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애착장애
오카다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애착장애는 어떻게 내 삶을 위협하는가? 애착장애라는 단어는 약간 생소하다. 분리불안, 애착 이런 단어는 대중화가 되었는데, 애착도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책을 몇장 넘기지 않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 큰 어른들에게 자기 긍정감을 가지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전문가가 있다. 이는 한창 자랄 나이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키가 덜 자란 사람에게 키를 더 키우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p.20

이 말에 동의한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강요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는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왔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어릴 적 트라우마는 매우 중요하며 그건 양육자와의 애착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사실 나도 엄마이기 때문에 모든 걸 양육자에게 덮어 씌우는 프레임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보니 부모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렇게 정신과 병동이나 영화 속에서 일어날 법했던 현상들이 그로부터 20-30년 사이에 점차 일반가정이며 학교에서 일상적인 광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경계성 인격장애'라고 부르는 상태의 짧은 역사다.

p.34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이 뉴스에 나온다. 저자의 말대로 무서운 영화나 범죄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일상에서 펼쳐지고 있다. 자기 몸에 자기가 상처를 입히거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이또한 애착의 문제라고 본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교도소에서 어머니가 된 여성들은 비행이나 범죄 등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반면에 보호시설에 입소한 아이들의 어머니는 불운했지만, 범죄 이력이나 행동 상의 문제가 없었다.

p.58

교도소는 엄마가 있고, 보호시설에는 엄마가 없다. 이 두 상황에 대한 조사를 했더니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있더라도 엄마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발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곁에 누군가가 있는가?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애착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되면 친구가 될 수 있겠다.

'아이가 찾으면 반응한다.' 라는 안정된 응답성이 애착을 안정적으로 자라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다만 100% 완벽하게 응답할 필요는 없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반응하면 오히려 해가 되는 사례도 있다. 가장 좋은 형태는 '적당한 응답'이었다.

p.76

부모가 아이에게 안전지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빈곤이나 환경적 악영향에서도 안정된 애착이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부자라고 모든 자식이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해서 모든 자식이 다 잘 안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적절한 애착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러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시작을 거슬러 가보면 사실 부모들도 몇 년 전에는 아이였다. 이들의 과제는 자기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남긴 것이다.

p.223

불안한 애착을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케이스 별로 다 다르겠지만 부모의 해결되지 못한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부모가 냉담한 스타일이거나 부모가 기대를 과도하게 하고 있는 경우 모두 불안정한 애착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더라도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이럴 경우 아이는 갑작스러운 부모의 변화에 좋아하지만 머지않아 부모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에 낙담하고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부모가 얼마나 진심으로 자신의 문제에 마주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애착이 불안정한 사람은 정신화가 약해서 상대의 말을 상대의 의도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자기가 상처받기도 하고, 조심성 없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거나 과잉반응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p.234

이 내용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 또한 저렇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완벽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내 말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는다. 나의 애착은 어떤 상태인가? 나는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하며 어떤 행동을 보여주고 있을까?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바빠서 행동으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진 않은가? 아이들은 어른보다 상처 받기가 쉽다. 그리고 상대방과 그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들은대로 본대로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아이의 기본적인 기질도 있지만 그 기질 역시 부모에게서 나온 게 아닐까, 양육을 하면서 형성되는 모든 것 또한 부모의 모습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을 느끼는 체계가 약하다 보니 키우거나 돌보는 일은 자기의 자유를 제한하고 고통을 강요하는 고역일 수밖에 없다. 애착 체계가 풍부한 사람에게는 상상하지도 못한 현실이다.

p.240

하기싫은 일을 하는 건 모든 사람에게 고역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대체로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아이와의 애착과 모성애를 강요할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이 없으면 자식을 낳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리고 100% 완벽하게 부모를 준비하는 사람도 없고, 100%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더라도 현실에 들어가면 아닌 경우도 있다.

