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5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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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가 이철수씨의 신작이다. 

그동안 몇권의 책을 쓰셨던 것으로 아는데 

'밥 한그릇의 행복 물 한그릇의 기쁨'이후 처음이다. 

자주 챙겨읽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역시나 절대 실망을 시키시지 않는다. 

촌철살인이라는 표현은 이런 글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이외수님의 하악하악에서 느꼈던 기분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세상살이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단 몇줄의 글로 저렇게 깔끔하게 정리하실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 

나는 아직도 내공을 더 쌓아야 하지싶다. 

글이 길다고 다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보여준다. 

몇개 옮겨보겠습니다. 

"세상에 와서 사는 뭇 생명이 모두 깊은 지혜의 화신들인 듯 싶습니다. 스스로 지혜로운 양 하는 사람만, 

조용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과도 마주 서 싸우려고 듭니다. 어리석지요"

"이십년 전만 해도 손모를 심는 집이 꽤 많았습니다. 

편해지기는 했지만, 석유로 짓는 농사에 투항해버린 셈입니다. 

손모 심던 자리로 되돌아갈 자신은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예쁘고 멋진 것 찾더니 이제는 싸구려 냄비를 다시 찾는데요. 저 냄비 없는 집이 없다고 하던데요? 

이제 값싼 냄비 쓰는데 열등감 느낄 일 없어진 세상이라서 아닐까요?" 

"무명, 익명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거기서 변함없이 밝고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이름없는 것들, 

하나같이 아름다운 별들입니다." 

"사람은 돈을 바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사는 듯 보입니다. 돈은 해와 같지 않아서 우리 생명을 온전하게 이끌어주지는 못합니다. 돈이 빚어낸 재앙을 보면 알지요." 

"슬픔이 많아지셨거든, 아픔이 많아지셨거든, 그게 마음에 너무 큰 자리 차지해 있거든,  

일일이 불러와 앉히고 이야기 나누세요. 인사하는거지요, 오셨느냐고! 오래 계시지는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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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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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많이 아쉬운 책이다. 

분명 우리도 이런 류의 책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니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수학이론을 다루면서도 재미있게 추리소설로 엮어낸 것만 보더라도 작가가 많은 준비를 했음을 알게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무리수의 발견. 

그리고 그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간군상들의 모습들 

정치권력을 둘러싼 암투도 보이고, 귀족들의 나태한 일상도 보인다. 

하나의 학파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나타난 불합리성도 작가는 보여주려고 했나보다. 

그럼 뭐가 아쉬울까 

우선 수학을 다루었다는 것은 대단하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보다 내용이 부실하고 

추리와 논리로 접근해가는 방식을 보자면 '용의자 X의 헌신'보다도 부족해보인다. 

몇몇 비평가들은 수학적 진실을 인문학과 철학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고 그러는데 

그냥 작가에 대한 립서비스정도로 이해를 하려한다. 

스토리구성을 탄탄함을 따져보자면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에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학문을 문학의 장르로 끌어온 것은 대단하지만 그냥 그러저러한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고싶다.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가 될 것인지 뻔히 보인다. 

막장드라마 1회만 봐도 결말까지 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결말까지 

나의 예상을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그대로 서술해낸다. 

개연성없어보이는 왜 등장을 시켰을까 궁금하기까지 한 몇몇 등장인물들도 보이고 

장거리 여행갈때 터미널에서 구입해서 차에서 읽기에 좋은 두어시간만에 후딱 읽어해치우기에 딱 알맞은 소설이라고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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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엄마 다른 별아이
별이 엄마 지음 / 시아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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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와 다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때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주위에는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신체가 장애인 친구도 있었고 발달장애인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었지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같이 어울려놀기도 하고 또 어떨때는 떼어놓고 우리끼리 놀기도 했었지만 

딱히 어떤 의도를 가졌던 행동들은 아니었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친구와 장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때 한반의 동기녀석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다리한쪽이 불편할 뿐이었지 그 외에는 우리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날도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교탁에서 몇명이 어울려 뭔가를 하며 놀고 있었다. 

