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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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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간만에 읽었다. '도조 겐야 시리즈'에 이어 단편집 <붉은 눈>에 이어 호러를 중점으로 하는 장편을 읽게 된 것은 <노조키메>가 처음인데, 일단 간단히 말하자면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 그것도 물리적인 결합이 아닌 화학적인 변화까지 일으키는 융합인 것일까 하는 측면에서 <노조키메>는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타일을 더 선호하게 된다.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끊고 맺는 것이 확실한, 논리적인 추론을 나름대로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과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키메>가 실마리를 얻어 '어떤 의문점'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일단 <노조키메>의 화자는 작가 '미쓰다 신조'다. 심지어 서장에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애초에 내가 <붉은 집>을 읽으면서 만나봤던 구체적인 작품명이 들먹여지면서 리얼리티를 강조하기까지 하는데, 이 시점에서 이미 나는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이건 진짜 이야기일까, 아닐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서장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솜씨, 정말 탁월하다.

 

  그리고 '노조키메'라는 존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시점에서는 이미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이야기 밖으로 물러나고 두 명이 다른 시기에 경험했던 이야기를 연달아 들려준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떠난 곳에서 겪은 '엿보는 저택의 괴이' 그리고 민속학 연구자가 50년동안 수기로 담아둔 채 세상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종말 저택의 흉사'. 이 역시 누군가의 경험담이라는 형태로 이것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아리까리하게 만들고 있어 모호함과 공포심을 슬쩍 배가시킨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플테고.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는 리조트에 아르바이트를 떠난 네 명의 대학생이 리조트를 둘러싸고 있는 산 너머의 폐촌에 방문하면서 벌어진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묘한 순례자 모녀의 존재, 마치 깨어진 경계를 나타내는 듯한 사각형의 바위, 그리고 폐촌이 틀림없는 마을의 빈 집에서 느껴지는 찌를 듯한 시선, 그 이후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일행들의 시선과 기묘한 죽음, 그리고 어딘가 빈 틈이 있으면 나타나는 한 소녀.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는 그 모든 사건의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민속학자의 수기 속에서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친구의 고향을 방문하면서도 집락촌에서 친구의 본가의 미묘한 위치와 친구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다. 게다가 흉사가 벌어지는 당시의 분위기가 꼼꼼하게 그려지면서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의 실마리들이 하나 둘 엮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 <노조키메>의 포인트는 바로 '나름의 조리'다. 분명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원천을 찾아갈 법도 하지만, 오히려 소설은 그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키메'라는 존재는 나름의 조리를 가지고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사람에게는 시선을 느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노조키메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다. 이러한 흐름을 기저로 '엿보는 저택의 괴이'에서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기묘한 이야기들이 '종말 저택의 흉사' 속 실마리를 단서로 '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조리 있는 이야기'로 치환된다. 이것은 마치 '사건'편에서 단서를 흩어두고 '해결'편에서 그 조각들을, 조리 있게 맞춰나가는 과정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모든 것을 속시원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미쓰다 신조는 아마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일 테다. 기괴한 죽음의 본질은 알 수 없지만, 그 조리는 알 수 있다니, 이것 참 묘한 이야기이다.

 

 

 

그런 존재를 이론으로 생각하는 건, 우스운 얘기죠. 그렇지만 무슨 일에나 조리가 있는 법입니다. 어디까지 인간의 지식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사실은 괴이한 현상도 그 조리를 따라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_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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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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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짧은 독서력을 돌이켜 보았을 때, 실은 판타지로 분류되는 소설은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몇몇의 작품은 내 학창시절을 완전히 점령하고 말았는데, 판타지 소설과의 첫 만남이었던 이우혁의 [퇴마록]은 내 중학교 1,2학년의 순정을(준후가 다.. 했잖아요..), 전민희의 [세월의 돌]과 [룬의 아이들 - 윈터러], [룬의 아이들 - 데모닉]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눈물을,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는 고등학교 2,3학년의 학업을 앗아가 버렸으니, 이 정도면 꽤나 굵직한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는 책들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받고, 전동조의 [묵향]이 어느 한 여름방학을 흠뻑 적셨는데 아직 완결도 안 났거니와 더 이상 읽지를 않고 있어 리스트에 넣지는 않고 살짝 언급만 해 둘까 한다. 아, 물론 해리 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있다. (쓰고 보니 많이 읽었네;;)

 

 

  어쨌든, 나는 왜 그렇게 판타지 소설에 열광한 것일까. 수많은 작품들이 다른 형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누구나 품고 있는 그 '하나의 우주'를 보여주는 근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형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돌고 돌아왔을테다.