애착이란 관계를 뜻한다. 내가 좋을 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가 없다. 이럴 땐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된다. 하지만 내가 좋지 않을 때 나는 누구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가?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있는가? 손을 내밀었을 때 도움이 받은 기억이 있는가? 그 시작은 바로 부모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다. 오늘도 이 책을 보고 힘을 내본다. 핸드폰을 놓고 아이에게 가자,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이자, 아이가 부르면 적절하게 응답해보자. 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부를 전합니다 - 코로나 시대의 사랑과 슬픔과 위안
제니퍼 하우프트 외 69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시대를 사는 당신에게, 70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사람과 연대의 안부인사. 라는 이 책이 설명이 좋았다. 코로나 시대는 특정 지역만, 특정 계층만 겪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부인사를 해야한다.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이 좋았다.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글을 모집하고 그것을 책을 묶어 내었다.

이제 어떡하지? → 슬픔 → 위안 → 소통 → 멈추지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저 단계 중 어디에 있을까? 코로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결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사람, 코로나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 코로나로 인한 제한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 예를 들면 병이 있는 사람이거나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식량을 등에 지고, 마스크를 쓰고, "안전해라. 건강해라."하고 말하면서 우리 앞에 솟아 있는 산들을 올라가야 한다. 떠나지 마라. 언제까지나.p.39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 조카를 볼 수도 없지만 안아 줄 수 없다. 내 아이에게도 스킨쉽이 제한된다. 항상 마음 깊은 곳에는 출근했다 돌아온 내가 혹은 남편이 아니면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가 혹시 누군가에게 코로나가 전염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 하루하루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텨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영상통화로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안부인사를 계속해야 한다.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심리적인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에

이 봉쇄령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를 위한 시간을 내는 법을 배웠다. p.220

코로나는 과거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현재가 멈춰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격리하는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집에 갇혀 있는 동안 어떤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지 않았다고, 가난하게 자라면서 배운 것은 행복은 안에서 나온다는 것이라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굶주림을 채워줄 음식이 있고 가정에 사랑과 친절이 있다면 우리는 부자라고. 답답하고 힘든 봉쇄령의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를 위해 시간을 내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걸까? 아니면 격리기간 동안 긍정회로를 돌리는 걸까? 어찌 되었든 격리기간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야 그렇지 않을까

전염병은 과거에도 있었고, 우린 어쩌면 발전된 시대 속에서 감염병을 경험하지 않고 잘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1년이 넘은 지금 우리는 너무 지쳤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고, 계속 조심해야 하고,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시기에 아이러니 하게 다른 사람을 챙겨야 한다. 들여다 봐야 한다. 그리고 안부를 물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이 시기가 끝나길 바라며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 시공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았는지..... 아마 복잡한 세상 과거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겠지. 그 중에 도덕경과 논어는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그리고 공자와 노자는 동양사상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의 지식은 딱 여기까지. 어렵게만 느껴져 읽고 싶어도 차마 도전하지 못했던 도덕경을 읽을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살다보니 좋은 기회가 생겼다.

앞에는 도덕경에 대한 혹은 노자에 대한 혹은 공자에 대한 혹은 논어에 대한 혹은 중국에 대한..... 40문 40답이 있다. 아마도 도덕경을 마주하기 전에 사전 워밍업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은데, 난 역시나 아는 것이 없어 이 부분이 어려웠다. 오히려 뒤에 있는 도덕경은 읽고 해석을 보면서 명쾌하고 간단해서 좋았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때를 춘추전국시대로 본다고 한다. 그럼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시대를 혼란스럽다고 느꼈을까? 그건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시대라도 인간은 습관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라고.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상황을 온전히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저 스트레스를 받을 뿐

도덕경은 항상 논어와 비교를 하게 된다고 한다. 저자의 생각에는 도덕경은 통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읽고, 논어는 중간 관리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한다. 도덕경은 시적인 형태이고 논어는 문답식의 형태여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논어가 더 낫고, 해석의 여지가 열려있는 건 도덕경이 더 낫다고 한다.

제64장 잃지 않는 법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의도를 가지고 유위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자는

결국 그것을 망치게 되고,

꽉 잡고 집착하는 자는

결국 그것을 잃게 된다.

그래서 성인은 무위를 행하기 때문에 망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 않는다.

