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본래 주제와 관련 없는 부분만 유달리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수업시간에 수업 내용은 기억 못하고 선생님이 했던 농담만 기억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묘사하고 있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알라딘 책 소개에 따르면
"평범한 한 인물 '이반 데니소비치'의 길고 긴 하루 일상을 가감없이 따라가며 죄없이 고통당하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지배권력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인간군상이 등장해 스탈린 시대 허랑한 인물상, 종교, 인성의 문제 등을 에둘러 역설한다"는 매우 고상한(?) 내용인 것 같다.
(요즘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나오나 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하루종일 그가 무얼 먹었나가 주 내용이었다.
아침 식사에 나오는 멀건 스프 속에 양배추나 고기 덩어리 같은 양질의 건더기를 얻기 위한 뒷거래라던가
빵껍질을 이용해 그릇 바닥까지 닦아 먹는 모습,
다른 수인에게 온 소포 속의 비스킷과 소시지 등을 얻어 먹는 모습,
일하는 중에도 뭔가 숨겨서 먹던 모습,
남은 먹을거리들을 숨기는 모습 등등.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당시 내 느낌에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식사 풍경>에 가까웠다.
책을 읽는 내내 이젠 또 뭘 먹나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다.

먹을거리에 대한 묘사로 치면 로러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다.
고등학교 때 집에 있던 ABE 시리즈에는 시리즈 중
<큰 숲 작은 집> <초원의 집> <우리 읍내> 3권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나에게는 미국 개척시대의 풍경과 생활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돼지를 잡아서 직접 훈제하고 말려 소시지와 햄을 만드는 모습,
단풍나무 시럽을 눈 위에 떨어뜨려 굳혀서 만드는 과자,
사과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무슨 꽃봉오리를 꽂는 모습,
옥수수가루를 반죽해 팬케이크를 만드는 모습 등등...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만드는 모습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흠흠.

<소공녀>에 나오는 건포도 박힌 빵이라던가
또 어느 책에 나오는 이빨에 그렇게 달라붙는다는 당밀 과자,
크리스마스 푸딩, 고기 파이, 머랭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책을 읽으면서 항상 도대체 그것들이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그랬던 걸까.

다른 분들은 책을 읽고 이랬던 적이 없나요?
사소하고 엉뚱한 부분이 더 신경 쓰이고 오래 기억에 남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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