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했던 큰 고민이 있었다.


일본 망가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고 우리집 녀석은 그 작품을 보지 않았음에도 영화의 OST를, 대사를 따라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짱구, 도라에몽 등 고전들에도 욕심을 내고 음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게 아닌가!국내 아이돌에도 무관심하던 녀석이 갑자기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참 먼나라인 일본. 노 재팬 불매운동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이러한 관심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변화는 친구들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반 친구들과 유튜브를 통해 관련 컨텐츠를 많이 접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아, 이게 맞나. 일본 문화가 개방된 것이 1998년이었다. 우리와 일본 사이에 흐르는 넓고도 깊은 과거사의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거늘,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빠른 속도로 빠져드는 녀석의 관심에 당황했었다. 아니 얘네는 뭘 제대로 알고나 이러는 걸까? 이거 괜찮나? 아니 그러는 나는 어떤데? 유니클로는 불매하면서 닌텐도 게임은 하고있는 나는? 애니와 일본 작가의 책을 보고있는 나는?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그런 와중에 마침 제안을 받았으니... 일본 대학생들이 세미나를 통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직접 쓴 한일 역사에 대한 책이라지뭔가! 한국엔 반일 정서가 일본에는 반한 정서가 암암리에 흐르고 있다고 기사에 등장하는 가운데 과연 그들은 무어라 하는지 궁금했다. 문화와 역사 사이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그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대학생들은 괜찮을까, 부모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사회에서 지탄받지는 않았을까 그들의 안위가 염려되는 가운데... 이 책은 히토쓰바시 대학교 사회학부의 가토 게이키 교수의 세미나 팀이 썼다. 읽어 내려갈수록 녀석과 꼭 이 책을 공유하고 싶단 생각을 했더랬다. 나도 이렇게까지 정리된 위안부, 노동착취,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몰랐다. 그저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일본 애니와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녀석이 제대로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하려나 궁금해지는 마음. 


이런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 학생들의 계기도 이 책에 나오는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참여한 학생들도 있지만 세미나에서 운영하는 한국방문 프로그램의 금액이 저렴해서... 인 이유도 있다! ㅋㅋ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의 주제가 무려 "위안부" 라능.... 그리고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이들은 이 방문과 한국 대학생들과의 만남, 토론을 통해 위안부를 알고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우와. 부끄럽지만 나도 잘 몰랐던 역사와 일본이 한국에 끼친 영향들을 자세히 알게됐다. 더불어 일본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워온 것들이 반일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배워왔으니. 게다가 이 대학생들이 부모=기성세대와 겪는 갈등은 지금 우리집 녀석과 나(=기성세대)의 갈등과 동일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강한 현타가 왔더랬다. 녀석의 세대와 우리 세대는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려 우리는 일본문화 금지세대였음을... 일본 문화에 대한 두려움과 반발심이 아직도 내재되어있음을 알았으니, 녀석이 일본문화사랑에 손사래치는 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단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녀석은 이제 식민통치시절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문화에 대해 타국가의 문화 대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냥 재밌고, 좋으면 좋다 말하는 것. 녀석에게도 문화는 별개로 읽히는 것이며 영웅이나 봉오동 전투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가깝게 역사를 대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제대로 아는 것의 힘은 비단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닌 듯 싶다. 우리가 겪은 일은 두 나라가 각각 다르게 겪은 일이 아니라 두 나라가 같이 겪은 하나의 역사였다.


이 책을 쓴 일본 대학생들의 고민 시작점이 나와 같음에, 그리하여 끝점도 같을 수 있음에 희망을 가져본다. 기성 세대들이 물러나고 나면 우리 사이의 깊고도 깊은 강을 건널 다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이상하고 요상한 상태말고, 아프더라도 제대로 마주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 역시 우리 이야기를 우선 제대로 알고,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액션을 한다면 이 찝찝하고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본에 출간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문화와 역사 정치는 별개가 아니라는 것. 혐오와 반대를 넘어 제대로 알고 인정하고 사죄하여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한국어로 번역되며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일본 젊은이들이 던지는 이 질문들은 정작 우리 역사에 무지한 한국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닐까. 우리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열심히 읽고 쓴 생각입니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요즘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면서 한국에 호감이 생긴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사람 중에는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과 다시 사이가 좋아지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한‘이든 ‘친한‘이든 일본인이 한국인과 역사 인식이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통된 역사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한, 한국인과 일본인이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닐까. 역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친한‘이었던 사람이 감자기 ‘반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인 유학생은 그 틈새에 있다. - P29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나 대부분의 일본인이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과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문언상으로 사죄하고 이 이상 문제화하지 않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란 일단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국가 범죄임을 전제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뒤 그것이 진심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국가가 배상할 것. 나아가 진상규명, 역사 교육 등의 재발 방지책을 시행하는 후속 조치를 포함한 ‘사죄‘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해결이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 가역적 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일 합의‘는 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있다. - P49

일본 정부는 패전 후에도 여전히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내비치지 않고 있으며, 그 사이에 피해자들은 인권을 회복하지 못한 채 나이 들어가고 있다. 자결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일본이 만들어낸 식민지 조선의 사회 분열은, 현재도 남북분단이라는 형태로 조선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23~126쪽 참조).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지금도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한류스타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호소하는 행위는 우리에게도 아주 의미있는 일 아닐까. 반일이라고 매도하지 말고 일단 멈취 서서 그들의 생각에 귀 기울여보자. 그렇게 하면 좋아하는 사람의 팬을 그만둘 필요도, 못 본 척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P83

하지만 악행을 방치한 것과 과거에 직접 악행을 저지른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른 것일까.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발판 삼아 이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 누군가란 재일조선인 등 일본 사회의 소수집단이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가들에 일본이 저지른 가해 행위의 피해자들이며, 전 세계 식민주의. 인종주의. 젠더차별과 계급차별의 피해자들이다. 우리의 삶은 분명히 그들 위에 존재해 왔다. - P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