. 네루다는 거친 목소리로 “와서 거리의 피를 보라(『제 3의 거처』-「그 이유를 말해주지」)”며 예술성에만 치중하는 문학을 비판하고 현실 참여를 촉구한다.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 네루다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시를 읊으며 저항 의지를 다진다. 어디선가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빅토르 하라의 우렁찬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쿠데타 직후 집에 침입한 군인에게 네루다가 한 말은 현실 상황에 대적하는 노래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신들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 시밖에 없소.”

  노래는 슬픈 현실을 위로하고 그 속에 쌓인 민중의 한을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고통스러운 역사 속 민중들이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하고, 그 한을 위안하고 씻어주며, 끝내는 역사의 앙금을 딛고 화해를 추구한다. 볼라뇨의 소설 『부적』에서 화장실에 갇힌 시인 아욱실리오는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고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계속해서 시를 읊는다. 군부독재가 끝내 종식된 1990년 3월 혁명가들의 한이 서린 칠레 국립 경기장에는 쿠바 민중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노래 “이상한 사람”이 울려 퍼졌다. 빅토르 하라에게 바쳐진 이 노래는 슬픔과 고통의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고 희생자의 한을 삭이는 ‘씻김굿’의 역할을 했다. 군부 독재가 끝나고 사회 분위기가 많이 자유로워진 현재의 칠레에서, 노래는 역사적 슬픔을 딛고 대립되는 세력 간의 화해를 찾기도 한다.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보수 세력과 아옌데를 기리는 진보 세력의 대립이 계속되는 ‘한 지붕 아래의 두 집’ 칠레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사회 통합의 상징으로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사랑받는다. 이사벨 아옌데도 『영혼의 집』의 결말부에서 보수파인 에스테반 트루에바와 혁명가 연인을 둔 손녀 알바의 화해를 그림으로써, 보수와 진보 사이의 공존을 모색한다.

  물론 이 역할 분류가 절대불변의 것은 아니다. 현실 상황에 따라 노래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고, 한 노래가 여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는 비단 칠레 역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다. 한국 현대사에서 ‘아침 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민중가요들이 지닌 의미 변화가 대표적이다.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의 한국에는 빅토르 하라와 같은 전설적인 저항 가수는 없었지만, 시대 상황 속에서 대중의 목소리를 내는 민중가요는 존재했다. 시위가 한참일 때 울려 퍼지던 노래들은 참여를 촉구하는 저항과 선동의 노래였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한참이 지난 지금 두 노래는 민주화 운동을 회고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위안의 노래이며, 굴곡진 역사에 대한 한이 서린 노래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마지막 장면에 울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사건 전체를 효과적으로 대표한다. 이와 같이 칠레 현대사 속의 노래들이 맡은 역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노래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작사자가 가사를 쓰고 작곡자가 음을 붙이지만 결국 노래를 부르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입이다. 노래를 만드는 사람, 즉 작가가 사람들에게 정하고 싶은 말을 가사에 담고 자신만의 색채로 가락을 붙이면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민중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꽤 오래 전에 발표된 빅토르 하라의 노래들은, 네루다의 시는, 볼라뇨와 아옌데의 소설은 아직도 그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지구 반대편 국가의,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쓰이고 불린 노래들이 무언가 가슴을 울리게 하는 이유는 칠레의 슬픈 현대사가 한국의 현대사와 상당히 닮아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래 안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그 노래를 부른 민중의 목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