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읽었는데 마지막에 포와로가 뭔가 인상적인 말을 했다는 것만 기억나고 다른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었다. 그런데 분명히 예전에 읽은 책인데도 처음 읽는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이놈의 기억력은.... 덕분에 새 책을 읽는 기분이었으니 오히려 이득일까나? 한 집에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첫 번째 목격자는 업무 요청을 받고 찾아간 미모의 타이피스트. 두 번째 목격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집의 주인. 세 번째 목격자는 정보를 찾아 돌아다니던 첩보원. 그리고 4개의 시계. 곧 밝혀지리라 생각했던 시체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고 집 주인은 타이피스트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하며 시계는 1개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또 한 명의 시체가 발견된다. 누가 범인일까? 이 책에서는 포와로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첩보원인 콜린 램지가 목격자이자 수사관이자 탐정으로 움직인다. 물론 결국 범인을 밝혀내는 것은 포와로지만, 포와로의 화려한 언변과 활동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 <4개의 시계>는 첩보물과 탐정물이 묘하게 섞여 있다. 덕분에 양쪽 다 조금 엉성하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포와로가 자신의 추리를 설명하면서 내세우는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 중 일부는 극히 사소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누명>에서는 '이미 종결된 사건의 범인이 진범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이 큰 주제였고 다른 책은 '살인은 너무 쉽다'는 말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세상사의 작은 부분을 깊이 있기 파헤지는 것이 크리스티 소설의 매력이다. <4개의 시계> 역시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나는 포와로의 마지막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