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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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편 지하철 안에서면 충분했다. 가슴속에서 멍울져 파고드는 읽기의 욕망을 채워주는 글. 아, 읽다 말고 피식거리는 나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김영하의 글`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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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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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을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서 우는 애가 또 있을까.

김애란의 문학적 자서전과 수상 소감을 읽으며 뚝뚝 나와 떨어지는 눈물을 나도 어쩔 수 없이 지켜보았다.

김애란이 부모에 대해 쓴 문학적 자서전을 보면서는 감탄했고,

편혜영이 김애란에 대해 쓴 작가론을 보면서는 부러웠다.

상을 타서 얼마나 좋을까. 라는 것 보다는 마음껏 글을 쓰니 얼마나 좋을까, 라는 것에 가까웠다.

 

'손재주가 좋은 부모님과 달리 나는 카드를 가지고 하는 종류의 놀이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공기나 고무줄도 잘 못했고, 산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힘들어했으며, 중학교에 올라기서는 가정시간에 저고리를 만들다 잘 안돼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종알종알, 패를 맞추듯 말을 맞추며 뭐라 떠들어대는 것은 좋아했다.' (71)

 

'얼마 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깨쳤다. 가벼워 민첩한 대신 흩어지고 사라지기 쉬운 '소리'를 글자로 적어 지상에 남겨두는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음 열 네개, 모음 열 개, 이렇게 스물네 개의 활자가 적힌 낱말카드가 그 도구였다. 그리고 그때 느낀 모종의 경이, 재미와 설렘은 다른 소설 안에 (두근두근 내 인생)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72)

 

낱말과 언어에 대한 김애란의 애착. 애증과 결핍이 만들어낸 귀한 결과물인 낱말의 조합들이 놀랍게 응축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독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선물 받았다.

 

소수언어박물관이라는 특정한 설정에 마음껏 상상력을 불어넣은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를 읽다보면, 기존에 김애란이 추구하던 여러가지 소설 기법들에서 작가 스스로 벗어나고 싶어하려는 몸짓을 찾을 수 있다. 아마 그 지점이 될 것이다. 작가가 스스로 허물을 벗어 날아오르려고 꿈틀대는 그 순간이란. 작품 속에서 소수언어를 쓰는 서로 다른 부족 출생 둘이 중간 지점의 아이를 낳지만, 곧 그 아이를 버린다는 설정에서, 독자는 묘하게 억압된 언어에 대한 제국주의와 사람들의 욕구를 읽게 된다. 하루에 몇백개씩 소수언어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몇년전에 읽으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던 독자로서의 내가, 이제 허물을 벗어던지고 능동적으로 침묵의 미래를 파괴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예술가는 스스로 보상받는다는 심사위원의 글을 보면서 유용하지 않아 자유롭다는 김 현 선생의 말을 떠올렸다.

 

귀중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앞으로도 많이 기대되는 작가임에도 틀림없다.

 

글로 푸는 문학이, 조금 느린 문학이 비록 영상물에 의해 상업적으로 지배받고 있거나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여도,

여전히 글은 힘이 세다.

 

 

사설.

 

누구든 나를 발견했을테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지하철역 출구 계단을 걸어올라오며

젖어든 눈물을 다시 삼켰다.

내가 쥐고 있던 낱말카드를 다시 꺼내 허공에 뿌렸다.

그것들은 천박하게도 4월의 벚꽃처럼 흩날라갔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연구원행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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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앓이 - 나에게로 떠나는 마음여행
크리스토프 포레 지음, 김성희.한상철 옮김 / Mid(엠아이디)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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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경계에 있는 나에게 마흔의 경계에 있는 분께서 선물해주신 책, 마흔 앓이.

마흔이란 나이는 어떤걸까 아직 모호한 서른에게 미리 십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겪어보라고 선물해주신 귀한 글들을 틈틈이 읽어내렸다. 마흔. 평균 수명이 80이라고 하면 이제 중반에 닿은 나이. 산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정상에 막 다다른 나이. 이십대의 치기도 삼십대의 설뜬 안정도 누려본 나이. 중년이 되어가는 마흔의 나이란 어쩐지 애매모호한 면이 있었다.

