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술을 멀리하고 살았다. 성공적인 금주 실천이 잘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지난 금욜날 된통 걸렸다. 무슨 추진위원회라는 모임에서 나와달라는 바람에 선뜻 응했던것이 화근이 아니었나 생각될 뿐이다.
잘 차려진 횟집의 먹거리에 반해서 이것저것 주워먹느라 정신이 없던차에 회의을 시작하겠다는 위원회 총무님 발의와 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진 몇가지 공식적인 행사가 마무리되고 총무님 왈, "박팀장님이 어렵게 참석해주셨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시고, 위원회의 나갈길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드린다는 의미에서 더 큰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짝~짝~짝~"
이건 뭐 음식점에 손님 불러다놓고 강연을 해달라는거나 마찬가지다. 마지못해 이것저것 챙겨서 얘기를 해준것까지는 좋았는데, 몇마디 던진 말이 씨가되어 된통 걸려버렸다. 지역주민들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좀더 진정성이 담긴 실행가능한 계획부터 세워나가야 한다는 말과, 적절하게 지역의 공무원들과의 교류관계를 형성해가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곧 실행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인것을 알았기에 몇마디 얘기를 함축적으로 전해준것 뿐인데 나보고 책임을 져야 한단다.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들이 흔히 책임감없는 말로 한마디 하고는 '실행은 너희들 알아서 해라'라는 식의 무책임한 사람은 아닐것으로 알고 있어 오늘 특별히 모시게되었다는 멘트와 함께 꼼짝못하게 엮이는 바람에 엉겁결에 최선을 대해보겠다는 답변으로 응대를 하게 되었다.
대답을 해놓고 잠깐 생각하니 엄청난 중압감이 밀려온다. 3개 지역에서 모인 주민들이라 거칠기도 하였거니와 아는 것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라 실제지역에서 움직이는 NGO단체들도 접촉하기를 꺼리는 자생단체라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술잔은 돌아가고 있느데.
꽤나 많은 술잔을 받아마시고 2차로 핵심 인사들만 모이는 자리까지 반 강제로 끌려가서는 이것저것 방법상의 논리까지 알려주고 주변의 아는 박사들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일단락되는가보다 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소개해준 박사들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역주민들은 이미 그들에 대한 신상정보와 나와 그들에 대한 사이까지 파악해놓고 그들 모두(3명)와 함께 3차 약속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그들도 2차까지 끝내고 3차에서 동석하기로 약속된 상태인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거나 반가운 마음에 그들과 흔쾌히 동석을 하고 주민들에게 2차까지 얻어먹은 보담을 한답시고 3차를 미리 계산을 해놓았다. 더이상 술을 마시면 계산이고 뭐고 못할것 같아 삼겹살에 소주 몇병 정도를 추가로 계산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10여명이 모여 마신술이 고작 10시도 되지않아 방을 한바퀴 돌고 몇병이 남는다. 먼길을 가야하는 사람도 있어 오늘은 그만 마시자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리고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탓는데, 아뿔사 지나가는 개인 승용차를 길바닥까지 뛰어나가 잡아탄것이다. ㅜㅠ
한참을 졸고 있는데 택시기사가 "박팀장님 몇동몇호세요!", 화들짝 놀라 얼굴을 빼꼼하니 처다보니 택시기사가 아니었다. "오늘 많이 드셨나봐요?"하는 말에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그분은 어느 지역 NGO단체의 간부로 활동하시다가 지금은 몸이 좋지않아 집에서 잠시 쉬고 있는 분이다. 단 한번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분이기에 평소 몹시 조심성있게 대하고 있는 마당에 엉망으로 취한 모습은 물론 길거리 실수하는 모습까지 공개가 되버렸으니 이젠 더더구나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경까지 되었다.
집앞 큰길에서 막무가내로 내려달라며 거듭 죄송하다는 얘기를 전하고 나중에 멀쩡한 상태에서 다시 사과말씀을 드리겠다고 해놓고는 줄행랑을 처버렸다. 금년들어 첫번째 술실수가 엄청난 사고를 동반했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