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회장의 그림창고
이은 지음 / 고즈넉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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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장의 그림창고>, 책장에 꽂혀 것을 보는 순간 '이은'이란 두 글자가 또롯하게 두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그림과 관련하여 또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을지, 항상 기대 이상의 반전과 메시지에 나도 모르는 사이 빠져들었다. 소설 속에 풀어낸 이야기에 침을 흘리고 왁자지껄 떠들고 흥분했다. 냉큼 손에 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박회장의 그림창고와 동네 미용실의 명화, 어떤 사건이 숨어있을지, 또한 '동네 미용실에 걸린 백억짜리 명화'라는 뭔가 기막힌 설정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박회장의 그림창고'라니! 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어쩔 것인가!
사실, 진위여부를 떠나 각인된 이미지가 '이은'이란 두 글자보다 더 구체적인 것이었다. 그렇다. 최근 몇 년간의 사회적 파장이 컸던 미술품 관련 굵직한 사건들을 모티브 삼아 몇 해 전 이미 탈고를 마친 작품이 지난해 11월 비로소 세상에 나온 것이란다. 신간 소식을 접한 설렘을 다소 누리지 못한 것이 그저 아쉬울 뿐. 다시 언급하지만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했던,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련의 사건(비자금, 미술품 돈세탁, 그림 로비, 매값 사건 등등)들이 이야기속에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사건의 이미지들, 특히 재벌가의 횡포와 그 무자비함, 그로 인한 허탈함 같은 것이 여지없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작가의 확신에 찬 듯한 어조가 느껴지는 첫머리, 이야기를 풀기 새겨둔 "이 소설엔 의외로 사실인 게 더 많다"는 이 한 마디가 소설을 읽는 내내 귓가에 머물러 자꾸만 속삭거렸다. 

 

 사채에 시달리는 미용사 소미와 세계그룹이라는 한 재벌, 감각적 쾌락을 일삼는 난잡한 인물이 교차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소미'라는 인물이 도드라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전율하고 긴장하고, 애를 태운 것은 바로 '소미'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채업자 양아치에게 시달리고, 장애를 가진 남동생과 병들어 입원한 어머니, 그리고 백수 동거남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온갖 불행의 소용돌이 속, 출구 없는 막막한 어둠 속에 갇힌 듯보였다. 그러나 동거남 '진구'와 남동생 '기호'가 벌인 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아니 뒤치닦거리를 하게 되면서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된다. 억척스럽게 어려운 난관을 견뎌냈던 소미가 운동 선수 특유의 당찬 기질이 발휘되는 순간, 더이상 손에서 책을 떼어낼 순 없었다.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소미가 사회적 정의를 불으짖는 투사가 된 듯, '박회장'과의 대결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블랙홀에 빨려들 듯 헤어날 수 없었다. 자꾸만 두 손을 불끈 쥐게 되고, 그녀의 행보를 따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온몸의 세포들은 열띤 응원의 함성,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알고 있다. 이것은 분명 소설이라는 것, 허구적 이야기 속 판타지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그저 열광하기엔 우리 현실의 잔혹함이 더욱 두르러지기 때문일까? 그 판타지에 대리만족의 기쁨을 만끽하기엔,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왠지 모를 꺼끄러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일어날 일 없는 해피엔딩을 꿈꾸고, '소미'의 앞날이 조금의 밝아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샘솟기도 하였다. 

 

'이은' 작가의 스토리 전개에 조금은 익숙해진 탓일까? 우리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기막힌 상상 속 결말은 뻔할 수 있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는 과정, 극적이 사건들이 어우러지면서 이야기는 강력한 마력을 내뿜는다. 일련의 사건을 모티브 삼아 풍자소설을 겸하고 있지만 이것은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박진감 속에서 그가 숨겨둔 반전의 실마리를 찾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야 했다.

 

또한 전에 없는 깊이 있는 메시지에 화들짝 놀랐다. 소설 속 이야기를 사실인 냥 그 판타지에 열광하는 내게 마지막 순간, 일침을 가한다. 예술의 순수성, 아름다움의 가치를 논하지만 소설은 말한다. 끊임없이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예술만큼 권력과 돈에 목을 멘 것도 없다고. 그럼에도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혹시 잃어버리고 살지 않나요?"하고 말이다. 왠 뜬금없이 소리인가! 어, 잃어버린 것? 솔직히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는데~ 모든 사건이 끝난 후의 에필로그는 생뚱맞았다 .분명 생뚱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 순간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의미심장한 메시지,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창가에 따사로히 비치는 햇살과 그림에 하염없이 빠져든 한 개구쟁이를 통해,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고 홀리는 기분을 기막히게 묘사하고 있다. 그 황홀함의 예술을!

 

빠르고 경쾌한 전개, 기막힌 반전 속 10일간의 소미의 여정은 흥미진진했다. 그저 지난 작가의 노고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올해 여름이면 출간될 <미술관의 쥐>역시 반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또한 흥미진진하고 묵직한 한방이 있었던 <미술관 점거사건>의 영화도 기대해본다. 이은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 긴장감 넘치는 전개 속에 버물어 놓은 사회적 메시지까지  모든 것이 잘 짜여진 소설, <박회장의 그림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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