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얼마전에 읽은 <컨설턴트>를 통해 비로소 제기된 화두 '나비의 날갯짓‘을 또다른 이야기로 내게 묻고 있었다. 과연 나는 무심한 나비의 날갯짓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것일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전직 종군기자였던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파울케스’와 그를 죽이겠다며 찾아온 병사 ‘마르코비츠’ 과연 어떤 사건이 이들의 운명을 얽혀버리게 하였을지, 그 내막을 알고 싶다는 강한 호기심이 이 책을 이끌어주었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의 생활, 아내와 아들의 죽음 등 전쟁이 한 병사에게 가져온 기구한 운명 속이 슬픔과 증오가 너무도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지고 있어, 더욱 전쟁의 참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 속의 그 어떤 이미지보다 더욱 초점을 잃은 텅 빈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듯 한 착각으로 몸서리가 쳐졌다. 또한 알 수 없는 헛헛함이 빈 가슴을 가득 매웠다.

 

우연과 필연 그 사이 찰나의 선택이 ‘사진’을 찍는 행위로 구체화되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사실이 그리고 사진의 한 프레임 속에 갇히는 어떤 현상 또한 끊임없이 찍는 순간의 선택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는 또다시 이미지에 갇히지 말고, 그 이미지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전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존재’ 사실마저 망각하는 우리를 만날 수 있었다. 벽화 속 잔혹함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전쟁’보다는 ‘평화’에 익숙한 듯 망각하고 살아가는 ‘전쟁’이 참상을 몸소 겪지 않은 전후세대인 우리가 갖는 두려움과 같았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진진하다. 그리고 두려울 정도로 무심하고 냉정하다. 현실의 잔혹함에 질려 이젠 무감각해진,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너무도 냉철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 아니 혼란스럽기만 한 숱한 상념들이 떠도는 듯,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는 ‘혼돈’ 그 자체였다. 단지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행위,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가 ‘나비의 날갯짓’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사진을 찍은 파울케스에게 따르는 책임일까? 과연 책임을 묻을 수 있을까? 또한 그 행위만으로도 소극적 공모로 살인을 저지를 것과 같은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 책을 읽는 내내 반복되었다. 결국, 화가 스스로 ‘사진 찍는 행위와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듯하다. 그 책임은 결국 세상엔 무죄가 없는 거라는, 무죄인 사람도 없다는 병사의 말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책이 이끄는 대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들은 될 수 있으면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 명의 주인공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어, 흐름이 많이 끊기기도 하고, ‘나’를 그들과 나란히 마주하며 대화 속에 끼어들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렵다. 그럼에도 요즘 읽었던 책 속 ‘나비의 날갯짓’ 그리고 세상에 있다는 그 보이는 않는 그물망의 실체를 느끼며 외면해 왔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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