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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트 피크닉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시간이 잠시 정지된 공항에선, 과거와 미래가 함께 흐른다.
-p.118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시작과 끝은, 공항이다. 공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거나 이별의 쓸쓸함을 되새긴다.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공항에서 이별을 하고, 끝내 다시 공항에서 재회한다. 잠깐동안 일상에서 벗어나는 친구를 응원하거나, 일상에서 돌아온 것을 환영하면서.
공항은 그런 장소다.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떠나는 곳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공항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 각국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하늘길에 오르기 전의 수많은 사연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을 것이다.
....라고 거창하게(?) 말을 시작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항에 대한 기억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비행기를 그다지 많이 타 본 것도 아니고, 그것도 혼자 혹은 가족 단위,라기보다는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던지라 그런 거 없었다.
몇시 까지 공항에 모인다,라고 공지를 받으면 일단 도착하고 보는 거다. 가장 최근에 공항에 간 것이 졸업여행 갈 때 였는데, 하나같이 선글라스 끼고 와서는 사진 찍는다고 난리(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배웅하는 이도 배웅받는 이도 없이 그냥 홀연히, 우리끼리 오른 여행길이었기에, 그리고 '단체' '집단'이라는 뻔뻔함으로, 그리고 '놀러간다' 오로지 그 마음 하나로 공항,이라는 장소의 특별함 같은 것은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연유야 어찌되었건, 일상을 벗어난 '여행자'들에게 공항은 어떤 의미일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거기에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환승을 위해 잠깐 들르는 어떤 낯선 공항은, 일정을 벗어난 잠깐의 소풍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에어포트 피크닉>에서는 공항에 갇혀버린 많은 여행자들의 짧은 소풍을 그려내고 있다. 2010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인 교통 대란이 벌어졌을 때, 인천 공항에서 유럽에 가지 못한 채 발이 묶여버린 사람들. 그들은, 인천 공항에서 기약 없는 노숙을 시작한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인연이 연결되기 시작한다ㅡ.
인생에 여분의 시간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무얼 할까요?
글쎄…후회를 하지 않을까.
그래요? 전 준비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p.182
불가항력으로 아시아의 어느 공항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그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한국인이지만 영국인 부부가 입양한 청년 제임스, 얼마든지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지만 제임스에게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공항을 계속 찾게 되는 한인 여성 엘리자베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주변 인물들을 날카롭게 관찰하며 참견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해리 게이먼, 괴수 영화 감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지난 작품의 실패로 가족들과 잠깐의 여행을 떠난 기욤 그린과 그의 가족 헤더와 줄리엣, 드디어 파리 무대에 진출할 기회를 얻어 파리로 향하던 중 빼도박도 못하게 공항에 발이 묶여버린 모델 크리스티나, 그리고 이 노숙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공항 직원 호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시간을 벌게 되면서 여행 중의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은 마치 떠나는 장소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돌아오는 장소이기도 해.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두 가지 진실이 항상 함께라는 걸 알 수 있어. 떠나면, 돌아온다는 것.
-p.221~222
<에어포트 피크닉>에서는 공항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배경으로 '떠남'과 '머무름' 그리고 그 사이의 찰나의 순간 속에서 인생 그리고 사랑을 그려냈다.
어차피 이 순간, 대화를 나누고 세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일상이 아닌 낯선 이들과의 대화는, 각자의 아픔과 슬픔과 후회를, 진솔하게 고백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린 감독은 말문을 열지 않는 딸 줄리엣과 대화를 하고, 또 다른 고국에 발이 묶여버린 제임스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호주에게 용기내 말을 걸어 둘 만의 교감을 이루어내고, 크리스티나는 잠깐 지나친 소녀의 호의로 파리의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선 장소에서의 틈새의 시간은, 또 다른 인생의 선물을 해 준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공항을 품고 있다.
그곳엔 아무것도 머물 수 없다. 채워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비워지는 곳.
어쩌면 사랑은 그 미지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p.277
참 신기한 것은, 언제나 결론은 '사랑' 그리고 '자신'이라는 것이다.
여행 에세이,라는 것이 최근 몇 년간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며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그러고보니 최근은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 그것의 반증은 아마도 누구에게나 여행에 대한 로망이 가슴 속에 품어진 채 잠들어 있는 것이다. 어느날 문득, 훌쩍 여행길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실은 여행 에세이 속에 담긴 이야기는 뻔하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만남, 일상에서 벗어난 생활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인생을 되돌아보고..... 이제 책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여행지의 풍경만이 다를 뿐 결국 결론은 그것이다. 자기자신과 그 인생,이라고나 할까.
그 밖에도 언제나 인생의 진리는 '사랑'에 귀결된다. 결국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고, 언제나 한결같지는 않을지라도 결국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연인간의 사랑이든, 가족간의 사랑이든 친구간의 우정이든, 어쨌든 결론은 사랑이다. 결국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사랑이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다고나 할까.
주변에 그렇게 흔하디 흔한 것이 사랑이건만, 그럼에도 언제나 영원불멸 굳건히,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사랑이 무엇이길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과 기타 등등의 예술,이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건가.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는, 언젠가 자기 자신과 그 삶을 되돌아볼 것이고,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가 앞선 이야기와 함께 그런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결국은, 결국은 그 보편적인 결론에 다다라버리는 것. 그리고 그 삶은 평범했지만 괜찮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덕분에 그 시큰둥하면서도 옳은 말이라 반박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진리를 이끌어낸 <에어포트 피크닉>.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메시지를 과연 젊은 작가가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 또래의 작가님인 만큼, 에이 그래봤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가 김민서는, 의외로 괜찮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담아냈다. '공항'이라는 매력적인 장소에 머무르며 소설을 쓰던 그녀는, 그 공항을 수없이 드나드는 전 세계의 여행객을 바라보며 그들의 사연을 잡아냈으리라.
이러한 인생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보편적인 시련(?)일지도 모른다. 이 <에어포트 피크닉>은 그럼에도 그 고민들에서 잠시 벗어나거나 마주보는 이들을 그려내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장 보통의 날들, 그 사이로 찾아온 특별한 날들. <에어포트 피크닉>을 즐긴 이들에게 이것은 찰나의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