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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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그들의 삶에 각별히 주목하지 못하고, 그저 단순히 인물정도만 암기하며 시험에 급급했던 것이 아닐까? 역사소설을 읽고, 역사 속 실존인물에 주목하다보면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이란 허구 속,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한 이미지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인물이 심층적이고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은 색다른 묘미가 되고,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생각의 장을 열어주는 장점을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에 만난 사명대사 역시 그러했다. 불자이면서 유학자들과의 자유로운 교류, 조선의 명장, 그리고 외교관으로써 사명대사의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천년을 훔치다>를 통해 자꾸만 거론되는 ‘사명대사’의 이야기를 통해 호기심을 키웠고, 책장에 꽂혀있는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를 보고 그저 반가웠다. 이야기는 임진 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일본의 화친 요구에 61세의 나이에 바닷길을 건너 적국을 향해 홀로 뛰어든 외교관으로 그 2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왕명을 받들게 되는 과정인 첫 번째 이야기는 허균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허균, 허난설헌의 등장은 무척 반가웠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다. 사명대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허균, 허난설헌, 이달들의 등장은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면서 흥미진진했다.

두 번째는 대마도에서의 3개월간의 체류이다. 왜란 때 끌려간 옹주의 이야기를 통해 피로들의 삶을 엿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3천여 명의 피로송황이라는 성과를 일구게 하나의 발판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교토에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강화 회담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일본인의 책임 회피 등의 화를 돋우는데, 그 강화 과정이 세 번째 이야기다.

역사소설 속, 사명대사의 여정 속에 한·일간의 역사적 관계와 그 속의 흐르는 맥락을 짚어주면서 지난 역사를 사설처럼 풀어내고 있다. 기존의 다른 역사소설과는 조금 다른 점은 주요 사건과 역사적 사실의 기록에 꽤나 충실하다는 것이다. 왜란 이후에서 오늘까지의 주요 기록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기보다는 자꾸만 끼어드는 느낌은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내내, 피폐한 조선의 산천과 대비되는 일본의 자유분방하고 풍요로운 풍경들, 전 간파쿠(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책임, 쇼군, 간파쿠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다이묘의 입장을 들먹이며 안면몰수식 책임 회피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분과 짜증을 끓어오르게 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역사를 직시하면서 오늘을 투영해야한다고 하지 않던가! 400년 전, 그리고 100년 전이 하나의 일처럼 포개졌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왜란 이후의 강화 과정 속 일본의 태도는 마치 오늘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작가는 일본의 흔들림 없는 ‘정한론’의 뿌리를 왜란과 그 후에서 찾고 있다고 그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어도 홀로 깬 사람이 되어라!’(344)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는 자꾸만 망각의 늪에 빠져드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아니 각자의 삶에서 지금의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그저 안존만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도쿠가와 바쿠후를 비롯해서 모든 일본 사람들이 지난날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안했건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조선 침략에 대해 죄스러워하지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있어요. 지금에 이르러 조선과 교통이 필요한 것일 뿐 지난 일은 조금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387쪽)라고 돌아오는 뱃길에서 사명대사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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