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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야성적 충동 (Animal Spirit)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George A. Akerlof and Robert J. Shiller
종종 궁금했었다.
왜 모든 경제모델에는 조건 명제가 붙어 나오는지.
처음 배운 경제학 이론이었던 (무역학이 내가 가장 처음배운 경제학이었나보다.) 리카도의 법칙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붙는다. ‘단, 모든 시장은 폐쇄 되어있다.’
어떻게 시장에서 파는 물건이 하나일 수 있을까. 구구절절하게 각주마냥 붙어있는 조건들이 참 애석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 내가 읽은 경제학 서적들이 정통경제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때는 아마 장하준 교수님의 글을 본 시기쯤 되었을 것이다. 신선하고 뚜렷한 시각과 명쾌한 해석을 겸비한 두 교수가 지어낸 책 야성적 충동은 위기 속에 휘말린 우리 시대의 경제를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날실로 풀이하고 있다.
허쉬 세프린과 리처드 세일러가 실시한 실험은 사람들의 ‘무계획적인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실험대상자들에게 세 가지 상황에서 뜻밖에 2,400달러의 수입이 생겼을 때 얼마나 소비할 것인지 물었다. 첫 번째는 2,400달러가 보너스로 주어져서 1년 동안 1달에 200달러씩 주어지는 상황이었다. 이 경우 평균적인 대답은 1달에 100달러씩 총 1,200달러를 쓰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한 번에 2,400달러를 받는 것이었다. 이 경우 평균적인 대답은 바로 400달러를 쓰고 그 뒤로 1달에 35달러씩 써서 785달러만 저축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2,400달러를 유산으로 받아서 이자가 나오는 계좌에 5년 동안 묻어두었다가 이자와 함께 받는 것이었다. 이 경우 평균적인 대답은 올해에 한 푼도 쓰지 않는 것이었다.
합리적인 경제이론에 따르면 세 경우 모두 추가 소득의 일정 부분을 소비해야 맞다. 세프린과 세일러는 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소득을 다양한 ‘심리적 계좌mental accounts’, 즉 이 경우에는 현재 소득, 자산, 미래 소득 계좌에 넣고 완전히 다른 태도로 계좌별 소비를 한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얼마나 소비하기를 원하느냐는 문제는 얼마나 저축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 p.193
전통적인 경제이론에는 야성적 충동에 관한 원칙이 없다. 당연하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합리성’을 이론의 핵으로 심어 두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인간’에 의해 돌아가는 ‘인간’의 세상이 늘 합리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두 심리학자의 실험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착각의 동물이고 감성에 의해 움직이는 본능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니 8가지 질문에 앞서 야성적 충동 이론을 만들기 위한 충분 조건으로 이들이 내세운 (화폐와 경제능력에 대한) 자신감, 공정성, 화폐 착각들이 비이성적인 경제현상을 빚어내는 것은 사실 너무나 자명한 결과인 것이다.
야성적 충동은 주식투자, 부통산 등 대중적인 관점의 경제적 충동 뿐 아니라, 경제학자와 정책입안자 등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통경제학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일어나는 경제현상이 야성적 충동에 일어났다는 것을 염두하지 않고 시장을 통한 해결법을 맹신하는 경우에 어떻게 시장이 우리를 배신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적절한 수준의 시장경제 침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반론한다.
캐나다는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의 반비례 관계에 대한 부정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사례를 제공한다. 1996년 캐나다 경제학자 포틴(Pierre Fortin)은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무역, 재정정책, 최저임금, 금융긴축정책을 포함하여 모든 원인의 목록을 작성한 다음, 하나만 남겨놓고 다 제외시켰다. 그것은 캐나다 은행의 제한적인 금융긴축정책이었다….
1987년 캐나다에서는 존 크로우가 캐나다 중앙은행의 신임 총재로 선임되었다. 그는 물가안정을 중요한 임무로 설정했으며 자연실업률이론과,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중앙은행의 능력을 굳게 믿었다. 실제로 그는 물가안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엄청난 비용이 수반되었다. 1992년 캐나나의 실업률은 11.3퍼센트에 달했다. 그래도 크로우는 자신이 달성한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연실업률이론을 유용한 우화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제로 물가상승률까지 물가안정을 추구하는 것을 의무로 삼으며, 그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공론가들이 앞으로 연준이사가 되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P.186
책 전반의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를 통해, 두 경제학자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단기적’뿐만 아니라 ‘장기적’관점에서 정책입안자에 의해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 경제적 동기에 늘 합리적인 반응이 뒤따르지 않는 다는 사실, 지금 미국인의 생각보다 저축은 중요하더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저축도 심리학에 의해 생겨나는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을 통해, 이들은 움직이는 경제와 스며든 심리학의 절묘한 조화를 그려내려 애쓴다.
결론적으로, 비효율적인 경제이론을 막고 보다 실질적인 현상 이해와 해결을 위해, 두 케인즈 계열(!)의 경제학자는 (경제현상이 늘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시각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시장의 잠재된 창의성을 인정하되 인간의 야성적 충동으로 인한 경제의 과잉 현상은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통해 해결법을 창출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들은 이 주장을 드러내고 결론짓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가 가장 잘 되어 있다고 여기는 북유럽에서조차, 사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늘 달가워 하지는 않는다. 독일에서는 벌써 십년째, 바이에른 최보수층인 사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고, 북유럽 대부분의 노동당과 녹색당은 늘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경제를 보는 두 가지 큰 관점에서는 시장이냐 정부냐를 가지고 싸우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구멍을 메우는 것보다 적절한 균형추를 놓고 시장 전체를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능력을 키우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살 박이 아기가 마음 껏 걷도록 손을 잡아주다가, 제대로된 걸음을 걷게 되었을 때는 그 손을 잠시 놓았다가, 잔디를 걷던 아이가 정원의 꽃을 꺾으려 들 때 모욕감이 들지 않는 선에서 아이를 훈육 시켜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