지우개따먹이였는지 뭐 하여튼 그 시절의 고등학생들이 흔히들 노는 그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넘어졌다. 

별 다른 생각없이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 녀석이 매몰차게 내 손을 뿌리치는 게 아닌가. 

순간 굉장히 서운했는데 동시에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 친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함부로 도움을 주어서는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 

물론 그 동기녀석은 어릴때부터 많은 일을 혼자서 하도록 의도적으로 연습을 했을테고 내 손을 뿌리친 것도 

몸에 배어있는 연습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손을 내민 행동이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약간의 동정도 없었다면 거짓말일테지만  

따지고 보면 친구가 넘어졌을때 손을 내미는 것은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함부로 도와주지 않기도 하였다. 

그런데 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쯤 도움을 주는 것이 적절한 때인지를 알수가 없는거다. 

나와 그 사람 두사람 모두에게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면서도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시점은 언제인가?  

 

 

이 책의 저자는 아이의 장애를 일찍(?) 발견하고 많은 노력으로 조금씩 치유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는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발달장애인 녀석 한명이 왔다. 

어머니께서 아이가 자기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그냥 말수가 적은 아이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 수준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차마 아이의 병을 말씀하시지 못한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아마 당분간은 서로가 짐작만 하면서 조심스레 접근을 하게 될 것 같다. 

언젠가는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누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책도 꼼꼼히 읽고 

또 다른 자료들도 보면서 공부를 해야겠다.  

그리고 그 어머니께 이 책을 선물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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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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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에 내가 좋아하는 몇분의 작가들께서  비슷한 시기에 성장소설을 내놓으셨다 

황석영씨가 '개밥바라기별' 신영복의 '청구회추억' 그리고 최인호씨의 '머저리클럽'이었다. 

청구회추억은 읽어본 결과 성장소설이 아니었지만 ㅎㅎㅎ 

머저리클럽은 '개밥바라기별'과는 많이 다른 성장소설이다. 

개밥바라기별이 학창시절보다는 개인의 방황과 그 속에서의 성장에 촛점이 맞춰있다면 

머저리클럽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학창시절의 이야기이다. 

아주 어릴때 멋도 모르고 보았던 '얄개'시리즈를 보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을 준다.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은 정말 소중하다.   

누구나 책으로 써라고 하면 에피소드만으로도 한권쯤은 느끈히 채울 수 있을게다.

나에게도 학창시절은 정말 즐거운 때였다. 

그때는 친구들만 있으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고 무서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일탈을 했던 일들만이 또렷이 기억난다. 

사실 모범생으로 3년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도 따분하기 그지없다. 

정해져있는 길로 가는 것보다 정도에서 벗어난 길로 가야 훨씬 즐거운 법이다. 

나의 그 시절도 그러했다. 

담을 넘어 학교밖으로 빠져나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만화방과 당구장을 아지트삼아 많은 짓거리를 하고 다녔다. 

시장 뒷골목 튀김집 골방에서 친구들에게 술을 배운 것도 그때쯤이다. 

공부하다 배가 고프면 막걸리를, 목이 마르면 맥주를 마셔야 한다고 명언을 남겼던 친구도 있었다. 

야자하다가 목이 마르면 학교앞 슈퍼에서 막걸리 사다가 운동장에서 원샷했던 친구도 있었구나. 

1학년때 우리반은 문제가 많은 정말 꼴통반이었다. 

어느날은 담배피는 학생을 손꼽아보니 안 피우는 학생이 열명이 채 안되는 그런 반이었다.

가을소풍가기 전날 반학생중 절반정도가 동시상영관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를 보았다. 

소풍에서 반대항 씨름에서 우리반이 우승했을때 우리반의 구호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씨름순이다'였다. 