한줄 한줄 직역하는 건 아니고, 해석을 곁들인다. 호불호가 있을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해석을 곁들이는 것이 이해가 쉽다. 한문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도덕경의 내용을 알고자 하는 거니까

왜 저 내용에 끌렸는지, 아마도 요즘 소유에 대한 혹은 욕심에 대한 것에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다. 어떻게 하면 그런 것들에 대해 떨어져 나올 수 있을지. 성인은 무위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망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 않는다니, 대단한 내공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을 게 없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아직 도덕경이 어려운 이유다.

도덕경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하지만 나처럼 지식이 없는 경우 읽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덧붙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금길
레이너 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에 이렇게 써 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그때, 내일을 위해, 희망을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걷기로 했다'

일단 '우리는 걷고 또 걷기로 했다' 에 눈길이 간다. 개인적으로 걷는 거에 로망이 있다. 단순히 동네 산책을 하는 것, 일하면서 걷는 것, 출퇴근 하면서 걷는 것..... 이런 거 말고 배낭을 매고 작정하고 걷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정말 한 번 가보고 싶다. 굳이 외국을 나가지 않더라도 제주도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걷고 싶다.

이번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그 때'에 주목해본다. 모든 걸 잃고 나서 왜 걷기를 선택했을까? 갈 곳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서? 아니면 이 상황이 터닝포인트라서?

부부는 집과 농장을 잃는다. 남편은 시한부 진단을 받는다. 어려움을 동시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정말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부부는 걷기로 결심한다. 갈곳도 없고 돈도 없고 계획도 없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 하나로 어찌보면 노숙인 부부의 걷기가 시작된다.

예상이 되겠지만 걸으면서 만났던 사람들, 걸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들, 걸으면서 생기는 해프닝 그리고 위험한 일들이 두꺼운 책에 펼쳐진다. 그러면서 부부의 감정도 변화한다. 분노에서 내려놓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받아들임으로

그 때 나는 너도밤나무숲 아래 누워 죽으려고 했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스모튼과 함께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제비들과 함께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올라 이 땅을 떠나야 하는 두려움이나 모스를 잃을 것 같다는 걱정 같은 건 다 떨쳐버리고 싶었다. p.44

위기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같이 온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때 마다 찾아오는 위기들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죽으면 이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나는 평화로워진다는 그런 생각들..... 부인도 같은 생각을 했다.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들 앞에서 나약해졌다.

우린 노숙자 신세나 마찬가지거든요. 집도 날아갔고 갈 데가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니 그냥 내키는 대로 걸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던 거지요. p.100

일반 사람은 노숙자를 보면 거의 대부분 알코올과 약물 그리고 정신적 문제를 떠올리고 두려움을 느낀다. 처음 몇 번 어떤 사정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먼 길을 걷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움찔하며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고 사방은 조용해졌다. 언제나 대화는 그렇게 갑자기 끊어졌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가던 길을 가버렸다. p.215

이 부부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을 한다. 크게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하나는 멋지다. 그 나이에, 그런 상황에 이런 결정을 하다니..... 또 하나는 피한다. 노숙자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영향이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에 이 부부도 대답이 왔다갔다 한다. 내가 어디까지 진실하게 대답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대답을 했을 때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갈등이다.

"우리에게 일정이 있었던가?"

"그야 물론이지. 이렇게 걷고 쉬다가 다시 우리 미래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또 걷는 거야."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p.110

이 부부는 생각보다 빠르게 희망을 생각한다. 이 책이 550페이지가 넘는데 100페이지 정도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부부가 아닌가?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사실 모든 것을 잃게 되면 사람들은 오히려 잃을 게 없어 선택이 쉬워지고 터닝포인트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짓누르기 때문이다. 물론 550페이지로 가면서 이 생각은 가볍든 무겁든 여러 상황에서 왔다 갔다 한다.

