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길
레이너 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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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이렇게 써 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그때, 내일을 위해, 희망을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걷기로 했다'

일단 '우리는 걷고 또 걷기로 했다' 에 눈길이 간다. 개인적으로 걷는 거에 로망이 있다. 단순히 동네 산책을 하는 것, 일하면서 걷는 것, 출퇴근 하면서 걷는 것..... 이런 거 말고 배낭을 매고 작정하고 걷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정말 한 번 가보고 싶다. 굳이 외국을 나가지 않더라도 제주도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걷고 싶다.

이번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그 때'에 주목해본다. 모든 걸 잃고 나서 왜 걷기를 선택했을까? 갈 곳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서? 아니면 이 상황이 터닝포인트라서?

부부는 집과 농장을 잃는다. 남편은 시한부 진단을 받는다. 어려움을 동시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정말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부부는 걷기로 결심한다. 갈곳도 없고 돈도 없고 계획도 없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 하나로 어찌보면 노숙인 부부의 걷기가 시작된다.

예상이 되겠지만 걸으면서 만났던 사람들, 걸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들, 걸으면서 생기는 해프닝 그리고 위험한 일들이 두꺼운 책에 펼쳐진다. 그러면서 부부의 감정도 변화한다. 분노에서 내려놓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받아들임으로

그 때 나는 너도밤나무숲 아래 누워 죽으려고 했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스모튼과 함께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제비들과 함께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올라 이 땅을 떠나야 하는 두려움이나 모스를 잃을 것 같다는 걱정 같은 건 다 떨쳐버리고 싶었다. p.44

위기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같이 온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때 마다 찾아오는 위기들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죽으면 이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나는 평화로워진다는 그런 생각들..... 부인도 같은 생각을 했다.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들 앞에서 나약해졌다.

우린 노숙자 신세나 마찬가지거든요. 집도 날아갔고 갈 데가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니 그냥 내키는 대로 걸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던 거지요. p.100

일반 사람은 노숙자를 보면 거의 대부분 알코올과 약물 그리고 정신적 문제를 떠올리고 두려움을 느낀다. 처음 몇 번 어떤 사정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먼 길을 걷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움찔하며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고 사방은 조용해졌다. 언제나 대화는 그렇게 갑자기 끊어졌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가던 길을 가버렸다. p.215

이 부부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을 한다. 크게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하나는 멋지다. 그 나이에, 그런 상황에 이런 결정을 하다니..... 또 하나는 피한다. 노숙자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영향이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에 이 부부도 대답이 왔다갔다 한다. 내가 어디까지 진실하게 대답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대답을 했을 때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갈등이다.

"우리에게 일정이 있었던가?"

"그야 물론이지. 이렇게 걷고 쉬다가 다시 우리 미래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또 걷는 거야."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p.110

이 부부는 생각보다 빠르게 희망을 생각한다. 이 책이 550페이지가 넘는데 100페이지 정도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부부가 아닌가?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사실 모든 것을 잃게 되면 사람들은 오히려 잃을 게 없어 선택이 쉬워지고 터닝포인트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짓누르기 때문이다. 물론 550페이지로 가면서 이 생각은 가볍든 무겁든 여러 상황에서 왔다 갔다 한다.

우리는 바위 위에 드러누웠다. 몸이 갈색 가죽처럼 바짝 말라갔다. 14개월 전만 해도 힘없이 늘어져 있던 창백했던 우리의 몸은 이제 군살 하나 없이 햇볕에 탄 몸이 되었다. p.532

책을 읽는 동안 조마조마 했다. 남편이 걷다가 죽는 건 아닐까..... 죽더라도 이 책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걷는 다는 건 몸이 변한다는 의미고, 몸이 변한다는 의미는 건강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진다는 것과 앞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 군살 하나 없는 몸으로 다 표현이되는 것 같았다.

힘들다. 오늘도 힘들다. 여전히 힘들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한다. 어떤 것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 상 그 의미를 자꾸 잊어버리고 산다. 이 부부처럼 긴 길을 걸으라는 게 아니다. 이 부부가 길을 걸으면서 나눴던 이야기들, 공유했던 감정들,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게 된 과정을 보고 조금이라도 힘을 내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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