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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로 살아 보라는 너에게
이다안 지음 / 파람북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인문학적인 책인가? 정신과 관련 책인가? 했었는데 에세이였다. 읽고 나서는 소설에 가까운 게 아닌 가 싶었다. 내용이 소설이라기 보다는 형식이 소설같이 읽혔다. 저자의 경험이 담긴 소설같은 에세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죽음, 자살이라는 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기 힘든 단어다.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죽고싶은 나는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죽고싶다는 전화를 하루에 1-2번 정도 받는다. 자살이라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정신보건 일을 하면서도 자살을 정말 막을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이 전화 한 통화로 막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에 휩싸인다. 이 책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상담하며 적었던 글은 그저 자신의 근무 일지 작성을 위한 메모였을 것이고, 이러한 태도로 미루어보건데, 전화상으로 나를 울렸던 질문 또한 그저 정해진 매뉴얼대로 남긴 일관된 멘트였을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죽고싶다는 사람과 상담을 하는 건 쉽지 않다. 10년 넘게 하고 있는 상담이지만 지금도 전화를 받으면 덜컥 겁이 난다. 정해진 매뉴얼도 없을 뿐더러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일단 전화를 통해 죽고싶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돌려야 하니까, 내 전화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상담하는 내내 마음을 짓누른다. 만날 때까지 죽지 않겠다는 약속이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 한켠으로는 다행스럽다.
저자는 우울증, 조울증..... 그러니 감정에 대한 힘듦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쉐어하우스에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려고 하는 노력을 한다. 가족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긍정적인 관계에 대한 즐거움을 거기서 찾으려고 했던 거였을까? 긍정적인 관계는 가능하다. 하지만 지속은 어렵다. 내가 바로서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 어렵다. 난 가족도 좋을 때가 있고, 싫을 때가 있다. 하물며 학교에서 만난 혹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 언제나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서야 깨닿게 되었다. 그 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외롭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관계에서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겠다는 거다.
어쨌든 자살사고가 있으면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건, 행위 자체로 쉬운 일이 아니다.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도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순간을 넘어갈 수 있을까?
저자는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집중한다. 과거에 대해, 현재에 대해, 미래에 대해서. 그 내용은 어떻든 상관없다. 나의 힘듦이 어디서 오는지, 나의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지, 나의 무기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사고는 지속되는 듯 하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죽지 않고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 그 글이 힘이 되면 좋겠다. 정신과 약도, 상담도 뛰어 넘을 수 없는 건 자존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모르겠다.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아니면 그냥 듣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나와 전화를 끊고 나서 이 사람이 어떻게 될까? 여전히 내 머리 속에는 여러가지 물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자는 오늘도 숨쉬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절대 죽을 각오로 살아보라고 하지 않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