왜냐면 우리반이 성적꼴찌반이었기때문에 ㅎㅎㅎ  

그때 행복해 하시던 담임을 지금 생각하면 좀 불쌍하기도 하다.

 얼마나 까불고 다녔는지 우리반을 꼴사납다고 보고 있었던 제외한 다른반 연합과 우리반이 패싸움을 하기도 했었다. 

야자가 끝나는 시간에 우리를 태우러 오는 승합차는 학교 운동장이 아닌 당구장앞에서 클락션을 울렸고 

반 친구들에게 100원씩 삥을 뜯어서 나이트클럽에 다니기도 했었다. 푸핫 

가끔은 친구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인생이니 삶이니 하는 정말 개똥철학을 주저리주저리 했던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나름 진지한 부분도 있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공부라는 것도 했었는데 수학과목은 한번씩 빵점도 맞아주곤 했다. 그게 예의고 의리였다 ㅋㅋㅋ 

 

그런데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고 싶을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기는 한데 학생부선생님에게 야구빳다(빳다라고 써야 제 맛이 난다)로 맞는 것도 싫고 

머리 길다고 바리깡으로 짤리는 것도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리고 제일 싫은 것은 죽어라 공부해야 된다는 것. ㅎㅎㅎ 

그렇게도 외워지지 않던 독일어 디어 데어 덴 디 뭐 어쩌고 저쩌고는 끔찍하고  

왜 수학문제는 봐도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루에 영어 단어 숙어 100여개씩 외어야 하는게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건지 의문이다. 

그래도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잔디밭에 둘러앉아 도시락 나눠먹던 시간도 좋았고 

반대항 축구시합에 죽어라 뛰고 응원하던 시간도 즐겁기만 하다. 

 

지금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여전히 공부는 열심히 안 할테지만 

당구장 만화방 다니던 시간에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분명 그 나이에 읽어야 할 책이 많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 책들을 너무 일찍 읽거나 아니면 너무 늦게 읽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게 가끔은 슬프기도 하다. 

 

이제는 연락도 되지않는 그때 그 친구들이 가끔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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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범우희곡선 13
차범석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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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라는 장르를 얼마만에 대하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리어왕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희곡의 장점은 군더더기가 없다는게 아닐까싶다.

소설은 작가가 설명을 덧붙여야하지만

희곡은 대사만으로도 모든 상황이 그려진다.

인물의 감정뿐 아니라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지도 상상해볼 수 있다.

그게 희곡이 지니고 있는 장점이겠지요.

더구나 이 희곡의 장점중 하나는 지문이 많지않다는 것이다.

많이 않을뿐 아니라 없어도 괜찮을만한 지문도 곳곳에 보인다.

그 지문이 없어도 인물이 화가 나 있는지 기쁜지 슬픈지 다 알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1951년 지리산자락의 어느 마을

마을에는 남자라고는 노망든 노인네 하나뿐이고 여자들은 대부분 과부들이다.

마을은 전쟁중에 국군과 인민군 양쪽에 다 피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서도 앙금이 있다.

이 마을에 빨치산 하나가 산에서 도망나와 숨어들고

이 빨치산을 숨겨준 여자와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자의 친구

그들 사이에 갈들이 생기고 그 갈등을 임시로 봉합을 하나

문제는 더 걷잡을 수 없게 커지게 되는....뭐 그런 내용이다.

 

이 희곡이 1962년에 공연이 되었다는데 내용을 보면 좀 위험했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국군은 무조건 善, 인민군(빨치산)은 절대악이어야 했을텐데

작가는 은연중에 중립의 입장에 서 있다.

중립의 입장 자체도 충분히 문제시 되던 시대였을 것 같은데 공연에 문제는 없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렇게 그다지 길지 않은 희곡을 읽고 나니

파우스트를 읽을 용기가 생긴다.

소설로 옮겨진 파우스트는 읽었으나 희곡 그 자체는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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