 

요새 '치유의 글' 참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사는 시대인지, 힐링이 중요한 화두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 그 상처 받은 영혼들. 마음들 모두 치유되셨는지 모르겠다. 치유가 된 듯하다가도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매일 여전히 같은 생활을 하며 살아내야 하는 도시의 사람들. 이 책은 그런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상처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십대를 위한 글이다.

 

*감정을 무시하지 말라. 회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라.

 

비단 마흔 뿐일까. 직장을 잡고 어느 한 곳에 퍼즐처럼 맞춰진 삶을 살아내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을 때가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부인하고, 그저 인생이 잔잔한 강물이듯 흘려보내지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약'이라는, 시간이 '치료해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다가오는 물살이 강하면 일단 그 물살을 피하고 싶은거야 인지상정이나, 이 물살이 보내는 메시지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한번은 강한 그 물살을 온몸으로 받아보라고. 그것이 네가 갈망하는 것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특히 페르소나 (persona)를 쓰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외부세계(혹은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겉모습)가 아니라 내면을 바라볼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속삭인다. 마흔을 위한 책이라는데, 왜 서른인 나를 쿵쿵거리게 만드는 글귀들이 산적해있는 것일까. '인간' 본연의 모습이 다르지 않기 때문임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 인생의 전반과 후반의 정점 마흔

 

인생의 전반기까지는 세상에 관심을 집중하고, 외부세계 방식에 편중된 삶을 사는 (혹은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중년기에는 외부세계로 향했던 관심을 내부 세계로 되돌리고 한쪽으로 치우쳤던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마흔의 숙제는 바로 이것. 새로운 정체성에 적응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인생의 전반기가 인간관계, 사고방식, 인생의 목표를 '선택'하며 인격을 발전시켜왔다면, 후반기의 사람은 인생 전반기때 정해진 방향으로만 가려던 삶의 방식을 전환해 무의식에 있던 내면의 욕구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 융의 심리학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는데, '자기'라는 사람의 본체를 인정하고 개별적 존재이면서 인류에 속한 개인으로서 개개인이 가진 무의식의 능력을 밖으로 꺼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으며, 그것이 마흔의 나이에 할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장과 균형의 정점에서 마흔을 논하다

 

아직 결혼도 해보지 못한 처녀의 입장에서, 중년부부가 맞는 위기는 막연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책 마흔앓이의 저자는 중년의 부부가 '왜' 함께 성장하지 못하고 삐걱거릴 수 있는지에 논리를 부여하고 있다. 함께 일생을 하기로 했어도 결국 개개인의 성장 속도는 다르다는 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인생 전반기와 후반기에 삶을 보는 시각과 태도가 다른데, 부부라고 한들 자아실현을 위한 길을 걷는 속도가 같을 수 있겠다는 거였다. 한쪽이 인생 전반기의 법칙을 고집하며 사는 경우 (페르소나가 인생 전반기의 법칙을 지배한다고 이 책은 전제하고 있다) 상대가 이미 그 법칙과 삶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면, 부부관계는 파탄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 해결법으로, '자율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에 대한 정서적 의존성을 줄이는 대신 그것이 '덜 사랑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는 말라'고 충고한다.

 

*죽음과 삶의 정점에서 마흔을 읽다

 

자녀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중년에는 부모를 잃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낼 수도 있다. 죽음은 인간의 한계이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이다. 안전한 울타리였던 부모의 죽음을 통해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러므로 그 어느때보다도 단하나뿐인 너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것을 먼저 인지한 철학자들의 명언들이 그래서 의미있는 것이라는 역설도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 완수해야 할 과업이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본문 178.

 

내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는 인생의 어떤 시기이건 매우 중요하다. 묵은 허물을 벗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기 때문이다. 허물을 벗어내기 위해 내면의 고통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심리적인 후퇴를 통해 강건해진다는 역설의 매력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내적인 강건함, 치유의 시작이자 그 정점에 있는 단어가 아닐까.

 

-내면의 변화에 대해 진중하게 논의하는 데 있어, 도구로서의 언어가 무자비하게 가벼웠다는 점과, 자기계발서적 같은 체크리스트로 인해 받은 정서적 이탈감에 대해서는 조금의 마이너스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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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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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이병률의 새 책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도 몰랐던 나에게,

가을빛이 선홍색이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책이라고.

나의 '가슴을 터져버리게 만들고 있는' 그가 경험 했다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그길로 아담하고 깨끗한 이병률의 책을 골라 쥐었다.