  그리고 감히 생각건대 판타지, 그 환상의 세계는 비일상이라는 형태로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그 곳에서는 개인과 사회가 때로는 분리된다. 떠남과 머무름이 쉼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비일상임에도, 이는 우리의 모습과 흡사하기에 마음껏 공감할 수 있다. 그 모습은 중세 유럽의 어느 한 단면일 수도 있고, 실크로드를 건너던 어떤 대상(大商)의 발자취일 수도 있다.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길을 떠난 젊은 선비의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하나 켜켜이 쌓인 역사의 한 단면을 빌려 그 안에 조금은 이질적인 무언가를 가미해 만들어낸 세계. 그렇기에 그 곳에서는 이상(理想)을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딛고 있는 현실과 타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을 노래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높은 곳'에 다다른다. 그 높이는 상대적인 비유일지언정, '눈물을 마시는 새'가 되고 '피를 마시는 새'가 되며 '세월의 돌'을 찾는 과정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던 그 곳.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프롤로그가 있다. 달의 그림자가 비추어진 바다를 건너 도달한 하나의 세계.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이 있는 세계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누군가, 그러나 온전히 마음을 두기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며 시작된 모험, 지극히 당연히 떠오르는 '왜 나여야만 했을까'라는 의문, 혹독한 여정 속에서 맞닥뜨리는 숨겨졌던 나의 일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 다다른 장소.

 

  붉은 머리카락이 신경쓰이는 요코는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여고생이었다. 학급의 분위기를 쥐고 있는 무리들이 따돌리는 여학생에게 모진 소리를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편을 들며 그 무리들과 대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어느 날, 그런 일상이 뒤흔들렸다. 자신을 찾아온 이상한 차림새의 남자에 이끌려 난생 처음 보는 짐승과 대적해야 했고, 그들을 피해 도망쳐야 한다니. 반강제로 이끌려 요코는 바다 위 달의 그림자를 건너 낯선 세계로 내동댕이쳐졌다. 자신을 '해객'이라 부르는,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 속에서 요코는 사람에 대한 불신을, 사람을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믿고 싶은 그 마음을 발견하는 여정을 거쳐간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의 핵심은 바로 그러한 요코의 마음의 여정에 있다. 그저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여고생이었던 요코는 오직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자신에게 다가온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지만, 그 호의는 거짓의 가면이었고 이를 계기로 요코는 사람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호의가 아니다, 그저 내가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한 행동일 뿐이다, 라고, 요코는 자신을 끊임없이 습격하는 요마와 해객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세계에 혼자 싸워나가야 할 정당성을 돌아갈 고국에서 찾아내며 모진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반수인 라쿠슌을 만나면서 요코는 다시금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이다지도 가혹한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과 누군가를 믿고 싶은 마음이 갈팡질팡한 와중 자신은 '기린'인 게이키가 선택한 '경국의 왕'이라는 사실을 소화시켜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십이국의 세계에서 요코의, 그야말로 '하늘이 정해준' 왕으로서의 운명이 드러나면서부터 왕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코는 왕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고통받는 경국의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을까. 요코는 어깨를 짓누르는 왕의 무게에 괴로워하면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요코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되기로 한다. 결국 '높은 곳'에 다다른 필연. 그 필연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왕에 대한 이상을 거리낌없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타협한 왕의 모습을 본다. 또 한 번, 이 환상의 세계 속에서, 결국 현실에서 벗어난 세계이기에, 우리는 마음껏 그들의 정치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우리의 현실을 엿보게 될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 대신, 열두 개의 국가로 압축된 이 세상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그 이야기의 위대한 프롤로그다.

