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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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행의 기술로 내 손에 한번 잡혔던 알랭 드 보통. 번역투는 역시나 잘 읽히지 않아, 하고 주절주절 변명한대도, 왠지 욕심이 생기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알랭 드 보통.  

이번에 그의 신작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 나왔다고 해서 교보에서 몇번이나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서서 읽기에는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았던 책.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게 되어 어렵사리 일주일 동안 붙들고 늘어졋다. 결국 성공! 역시나, 처음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1/3까지만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된다, 는 지론.  

이 책은 주인공인 한 여자를 만나 그녀의 전기를 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나도 한번쯤 다른 이의 전기를 쓰는 일을 어떤걸까 하고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일반적인 전기와 전혀 다르게 전기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이사벨의 삶의 연대기 뒤편에 숨어있는 것을 쓰기에 앞서, 내가 그녀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부터 간략하게나마 쓰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들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전개됐는지, 내가 파악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 이해한 것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편견이 개입됐고, 통찰은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증명하려면 이사벨의 전기 작가인 내가 그녀의 어린 시절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당분간은 그녀와 데이트를 즐기는 특권을 누려도 괜찮을 것이다."  *p46
 

사실 그런걸지도 모른다. 한 사람과 보다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기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것, 알고 싶은 것, 알아가게 되는 것, 그리고 이해하고, 오해하는 것일지도.  

한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고 그 사람과 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친밀함과 수많은 느낌들. 그리고 좋은 것만 알아가는 것에서 이제 그 사람의 모자란 부분이나 싫은 컴플렉스, 이해할 수 없는 고집스런 부분을 보면서 ... 자, 이제 이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알렝 드 보통은 다른이들보다 피부가 약 2mm정도 얇아서 세심하고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현상만 받아들인다면 그는 한꺼풀 벗겨내고 분석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분석은 우리가 하고 있는 수 많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설명해주고있다. 내가 왜 그 사람에게 그러했는지,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이 책은 아무래도 남자가 보는 여성이다보니, 의외로 나 역시 주인공과 같은 행동들을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은 남자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일수도 있겠다 싶은것이, 아 찔려라. 

아무쪼록, 그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과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서,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역시나 반쯤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을 최소 1/3쯤 포기하지 않는다면, 1/2쯤 참지 않는다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저자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전기를 써 내려간 것 뿐이어서, 만약 진짜 이런식의 사랑을 전개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고 상상했더니 소름이 쫙 끼쳤다.  

아무튼, 흥미로운 책 한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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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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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박민규,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세상에 의해 눌려진, 억압된 자아에 단비를 기다리는 그의 바램은 지금 어떻게 현실화되고 있을까? 문단에 등단했으니 우선 오케? 그럴까?  

삼미 슈퍼 스타즈는 그의 작품중 나름 유명한 책이 아닐까 싶다.. 길다. 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중편정도의 길이에 익숙해졌나보다. 혹은 너무 띄엄띄엄 읽어서 그럴까. 한 사람의 학창 시절부터 중년까지의 이야기가 참 길게도 느껴졌다. 그에 반해 디어헌터는 끌어당기는 맛이 있어서 굉장히 빨리 읽어내려갔다는 생각. 물론 분량의 차이도 있지만.  

박민규는 역시 억압된 세상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삼미도 그러하고 디어헌터는 약간의 판타지적인 느낌. 그런데...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이야기에 어디선가 본 듯한 스토리... 혹시 영화화됐었을까.  

삼미를 읽고나서 내 인생에 대해 내 삶에 대해 많이도 생각해봤다. 사회의 흐름을 따라 사회의 파도를 타고 그렇게 아둥바둥 흘러가는 것이 과연 좋은일일까나. 삼미의 히트작인 노히트, 노런. 애써 치지 않고 애써 달리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것을 모토로 삼고 치뤄낸 경기의 결과는 과연 어떨까? 그러나, 그 결과만 가지고 그들을 패배자라고 할 수 있을까?  

박민규는 철저히 아니라고 말한다. 1인칭 주인공의 시점에서 써내려간 그의 이야기이니만큼. 

아무튼, 박민규.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했다. 예전의 나와 많이 달라져가고 있던 이 시점에서 브레이크를 걸까, 아니면 엑셀을 밟을까. 혹은 옆길로 꺾을까, 차를 갈아탈까, 기름을 바꿀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 적절한 추천. 국장님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난지 시간이 지나자, 또 그런 고민은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쯔쯔 -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 고민은 허무하다. 좀 생각좀 하고 살아보아 -  

나, 나답게 살고 싶다. 나답게 - 설사 그것이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지름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 그것이 옳다고, 그들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다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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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비
아사다 지로 지음, 김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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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아름답다.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단편집들보다도 이 책을 아사다지로다운 단편집이라고 꼽고 싶다.

그는 개인적인 감상 따위보다는 순전히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주인공들의 사정만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이 작품은 다소 감상적인데, 철도원보다도 괜찮은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라는 번역자의 이야기. 역자후기마저도 저자에 감동받아서인지 따뜻하기 이를데 없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역시나 바보다. 버림받고, 이용당하며 속임을 당해도 괜찮다. 그 사람들은 그저 우직하게만 한 평생 살아왔다. 그저 사랑하고 삶의 기대들이 세상으로부터 하나하나 거절당할때마다 점점 작아지면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들을 농락하는, 욕심많고 약아빠진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마음의 어쩔 수 없음도 안다. 그렇게 그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그렇게 산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무언갈 잃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저, 착한 사람들일 뿐이고 그렇게 자리 하나를 더 내어줌으로 인해 그들은 한뼘 더 성장해간다는 느낌이다. 그것이 저자의 의도일지라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 말들은 상관관계가 없다. 주고 받는게 아니다. 그냥 각자가 따로따로 누군가의 마음에 존재할 뿐.  