우리는 바위 위에 드러누웠다. 몸이 갈색 가죽처럼 바짝 말라갔다. 14개월 전만 해도 힘없이 늘어져 있던 창백했던 우리의 몸은 이제 군살 하나 없이 햇볕에 탄 몸이 되었다. p.532

책을 읽는 동안 조마조마 했다. 남편이 걷다가 죽는 건 아닐까..... 죽더라도 이 책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걷는 다는 건 몸이 변한다는 의미고, 몸이 변한다는 의미는 건강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진다는 것과 앞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 군살 하나 없는 몸으로 다 표현이되는 것 같았다.

힘들다. 오늘도 힘들다. 여전히 힘들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한다. 어떤 것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 상 그 의미를 자꾸 잊어버리고 산다. 이 부부처럼 긴 길을 걸으라는 게 아니다. 이 부부가 길을 걸으면서 나눴던 이야기들, 공유했던 감정들,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게 된 과정을 보고 조금이라도 힘을 내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 사람 검사 - 드라마가 아닌 현실 검사로 살아가기
서아람 외 지음 / 라곰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제목이 여자사람 검사일까? 세 검사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여자의 인생과 검사의 인생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드라마 중에 #검사내전 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아이를 키우는 검사가 생각이 난다. 전문직 여성에 대한 나의 동경이 이 책을 보면서 다 비슷하게 사는 구나 하고 느끼게 되고, 그 중심은 바로 육아였다.

전문직으로 갈수록 혹은 공공기관일수록 육아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확률이 줄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일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모든 걸 다 배려해 업무량을 줄여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현실은 쉽지 않다. 그건 당사자의 일에 대한 욕심과 업무량이라는 것 자체가 눈금으로 딱 잴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이 사이에서 적당한 선을 지키기가 어렵다.

법적으로, 의학적으로 그녀의 죽음은 '자살'이 분명했지만,

그녀의 유서는 그녀가 정신질환으로 '병사'했음을 보여주었다.

p.129

유서를 읽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 저런 내용이 있다. 자살을 접하는 직업 가지고 있다 보니 저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자살을 막을 수 있냐는 질문에 나는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고통 앞에서 너무나 나약한 인간이다. 자살의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고 그 이유를 해결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나 역시 기도한다. 거기에선 편안하라고

다른 범죄 유형에 비해 스토킹 가해자들은

이외로 멀쩡하게 직장도 잘 다니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유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p.160

스토킹이 겸범죄라고? 라는 제목의 글에는 저런 글이 있다. 최근에 스토킹 가해자가 세모녀를 살해했다는 기사를 봤다. 스토킹이라..... 이 사회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직까지는 경범죄로 처벌이 되는 상황이라 재범도 보복도 많은 것 같다. 피해자들의 불안함은 누가 보상을 해주는 게 맞는 걸까? 피해자는 직장도 못다니고 숨어 있는데 가해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니,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아무리 센 척해도 애는 애야. 소년범 사건은 피해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자가 있다 해도 사소한 범죄인 경우가 더 많아.

고딩이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훔쳤다고 치자.

편의점 사장이 더 놀랐을까, 훔친 애 엄마가 더 놀랐을까?

p.187

자식의 범죄 앞에서 부모의 심정, 딸이 아직 범죄를 저지를 만한 나이가 아님에도 마음이 아프다. 자식 때문에 검사 앞에 갔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부모의 역할을 다 하는 걸까? 선처를 호소하는 부모도 있을 거고, 자식에게 유리하게 모든 것을 바꿔주려고 하는 부모도 있을 거고, 자식이 벌을 받도록 해달라는 부모도 있을 거다. 이 책 안에 어쩌면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가? 애들을 떼어놓고 할만큼?'

p381

검사도 다른 워킹맘처럼 같은 고민을 한다. 저자는 일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애들을 내팽개쳐둔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무겁고, 반대로 애들과 있을 때는 자신이 퇴보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어쩜 내 마음과 이렇게 같을까? 저자는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생각해보면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영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직업에 대한 책이 있으며 가능하면 읽어보려고 한다. 평생 직업을 몇 개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다른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검사라는 직업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여자라는, 엄마라는 주제가 섞이니까 재미있기 읽을 수 있었다. 힘들다 생각되는 직장을 다니는 여자사람 그리고 엄마라면 읽고 공감하고 위로받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