 

추천의 글에 버젓이 고개를 내민 소설가 신경숙을 발견했다.

소설집에서 이병률을 여행작가로 소개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모르는 여인들'의 단편 '화분이 있는 마당'. 그 속에 등장하던 여행하는 사진작가, K가 이병률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쿵.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길로 나의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좋아한다는 '이병률'이 내가 좋아하는 '신경숙'과 아주 친한 사이인것 같다고.

사실 내 마음 속에는 '너'와 '내'가 이어진 끈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 우리, 조금 더 친해지자고.

이런 불안하고, 안타깝고, 새롭고, 신비하고, 막 무언가 시작할 것 같은 느낌으로, 한장 한장을, 아껴 읽었다.

 

스냅사진 하나하나 꼼꼼하고 섬세한 눈길이 느껴지는 이병률의 촬영 솜씨는, 이제 막 카메라 앵글로 우리도 함께 여행을 하는 여행자의 기분이 되도록 만든다. 시인 이병률은 글을 쓰고, 사진가 이병률은 사진을 찍는다. 그 둘이서, 우리를 '끌리게 한다'.  

 

* 청춘, 너는 봄이다:

 

청춘, 무엇이 불안한지도 모르면서 불안해하는 청춘에게 그 설렘을 마음껏 받아들이라던 작가. 나의 청춘에게도 무한한 응원을 돋게 해주었다. 문 앞에 서서 무엇이 있을지만 고민하면서 시간을 쓰지 말고, 그저 설렘의 기운으로 그 문을 힘껏 열어버리라는 글. 그것이 바로,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이라는 것을. 작가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작가가 말한 청춘의 정의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은 나의 '그'에게 보내졌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설레는 글귀다' 라는 말과 함께.

그는 함께, 기뻐해주었다.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나의 청춘이 너와 봄을 함께 담고 싶다고 말하노라고.

틀에 박힌 일상에서 나와서, 나와 함께 그 문을 활짝 열어 젖히면 안되겠냐고.

 

 

* 사랑하다, 사랑을 하고 싶다:

 

돌덩이 같은 것이 마음 속에서 서서히 붉은 빛을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빠른 속도로 마음을 차고 올랐다.

나는 그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랑을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게 아니었는데.

잊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재고, 따지느라, 내가 그를 그저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을 덮던 그 때, 나는 예술의 전당 뒷 마당이 보이는 카페 모차르트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한번 더 펼친 글은. 나와, 나의 '그'와, 지금의 우리를 꼭 닮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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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얘기해줄까요?
우선 흰 도화지의 한가운데를 눈대중으로 나눈 다음
맨 위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줄을 내려 그어요

이선은 뭘 의미하냐 하면 왼쪽 벽과 오른쪽 벽을 나누는건데
우선 지금 당장은 평면처럼 보이지만
이 두 벽은 정확한 90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왼쪽 골목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가려면
90도 몸을 회전해야 되는 기역자 벽인거죠

일단 왼쪽 벽에다가는 한 남자를 그려요
벽 쪽에 몸을 바싹 붙이고 오른쪽 벽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살금살금 숨바꼭질하듯 눈치를 보고 있는 옆 모습의 한 남자를요

오른쪽 벽 역시 마찬가지로 한 여자를 그려요
여자 역시 벽쪽에 붙어서 조심스레 누군가를 훔쳐보기라도 하듯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옆 모습 여자를요

그림은 그림이 때문에 그렇게 정지해 있지만 1초후
만약 그 두사람이 앞으로 조금만 움직인다면
코를 부딪히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다시 1초후 두사람 모두 화들짝 놀란 나머지
몸을 정반대로 되돌려 멀리 멀리 뛰어가버릴지도 몰라요

 

사랑의 시작은 그래요

어떤 이상적인 호감의 대상이 한번 내 눈을 망쳐놓은 이후로

자꾸 내 눈은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사람 주변을 맴돌아요

한 번 본 게 다인데 내 눈은 몹쓸 것으로 중독된 무엇처럼

그 한 사람으로 내 눈을 축축하게 만들지 않으면

눈이 바싹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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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여름 같은 구름이 하늘 끝까지 펼쳐진 채로 붉은 해를 가득 머금었다.

저 멀리 예술의 전당 앞에 놓인 사거리 횡단보도의 빨간 신호등이 빠르게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다.