이 책을 다 읽은 것은 일요일 아침, 햇빛이 내리쬐는 2호선 대림역 맨 앞칸. 왠지 감성적이 되서 카메라를 들고 떠다니는 빛을 프레임 안에 넣어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모든게 괜찮아 지는 느낌이었다. 

아사다 지로,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여러번 당해도 괜찮다고, 바보같이 살아도 괜찮다고

또 한번 설득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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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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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없는 인생은 kin 이다. 상상할 줄 모르고, 엉뚱한 곳으로 빗나갈 줄 모르는 인생은 스스로 만든 재미없는 인생이다. 가장 어려울 때에 가장 엉뚱한 상상을 해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재미나게 만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렷다. 그건 가장 어렵기도, 가장 비참하기도, 가장 쉽기도 하다.

어른이 될 수록 상상하기는 힘이 든다. 적당히 눈 가리고 적당히 귀를 막지 않으면 현실이라는, 세상이라는, 남들의 눈 이라는, 커다란 검은 무리에 냉콤 붙잡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불면증이라는 것은, 그런 것들에 눈 뜰때, 그런 것들이 80% 이상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을때 생겨나는 것이다.  

될데로 되라지 - 어쨌든 밤인 것이다.  

아무쪼록 K씨의 급작스런 선물로 읽게 된 이 책은 단번에 휙 나를 잡아 끌었다. 판타지, 다. 힘든 세상 속의 판타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무원 준비를 하며 시골 오리배 선착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이 보게 되는 오리배 환상이다. 보트피플을 빗댄 이 이야기는 멋지다. 이 세상의 환타지라는 것은, 약자들이 마법같은 방법으로 강자들을 깜짝 놀래준다는 것에 다름없어져서 슬프긴 하지만. 오리배 연합이라는 단체가 구성되어 그들은 오리배를 타고 국가와 국가를 넘나든다. 돈 많은 사람들이 타는 제트기?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다 필요없다. 그들은 오리처럼 발을 휘저으며 국가와 국가를 넘나든다. 조금 힘든것쯤은 댈 것도 아니다.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를 하며 의욕없이 살던 오리배 회사의 사장은 오리배 연합에 가입해 오리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  

... 아주 간단하게 실마리가 풀릴 것 같지 않은가? ...  

그, 송강호가 헤드락으로 사람들을 넘어뜨리던 그 영화도, 이 책이 원작이었을까 싶다. 어느날 헐크로부터 헤드락을 당해 넘어진 소심한 사람이 헤드락을 배워 결국 이기고 만다는. 소시민이 꿈꾸는 환타지- 로 기가 막히지 않는가? 속이 시원하다~ 속이 시원해! 

어쩌면 그야말로 소심한 소시민들의 판타지일지도.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진다면, 박민규의 문학적 가치는 분명해지는 것이 아닐까? 더불어서 어떻게 보면 가벼운, 어떻게 보면 너무 적절하게 쓰여지는 어미의 반복, 줄바꿈의 원칙들. 어느 것 하나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없다. 적절하기 그지 없다.  

박민규, 이렇게 나는 그를 지지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가벼우나 그 가벼운 터치는 마냥 가벼운 것으로 끝나지 않기에 의미있다. 아아, 소시민인 나는 그를 지지한다. 박민규, 그의 다음 작품으로 줄서고 있는 것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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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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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읽었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역시나 읽었다는 것을 슬쩍 한번 훑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역시나 A여사의 생일 선물 시리즈 중 하나.  

단편모음인데, 문득 드는 생각은 아사다지로 답게 앞에서 나온 주인공이 뒤에서 죽은 주인공과 연결된다든지,그런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해서 다시 한번 읽는 지금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일본이름들은 퍽이나 와닿지 않기도 한데, 그걸 유심히 보려니 머리가 아작난다... 는 오바지.  

이 책을 읽기전에 아사다 지로의 고전물을 2편이나 읽어서 그런지, 지로의 현대물을 보니까 왠지 조금 낯설기도 하고 ... 그러하다. 

다시 한번 읽으니까, 확실히 공감도 더 가고, 스토리 이해도 잘 가고 그러한데. 특히나 두번째 단편인 '나락'은, 제목도 그렇고, 빈 엘레베이터에 헛디뎌서 죽다, 라는 설정도 그렇고 주변인물들의 증언과 대화를 통해 주인공을 추측하게 한다, 라는 설정도 그렇고.


소설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문체들. 대화체만 죽죽 이어지는 통에 말이다.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에.


아사다 지로만 줄창 파다보니, 아사다지로가 괜찮게 생각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서태후와 맥아더 장군이다- 도 알게 되고, 한 작가의 소설세계를 연구한다는 것은, 재미있군. 하고 생각한다.  

다만, 아사다 지로에게 거부감이 들어서 그렇지. 

서태후를 다룬 책들이 시중에 꽤 나와 있길래 서태후는 좀 읽어볼 생각이다.

이화원을 보고나서, 내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한 반면,

내가 네 국민이었으면 넌 죽었어! 라고 생각했지만.
 

아사다 지로에 의하면 당시 국민들은 노불야 (부처)라고 부르며 칭송했다고 한다. 서태후를.  

아무쪼록 아사다 지로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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