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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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을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서 우는 애가 또 있을까.

김애란의 문학적 자서전과 수상 소감을 읽으며 뚝뚝 나와 떨어지는 눈물을 나도 어쩔 수 없이 지켜보았다.

김애란이 부모에 대해 쓴 문학적 자서전을 보면서는 감탄했고,

편혜영이 김애란에 대해 쓴 작가론을 보면서는 부러웠다.

상을 타서 얼마나 좋을까. 라는 것 보다는 마음껏 글을 쓰니 얼마나 좋을까, 라는 것에 가까웠다.

 

'손재주가 좋은 부모님과 달리 나는 카드를 가지고 하는 종류의 놀이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공기나 고무줄도 잘 못했고, 산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힘들어했으며, 중학교에 올라기서는 가정시간에 저고리를 만들다 잘 안돼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종알종알, 패를 맞추듯 말을 맞추며 뭐라 떠들어대는 것은 좋아했다.' (71)

 

'얼마 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깨쳤다. 가벼워 민첩한 대신 흩어지고 사라지기 쉬운 '소리'를 글자로 적어 지상에 남겨두는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음 열 네개, 모음 열 개, 이렇게 스물네 개의 활자가 적힌 낱말카드가 그 도구였다. 그리고 그때 느낀 모종의 경이, 재미와 설렘은 다른 소설 안에 (두근두근 내 인생)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72)

 

낱말과 언어에 대한 김애란의 애착. 애증과 결핍이 만들어낸 귀한 결과물인 낱말의 조합들이 놀랍게 응축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독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선물 받았다.

 

소수언어박물관이라는 특정한 설정에 마음껏 상상력을 불어넣은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를 읽다보면, 기존에 김애란이 추구하던 여러가지 소설 기법들에서 작가 스스로 벗어나고 싶어하려는 몸짓을 찾을 수 있다. 아마 그 지점이 될 것이다. 작가가 스스로 허물을 벗어 날아오르려고 꿈틀대는 그 순간이란. 작품 속에서 소수언어를 쓰는 서로 다른 부족 출생 둘이 중간 지점의 아이를 낳지만, 곧 그 아이를 버린다는 설정에서, 독자는 묘하게 억압된 언어에 대한 제국주의와 사람들의 욕구를 읽게 된다. 하루에 몇백개씩 소수언어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몇년전에 읽으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던 독자로서의 내가, 이제 허물을 벗어던지고 능동적으로 침묵의 미래를 파괴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예술가는 스스로 보상받는다는 심사위원의 글을 보면서 유용하지 않아 자유롭다는 김 현 선생의 말을 떠올렸다.

 

귀중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앞으로도 많이 기대되는 작가임에도 틀림없다.

 

글로 푸는 문학이, 조금 느린 문학이 비록 영상물에 의해 상업적으로 지배받고 있거나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여도,

여전히 글은 힘이 세다.

 

 

사설.

 

누구든 나를 발견했을테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지하철역 출구 계단을 걸어올라오며

젖어든 눈물을 다시 삼켰다.

내가 쥐고 있던 낱말카드를 다시 꺼내 허공에 뿌렸다.

그것들은 천박하게도 4월의 벚꽃처럼 흩날라갔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연구원행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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