 

 

 

빛 속으로 뛰어든 순간, 내동댕이쳐지는 충격을 각오했지만 그런 아픔은 전혀 없었다. (…) 수면 쪽을 돌아보니 하얀 빛이 달 모양대로 어둠을 도려내었다. 그 표면이 크게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 요코를 태운 짐승은 번쩍이는 빛 속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빠져나와 둥근 빛 안으로 돌진했다. 다시 얇은 천이 몸을 스치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렇게 뛰쳐나온 곳은 바다 위었다. 위아래 감각이 뒤바뀌었다._p.50

 

사람은 몸속에 바다를 품고 있다. 그 바다가 지금 격렬한 기세로 소용돌이치는 것이 느껴진다. 표피를 찢어 눈앞의 남자에게 내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_p.154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은 분명 아니다. 살고 싶은 것도 아니리라. 요코는 포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돌아간다. 반드시 그리운 곳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뭐가 기다릴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하니까 내 몸을 지킨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_p.204

 

이런 세계에 내던져져 배고프고 애달프고 상처투성이고, 이제 일어날 수조차 없다. 그래도 돌아가고 싶다고, 그것만으로 이를 악물었건만. 솔직히 요코가 고국에서 맺어 온 인간관계는 이런 것뿐이었다. (…) 기다리는 사람 따위 없는데. 요코의 것은 무엇 하나 없다. 사람들은 요코를 이해하지 못한다. 속이고 배신한다. 그런 건 이쪽이고 저쪽이고 아무 차이도 없다._p.230

 

이 세계에 요코의 편은 없다.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자신이 얼마나 고독한지 깨달았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 내 편, 머무를 곳 하나 없는 목숨이라서 진심으로 아까웠다. 이 세계 모든 것이 내 죽음을 바란다면 살아남겠다. 원래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귀환을 바라지 않아도 돌아가 보이겠다._p.240

 

─그렇게 목숨이 아까운가.

─아깝지 않을 리가 없다.

─생명의 은인을 버리고서.

─진짜 은인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도와준 사실은 변하지 않아. 라쿠슌은 숨겨 주었어.

─꿍꿍이가 있어서 한 일이다. 선의가 아니다. 그런 인간은 언제든 배신한다.

─선의가 아닌 인간이라면 버려도 되는 건가. 정말로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건가._p.288

 

요코가 남을 믿는 것과 남이 요코를 배신하는 것은 아무 관계도 없다. 요코 자신이 상냥한 것과 타인이 요코에게 상냥한 것은 아무 관계도 없어야 한다.

홀로, 또 홀로, 이 넓은 세계에 외톨이로 도와줄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도 누구 한 사람 없더라도, 그래도 요코가 남을 믿지 않고 비겁하게 행동하고 버리고 도망치고 하물며 남을 해칠 이유가 될 수는 없는데._p.293

 

요코는 고국에서 남의 안색을 살피며 살았다. 누구한테도 미움을 사지 않도록, 모두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남과 대립하기가 두려웠다. 혼나는 것이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겁냈나 싶다. 어쩌면 겁쟁이였던 것이 아니라 그저 게을렀던 건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보다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이 편했다. 남과 대립하면서까지 무언가를 고수하기보다 일단 주위에 맞춰 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편이 편했다. 타인의 사정에 잘 맞춰서 '착한 아이'를 연기하는 편이 자기를 탐색하고 남과 날ㅇ르 세워 싸우며 살아가기보다 편했던 것이다._p.303

 

* 인용 부분은 실제 책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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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공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재담 섭렵기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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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웃긴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데에는 개인차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특히 나는 그렇다) 감탄하면 어떻게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유머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기억력 탓에 내용 일부가 빠지거나 더해지며 각색되기도 한다. 요컨대 민화나 수수께끼, 속담과 동일한 민간전승의 일종이다._p.13




  사실 우리 나라 설화, 그 중에서도 민담의 특징을 꼽으라 하면 단연코 '풍자와 해학'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웃긴 이야기를 즐긴다는 건 상당히 보편적이다. 게다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발전으로 전승이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물론 이것이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을 뿐. 집단 속에서 유머를 만들어내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다 똑같지 않을까,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똑같은 법이니.




문장으로 완성된 소설이나 에세이라면 판매 부수가 늘어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인기 작가의 작품이거나 유명 연예인의 이야기를 듣고 적은 것, 아니면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거나 출판사의 프로모션에 따르는 것 등이다. 하지만 민간전승에는 어떠한 권위도 통하지 않는다. 유머 자체의 내용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즉 웃기고 재미있는지 여부로 판단되는 아주 가혹한 세계다._p.13~14




  그렇다면 유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사람들에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요네하라 마리는 <유머의 공식>에서 유머들을 샅샅이 분해해 웃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분석해낸다. 유머집은 수없이 많아도 유머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라나. 자, 나도 이제 양질의 개드립을 양산할 수 있겠어!