깜빡이는 불빛이 초록색으로 변하기 전에, 어서 그길을 건너 그를 만나고 싶었다.

 

추신: 그렇지만 나의 '그'. 혹시 이글을 발견하게 되었더라도, 티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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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옆에 앉은 어떤 아이 2013-02-1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녀의 '그' 에게,
혹시 이 글을 발견하게 된다면...
티 팍팍 내세요~ 알겠죠?!
지나가는 지금의 시간들도 소중하지만, 함께 만들어갈 시간이 빨리 찾아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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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않고 첫 페이지를 넘긴 소설.

'내 심장을 쏴라'.

 

12월에 읽었던 한강의 두 소설과 정유정의 소설의 형식상 가장 큰 차이점은, 역동성과 문체의 내면화에 있다.

심사평에서도 이미 쓰인바 있듯, 300쪽을 훌쩍 넘는 이 소설은 (물론 단숨에 읽히지는 않지만) 내면화 되지 않은 문체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2009년 세계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왜, 이 소설은 내면화된 문체보다 역동적인 문장이 훨씬 잘 어울리는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천상 순수 소설가 한강과 (자의든 타의든) 상업 소설가의 기질이 다분한 정유정은 줄긋듯 구분되는 문학적 차별성을 갖게 된다. 정유정은 이야기꾼이고, 한강은 소설가다.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작품 '내 심장을 쏴라'. 작가의 치밀한 자료수집과 상황묘사에 들어가는 실질적인 소재들을 보며, 새삼 간호사였던 작가의 전직이 부러웠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자꾸 사회경제연구소를 다니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거다. 단지 사람들은 정신병동의 간호사가 연구원보다 역동적이라고 생각할테지만.

 

*정신병동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정의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자. (213)'

 

정신병동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떠돌던 때가 있었다. 멀쩡한 사람인데 우연히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차를 탔더니 그 차가 정신병동가는 차였더라는. 그래서 그 뒤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사람이야기.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부류의 사람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작품은 정신병동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 정상적인 사람들을 구분해놓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 틈에서는 정상인 사람이 이상한 거다.

 

*愛: 정신병동의 사랑을 말하다

제로키 인디언들이 자작나무를 뭐라 부르는 줄 알아?

서 있는 키 큰 형제.

태양의 자식이란 점에서 나무와 사람은 형제라는 거야. (236)

 

열정적인 남자들의 이야기에는 늘 등장하는 형제애, 전우애, 그놈의 愛. 동양철학에서는 사랑 愛가 사실 '아끼다'라는 단어로 쓰인다는 것. 그것을 염두에 둔다면 갇혀서 미쳐가는 승민과 미쳐서 갇혔지만 전혀 정상으로 보이는 우리의 주인공 수명 둘 간의 愛가 피보다 진하게 얶혀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가끔 독자는 잊게 된다. 여기가 정신병동이었던가? 특히 우리의 주인공들이 이런 말을 내뱉을때.

미친 새끼들.

 

*내 심장을 쏴라.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240)

 

수명은 환청을 듣는다. 가끔 현자인 적도 있는 애증의 관계에 있는 수명의 어딘가에 붙어 있는 그 놈. 독자는 알고 있을까. 니가 누군지 정말 곰곰이 잘 생각해보며 사는 독자는 얼마나 있을까. 어딘가 숨어 있는 너의 분신말고, 세상에 내몰려 견디는 다른 나 말고. 진짜 나를 찾아본 적 있을까. 이야기가 한껏 고조되는 때 호수 한 가운데 정신병동을 벗어나겠다는 두 남자가 보트를 젓다 말고 호수밖을 향해 외친다. 너, 너를 아느냐고. 정유정 소설의 힘이 여기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구절이다. 이 긴 호흡의 소설을 만들어 낸 이유를 알 수 있기도 하는 부분이었다.

소설의 본질이 여기 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직감은 불길한 예언을 내놓았다. 이놈은 스스로 죽을거야. (264)

 

정유정 소설을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다.

질질 끌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왜 영화계가 정유정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것 같았다.

7년의 밤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영화같은 영상미가 도드라질 것 같다.

이 정도 내공, 어쩐지 빅 픽쳐에서 받았던 인상과 비슷했다.

장편소설을 잘 쓰는 작가와 단편소설을 잘쓰는 작가는 문체가 다르다.

정유정은 장편소설을 잘 쓰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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