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생각해보니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도 읽은게 없었다.
그 유명한 노르웨이 숲이나 상실의 시대, 그리고 1Q84까지.
딱히 이유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는 정도.
울산독서클럽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더 오랫동안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본소설답게 디테일에 치중한 면도 있지만 심리묘사에 탁월한 것은 분명하다.
하루키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읽는사람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은 있다.
7개의 꼭지가 있는데 마지막 여자없는 남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두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두명의 남자 중 사실은 한명만이 주인공이다.
그의 말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또 한명의 남자가 필요할 뿐이다.
드라이버 마이 카의 가후키와 다카쓰키가 그러했고
예스터데이의 다니무라와 기타루가 그렇다.
독립기관의 도카이와 다니무라도 그렇다.
예스터데이에 나오는 다니무라와 독립기관의 다니무라는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대학생인 다니무라가 작가가 되어 도카이를 취재(?)하게 된 상황.
이런 장면은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드라이버 마이 카에서 가후키와 다카쓰기가 들런 바는 뒤에 나오는 기노라는 바이다.
아마 회색고양이가 아니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게다.
하루키가 이런 장치를 좋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재미가 있다.
이걸 알고 난 다음부터 조금씩 앞뒤로 찾아보는 재미를 갖게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다.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나씩 따져보자.
드라이버 마이 카 - 아내는 왜 4명의 남자와 잤을까 -
예스터데이 - 에리카가 꾼 꿈은 무슨 의미일까 -
셰에라자드 - 주인공 남자는 뭐 하는 사람이며 셰에라자드는 또한 뭐하는 사람인가 -
기노 : 이 꼭지는 완전 의문점 투성이다.
회색고양이, 가미타라는 남자의 정체(귀신 神에 밭田 자를 쓴다는 것을 강조했으니 이름에 무언가 힌트가 있을만 하지만 끝까지 말이 없다), 뜬금없는 뱀과 가게를 떠나야 하는 이유까지.
사랑하는 잠자 - 이 편은 아마도 변신을 패러디하거나 오마주한 거라는 생각이지만 어쨌던
잠자라는 인물과 여자, 거리에 벌어진 상황.
도대체 어느것 하나도 깔끔하게 풀어주지 않는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인가?
어쨓던 좋다.
하루키가 하고싶은 말은 아마도 이것이리라.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상실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내것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내것이 아닌게 되어버렸을 때 갖게 되는 마음.
결핍과 상실은 분명 다른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편은 독립기관이었다.
도카이, 어느 것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
의사라는 직업과 태어날때부터 부자, 이목구비 단정한 얼굴, 교양있는 언행과 화술.
주변에 끊이지 않는 여자들.
하지만 그는 외로웠다. 누구도 본인조차도 알지 못했던 외로움.
K팝스타에 정승환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부른 노래 '사랑에 빠지고 싶다'라는 노래 가사가 그렇다.
화려해보이는 삶인데 어느 순간 왜? 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요즘 내 생활이 그렇다. 그래서 그런가 감정이입이 확 되었다.
그런데 이걸로 끝.
책장을 덮는 순간 책에 대한 감상도 끝.
더이상 무엇을 할 게 없었다.
일반론일 수 없겠지만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책을 다 읽는 순간 이게 뭐지하는, 그 어떤 특별한 감정도 남지 않는다는 점.
한편의 시트콤을 본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뜬금없이 나타나는 각종 브랜드들
드라마였다면 PPL이라고 느껴질 '헤링본 자켓''깅엄체크''블랙 앤 텐''바움쿠헨'등은
이야기의 전개상 그다지 필요없는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굳이 삽입한 작가의 의도를 전혀
알수가 없다.
또하나, 작가의 의도인지 번역자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적확'이라는 표현이 두세번 나온다.
'정확'과 '적확'을 굳이 구분해서 썼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세번째로 생각해보면 글에 나오는 모든 남녀관계는 알고보면 불륜이다.
특히 여자들이 대부분 유부녀라는 점.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한다면 그동안 우리는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로 사람의 본성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논쟁거리가 생길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