  그런데 사실 그 시점에서 나는 깊은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누가 유머를 이렇게 공식에 맞추어 만들어낸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유머라는 것은 그 사람의 '센스'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유머의 공식>은 수많은 재담들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 다음 이 이야기는 이러해서, 저 이야기는 저러해서, 이런 점에서 웃음이 유발된다는 것을 분석하고는, 그 장의 마지막에 '응용문제'를 삽입해 두고 독자도 함께 유머를 만들어 내 보라고 권유하는데, 맥없이 K.O. 응용력이 부족해 나는 이다지도 웃기지 않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중간에 삽입된 '와 이 재치 있는 대답은 누가 한거야?' 했더니 본인 경험이라나 뭐라나. 네, 여사님 역시 기본적으로 센스가 있는 분이셨던 거다. 흑.



  유머의 공식은 허를 찌르는 기발함도 중요하지만, 그 기발함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기지, 재치, 순발력이 필요한 법이다. 어떤 웃긴 대답을 할까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나는 패배자. 다른 누군가의 빛나는 센스를 잘 기억해 뒀다 그냥 써먹는 수밖에 없는 운명인게다.


  사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꽤나 '웃기는' 편이다. '저장고'로서의 용량은 꽤 큰 편이고, 나름대로의 소스(source)도 갖고 있다. 그런데 내가 흠칫 하고 당황해 버리는 것은 늘 아저씨와의 대화에서인데, 백이면 백, 당한다. 심지어 유머가 유머로 끝나지 않고 서로가 민망해하는 결과만 낳게 되어 아저씨도 민망, 나도 괜히 죄송스러워지는데, 아저씨, 그 개그, 저한테는 절대 쓰시면 안 돼요. 서로 민망하다구요. 또르르..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수학의 정석 : 미분과 적분」을 사러 헌책방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 '유모어' 있지 않은가, 가격 뻥튀기! 상태가 좋은 수학의 정석을 집어든 다음 돌아서서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라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 '오십만원!'. 아, 이건 오천원을 뻥튀기해 어차피 절대로 내지 못하는 가격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합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기에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센스있는 질문을 하셨다 생각하고, 상대방도 유하게 웃으면서 '네 여기 있습니다 오십만원~'하고 오천원을 건네드리면 훈훈한 분위기 연출인데(개인적으로는 전혀 안 맞아요 아저씨..ㅠㅠ), 나는 늘 이러고 마는 것이다. 눈이 동그래지며 '네? 뭐라구요?' 서로가 민망해진 상황에서 옆에서 배를 잡고 웃는 친구가 원망스럽다.


  마치 짠듯이 나는 이 질문을 불시에 받으면 당황한 채 받아치지 못하고 '어버버..' 하게 되는데, 이게 센스의 부재이지 뭐란 말인가. 슬프기만 하다.




  역시 나는 창작자로서의 능력은 눈꼽만큼도 없고 남이 만들어놓은 걸 그냥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유머의 공식>을 읽는 동안에도 잘 알 수 있었다. 또르르. 우찌 답변을 만드는 건 잘 안 떠오르면서, 이 상황에 맞는 '저장된 소스'가 있구나! 하는 것만 떠오른단 말이지.



  그래도 역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몇 가지 분석은, 유머는 기본적으로 '사기 수법'과 흡사하다는 점, 수없이 많은 민담에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이유─현명하고 지혜로운 건 셋째 아들 or 딸인 이유─라던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웃픈 이야기('웃프다'는 정말 훌륭한 조어다!), 고이즈미 총리의 화법이 유머의 공식과 매우 흡사하나 결국 그 화법에 넘어간 일본인들 덕에 마지막 '반전'이라는 유머는 결국 완성되지 못한다는 씁쓸함은 여사님의 신랄함이 즐거운 동시에 역시 비슷한 쓴맛을 느끼게 한다. 혹은,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킨 수많은 웃음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마 <유머의 공식>은 유머에 관한 기본 센스가 있는 이들에게는 그 '센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근데 그런 사람들은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는 유머를 분석하는 에세이 그대로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고 쓸쓸하구나. 그러나 타고난 센스가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저도 양질의 개드립을 날리고 시포요.



  그러나 사실 <유머의 공식>이 빛을 발하는 것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다. <유머의 공식>은 오랜 세월동안 집필했던 원고를 다시 손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 다음 출간된 에세이로, 이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여사님은 난소암 판정을 받은 다음이었다고 한다. 그 때 웃음을 마주하고 있던 그 마음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서 이 <유머의 공식>은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유머의 공식>은 요네하라 마리의 마지막 작품이다.




