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
라데크 말리 지음, 레나타 푸치코바 그림, 김성환 옮김, 편영수 감수 / 소전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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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얇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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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1 - '사건'전후
신정아 지음 / 사월의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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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알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또 어떻게 자신으로 휘청거릴지. 자신은 '고백'과 '참회'라는 말을 쓰겠지만 

'항변'쯤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읽고 싶지 않다. 왜 그의 항변을 듣고 있어야 하는가.  

자신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할 줄 알고 그렇게 하는 이 분의 이야기를 왜 유행처럼 찾아 읽어야 하는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 책에 관심을 쏟는 모든 언론과 대중에게 묻고 싶다.

자신이 잊혀질만 하니 다시 나타나 대한민국에 파란을 몰고 오시는 참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도 항변을 하겠다니.  

출판업계의 윤리를 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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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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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깔끔한 표지가 마음에 들어 찜해뒀던 책이었다.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까미유 끌로델이라는 세 여류 화가가 불행한 일생을 살면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는지,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활 습관으로 살고 있었지만  여성 폄하와 남성 위주라는 비슷한 시대 상황이 그들을 어떻게 파멸시켜 갔는지에 주력하고 있다. 결국 깊이 있는 연구와 작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듯 보인다.  작가의 일생을 빠른 속도로 둘러보는 가운데 간간이 간단한 작품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 것 같아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반대로 각기 시대 상황이나 한 남자의 여인으로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한다. 이것은 작품 자체로서 작품을 보기보다는 화가를 통해 작품을 보려하는 시도 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 세명의 뛰어난 화가들은 이미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남성으로서도 갖기 힘든 시대를 뛰어넘는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욕구와는 반대로 시대는 그들을 밀어내려고만 했으니, 스스로도 더욱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예술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더러 선각자라는 분위기를 내면서 그들의 화풍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또 곁들여진 그림이나 조각 삽화들이 글의 이해를 쉽게 하고 있다. 세 여성화가들에 대해 둘러보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비교 분석해보는 것도 특이하다.

 프리다 칼로는 초현실주의와 접선하면서 그녀의 예술성을 더 발휘할 수 있었다. 2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그녀가 겪었던 상처로 평생을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그림을 그렸다는 것, 남편 디에고의 어이없고 화나는 외도들로 그녀의 마음이 썩어가면서도 그녀는 남편을 의지했었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그녀의 그림을 더욱 감성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책에 소개된 여러가지 일화들이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프리다의 그림에는 자화상이 많은데 이것은 프리다 말대로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화상에는 항상 두 눈썹이 맞붙여 있다. 이것은 프리다가 어렸을때 친구들에게 썼던 편지나 일기장에 재미있게 자기를 표현을 하던 습관대로 그림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그림들에는 그냥 보기에도 초현실적인 기법들이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이미 그녀는 초기 자신의 자화상에 모딜리아니가 썼던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일상에서의 거부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것이 여러 초현실주의자를 만나면서 그녀의 그림을 초현실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중성적인 이미지의 멕시코인 프리다의 그림은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차있고 고독한 느낌을 받게 한다.   

 나혜석 역시 그 시대 조선에서 찾기 힘든 자유스러운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야수파와 인상주의를 접하면서 그녀가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그것이 일본의 개화풍 그림의 느낌을 담으면서 어떤 식으로 한국에 표현되었는지등은 그녀를 통해 한국이 서양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나혜석의 개방적인 사고로 그녀는 이혼이라는 엄청난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혼은 사회가 그녀를 냉담한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고, 그녀는 수없이 사회제도에 저항하는 글을 썼다. 세상의 거센 비판과 냉담한 태도는 그녀를 고독과 고통의 순간으로 밀어 넣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컸던 그녀는 사회의 비판과 차가운 시선 속에 방황했고, 그녀의 그림은 재료를 살 수 없어 완성되지 못한 작품도 있다고 하니, 참.. 어이가 없고 혼란스러웠다. 

  이런 이야기는 환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까미유 끌로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로댕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예술적인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까미유 끌로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어머니가 정신병원에 그녀를 가둠으로써 점점 더 퇴폐되어 갔다. 로댕은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그녀가 베풀었던 사랑에는 보답하지 못했고, 그의 아내를 데리고 나가버리는 어쩔 수 없는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까미유는 로댕을 만나 정열적인 사랑을 했지만, 그녀의 슬픔과 고통의 원인 또한 로댕이었다. 로댕과 성향이 비슷한 조각품들은 그녀가 로댕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했다. 실은 오히려 로댕이 끌로델의 작품에 영감을 받고 그녀를 모델로한 작품을 만들었다. 지옥의 문에 그려진 손과 발은 끌로델의 작품이라는 평도 나고 있다고 한다.

 이 세 작가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그 어느 시대에도 낳을 수 없는 위대한 여성 예술가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들이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생각에는 동조할 수 없다. 그녀들은 물론 앞선 시대나 조금 뒤에 태어나 활동했다면 좀 더 편하게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지만, 이 모든 작품들은 그녀들의 삶과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사람을 만들어 내듯, 그녀들 역시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막바지에 섰기 때문에 더 빛이 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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