모든 걸작 유머는 사기꾼의 수법과 똑같다는 사실이다._p.14



하지만 끝까지 추궁하지 못하는 가여운 야당, 이런 속임수 답변을 용서하는 너그러운 일본인 덕분에 정작 중요한 마지막 반전이 빠져서 유머로 완성되지 못한다._p.76



카메라를 줌아웃 하여 전체를 바라보면 시시한 트릭이 그대로 드러나서, 거기에 속았다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는 줌인을 한 채 결코 줌아웃 해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이는 국민의 몫이 된다._p.96



일본 속담인 '두 번 있는 일은 세 번 있다'에 해당하는 러시아 속담은 '신은 3(Trinity)을 좋아한다'로, 여기서 '3'은 신과 예수와 성령의 삼위일체에 해당한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신이 자신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으니, 인간도 '3'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또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무신론자의 논리에서도 결국, '3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이 된다. 그래서 (…) 영국인이 좋아하는 민화로 『아기 돼지 삼형제』가 있으며, 러시아인이 좋아하는 민화로는 『곰 세 마리』가 있다. 『신데렐라』의 주인공은 이복 언니가 둘 있는 셋째 딸이고, 안데르센의 「바보 한스」와 러시아 민화인 「바보 이반」에서도 주인공은 영리한(=상식적인) 두 형을 둔 바보(=상식에서 벗어난) 셋째 아들이다._p.107~108




_20140924~20140928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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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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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나간 소년을 목격한다. 태풍의 북상으로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돌아가겠다며 집을 나선 '나' 역시 정신이 나갔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빗속에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고 있다니 절로 혀를 차게 된다. 소년에게 호의를 베풀기로 한다. 그런데 이 소년, 정말 정신나갔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떤 속임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면에 절대로 알 수 없는 나의 개인사를 술술 읊는다. 이 녀석, 뭐야?



  알고보니 '사이킥'을 다룰 수 있는 초능력자란다. 어린애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자꾸 한다. '뭐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거야,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주제에.(p.101)'


  하지만 소년의 진심 어린 외침에 '나'의 마음은 흔들린다. 애초에 그가 될 수 없는 내가 어떻게 소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믿을 순 없지만 그가 어떤 마음일지 상상을 해 보자.


  그러나 그 마음도 잠시, 소년의 외사촌이라는 청년(소년?)이 찾아와 소년은 그럴싸한 속임수를 썼다고 털어놓고 있다. 실로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어 '나'를 속인 소년이 더더욱 괘씸해진다.


  소년은 그 외사촌의 말을 믿지 말라고 간절히 설득한다. 하지만 이미 속을 만큼 속아줬다. 소년과의 인연은 자그마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다.



  예상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오히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좋다. 잡지 기자에게 투서는 흔한 일이지만 백지에 담겨있는 의도는 단연 '협박'이다. 협박의 내용이 담긴 투서의 발신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소년은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내가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소설이었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라는 말을 대충 보고 나는 그녀가 [용은 잠들다]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생각했고,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비오는 날의 만남은 너무나도 강렬한 기억에 남아있어 나는 당연히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폭우 속의 만남 이외의 다른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으니, 이번에 다시 펼쳐 읽으면서 내가 초반부만 읽고 다 읽었다고 착각했음을 깨달았고.



  단연코 도입부는 압도적이다. 태풍이 몰아치는 밤 화자와 소년과의 만남과 그 폭우 속에 열려 있던 맨홀 뚜껑과 주변을 굴러다니던 우산. 특히 신지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되는 '나'의 생각의 흐름은 당연히 나를 이끌어나간다. 그런 능력이 있다고? 말도 안 돼. 설사 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나서는 건 안 될 일이야. 그리고 갑자기 훅 날아오는 신지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 이 시점에서 이미 나는 신지 앞에 무릎 꿇고 나의 어리석음과 편협함에 한탄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또 갑자기 나의 뒷통수를 후려 갈기는 여사님의 히든 카드는 '나오야'의 존재. KO패다.



  그렇게 패배를 인정하고 정신 없이 [용은 잠들다]의 페이지를 넘긴다. 빠른 속도감과 독특한 소재는 매력적이고, 그 클라이맥스에서 만나는 가슴 찡한 결말도 매력적이다. 내가 소설 읽고 눈물을 찔끔 흘리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근데 최근 좀 흔해졌음 주의;;)





  어쨌든 덕분에 한동안 그 여운에 푹 젖어 지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고 이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노라니 가히 충격적이다. 8할은 나의 나쁜 기억력이고, 2할은 작품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극심한 균형 차이로 인한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매력은 첫째는 소설 전반에 빽빽하게 들어찬 묘사에 있고 둘째는 날카로운 통찰력에 있다. 실제로 폭우 속에서의 만남과 신지의 능력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나'의 심리 변화에는 독자로서의 어마어마한 일체감이 있었고, 마음을 파고드는 신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로도 나의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고 있었으니.


  그러나 본격적으로 협박장의 발신지를 찾기 위해 추적을 해 나가는 과정은, 충격적이게도, 그 과정이 거의 기억나질 않는다. 주요 인물이나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사이의 사건이야 당연히 생각이 날지언정 초반의 장면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에 비한 후반부의 구멍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주로 사건의 흐름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중반 후반부는 되려 아주 인상적인 초반부에 묻히고 만 셈이다. (보통 초반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 정도의 갭으로 나를 충격에 빠뜨린 작품은 렌조 미키히코의 [조화의 꿀] 이후 처음이다.​)



  그렇다해도 그 균형이 아쉬워 책을 읽지 않기에는 압도적인 초반부를 놓치는 셈이다. ([조화의 꿀]도 마찬가지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찌되었든, 신지와 나오야의 이야기에 행복했으니까. 어쩔 수 없으니,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두 소년 덕분에.





사이킥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당연한 인간의 심리를 당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잘난 척하지 말고 그 잘난 입을 닫아둬야 해.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네가 너무 위험해. 뭐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거야,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주제에._p.101



나도 내가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건 아니에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보이고, 들리니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이해해 줄 수 있죠? 제 능력을 믿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혹시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은 해줄 수 있겠죠?_p.103



지난날에는 잔재주를 부릴 수 없어. 이건 절대적이야. 이코마의 말이 떠올랐다._p.183



마음이 놓여─. 그렇게─ 자연의 엄청난 힘을 보고 있으면. 나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하찮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니까. 나는 이따금 내가 무척 대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뭐든 알 수 있으니까. 스스로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정말 싫은데._p.325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용을 믿고, 기도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요? 부디 나를 지켜주세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기를, 내게 무서운 재앙이 다기지 않게 되기를, 하면서요. 그리고 일단 그 용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게 고작이겠죠. 하지만 역시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가 없는 거죠._p.388



그리고 말이야, 나오야가 죽을 때… 내 머릿속에서 떠나갈 때… 헤헤, 하고 웃었어._p.475





_20140818~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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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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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 유치 야요미의 [후쿠야당 딸들]을 다시 읽었다. 450여년 동안 교토에서 제과점을 가업으로 삼았던 후쿠야 집안의 세 자매들의 성장담이 그려져 있는 이야기인데, 그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가족들과 자신을 맞춰가며 또 부딪쳐가며 부모가 된 그들은 자신이 아이었던 일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그랬듯 자식들을 대하고 있는 장면.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또 다시 자기 나름대로의 답을 찾으며 성장해 가지만.


  그러니까,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지금 이 시점에서는 당시 부모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잔소리를 한 건지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으니까. 자식이 아프면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잘 되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 역시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역시 이런 이야기를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공감과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어쨌든 '공감'은 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어린 시절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던 어른들의 한 마디를 어느새 나도 공감하고 있을 때. 분명 어릴 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꼭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 줄거야' 하고 다짐을 하지만, 아 물론 이해를 못 해주기보다는, 그냥 어른들의 시선에 공감을 해 버리고야 만다. 나 역시 절대로 이 마음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마 god를 안 좋아할 수는 없을거라고 다짐을 했지만, 지금은 역시 그 중학생 시절의 열정적인 마음을 그냥 어느 한 구석에 조용히 남겨두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8월에 다시 꺼내 들 준비는 마쳤다!ㅎㅎ)






  닐 게이먼의 [오솔길 끝 바다]는 이런 감상을 불러일으킬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위에 말한 것처럼 마냥 아름다운 감상만 흘러나오지는 않을테다. 오솔길 끝 바다로 나아가면,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잊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의 다양한 감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오솔길 끝 바다]가 훌륭한 이유는 환상 소설이라는 틀 속에서 그 다양한 감정들을 건드리는 요소를 자연스럽게 배치함으로써 책을 읽는 누구나 마음 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을 것임을 자신하는 것이고,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 가라앉았던 무언가를 건져냈을 때 그 형태가 다양한 빛을 낼 것이 틀림없음에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소설 속 화자는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는 길에 문득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을 찾아가고 싶어 고향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일곱살의 자신이 살고 있었던 집의 형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거기에 개축을 한 집마저 자신의 추억과 달리 집주인의 취향에 바뀌어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문득, 왜 지금까지 자신이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생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 오솔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헴스톡 가의 농장이 있었고, 그곳을 돌아 나가면 레티 헴스톡이 말하곤 했던 '대양'이 있었다. 조그마한 연못처럼 보였는데, 레티는 그 대양을 건너 자신들은 먼 나라에서 건너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성장통의 시작은 호주에서 오팔을 채굴해 한탕을 노리던 남자가 '나'의 집(정확하게는 '나'의 부모님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온 뒤였다. 그 남자는 '나'의 소중한 새끼 고양이를 차에 치여 죽게 만들고는, 고양이를 소중히 묻어줄 틈도 없이 알아서 처리하고는 다른 고양이 '몬스터'를 데려와 이걸로 보상이 되었느냐고 물었다(물론 지금과 달리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랐기에 소년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의 아버지의 차 속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돈과 친구의 돈까지 모두 도박으로 날려버린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작은 마을에 찾아온 그 균열은 '나'와 레티 헴스턴과의 인연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나…….


  레티와 맞잡았던 손이 잠깐 떨어졌던 그 순간 이후, 둘 다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부모님 대신 '나'와 동생을 봐 줄 베이비시터 어슐러 몽턴은 '재앙'이 되어 찾아온다. 그녀는 '나'를 집 밖으로 나가 레티를 만나지 못하게 방에 가두어두었고, 아버지와의 외도를 목격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아버지의 심한 체벌을 겪게 한다. 그런 상황만 놓고 보았을 때는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닐 게이먼은 거기에 다른 세계의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소설 속 배경을 이색적으로 그림과 동시에 소년에게 찾아온 '흉기(?)'를 변주해 낸다.





  그렇게 일곱 살의 소년은 빠르게 성장한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그 시절을 뒤돌아 볼 사이도 없이 잽싸게 잊곤 한다. 그러나 닐 게이먼은 그 망각 속의 추억을 '환상'을 통해 복원할 밑그림을 그려낸다. 그러나 역시 누구나 오솔길 끝 바다에서 마주치게 되는 무언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자 나름의 변주곡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그것은 농장 뒤쪽에 있는, 오리가 사는 연못일 뿐이었다. 그리 크지도 않았다._p.9



어른들은 길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탐험한다. 어른들은 같은 길을 수백 수천 번 걸어가도 만족한다. 아미 어른들에게는 길을 벗어나고, 진달래 덤불 아래를 기어가고, 울타리 사이의 공간을 찾아낸다는 생각이 아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였고, 그것은 우리 집 대문 밖을 벗어나 오솔길로 들어갈 수 있는 서로 다른 방법을 십여 가지는 안다는 뜻이었다._p.95~96




우리는 오래된 나무 벤치에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어른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말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그들은 모두, 사실은 어른의 몸에 싸인 어린이이들일까? 그림도 대화도 없는 지루하고 긴 어른 책들 사이에 숨겨진 어린이 책 같은?_p.185




나는 보통 아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이기적이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물의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한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확신했다. 바위처럼 단단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 나는 진짜 죽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파괴를 멈출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모든 것이 파괴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_p.252~253




억울함이 번뜩였다.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살아남고 세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것, 그렇게 그럭저럭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만으로도 힘들었다. 무슨 일을 했을 때 그 일이 누군가의 것을...... 죽지 않았다 쳐도, 그녀의 생명을 기꺼이 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도 힘들었다. 이건 공정하지 않았다._p.269




두 번째 달의 환영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지만, 한순간이었다. 곧 나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털어버렸다. 아마 잔상이나 환영이었으리라. 잠시 동안 내 마음을 흔들어놓은 무엇인가의 환영. 너무나 강력해서 진짜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것. 잊힌 기억처럼 혹은 황혼 속에 녹아드는 그림자처럼 과거 속으로 희미해져버린 것._p.287







_20140728




*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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