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며] 눈높이 맞춘 책선택 [2005. 2. 17]
독서 습관의 첫걸음
잠을 편하게 잔다는 것은 쾌식이나 쾌변 못지 않게 우리생활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암울했던 시절에는 공안기관들이 사상범들에게 잠안재우기 고문을 하곤 했습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결국에는 심문자들이 원하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쉬이 잠이 오지 않을 때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시는지요.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숫자를 세시는 분도 계실테고 별 하나, 별 둘, 별 셋 하는 식으로 별을 헤아리는 분도 적지 않으실 겁니다. 팔굽혀펴기를 100개 가량 하면 금세 곯아떨어진다는 비법을 가진 분도 있을 만합니다.
잠이 잘 오게 하는 확실한 또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희같은 보통사람들에게는 분량이 수백쪽이 되는 철학서 또는 비평서 등이면 그 효과가 만점입니다. '○○철학 사조에 관한 제고찰'이라거나 '△△주의 비판-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중심으로' 등등 제목까지 난해한 책들은 수면제 이상의 약효를 발휘합니다.
며칠전 저희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저희 신문 취재팀이 연초에 몇몇 사람을 선정해 '작심 3일 타파 프로그램'을 실시한 뒤 설 무렵 얼마나 새해 결심을 지키고 있는지를 점검해 본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40대 중반의 한 주부는 '한달에 책 세권 읽기'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안타깝게도 한달여동안 이 분은 한권 반을 읽는데 그쳤습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이유는 아주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했거나 게을렀기 때문일거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이유는 너무 어려운 책을 골랐기 때문이었답니다. 이 분이 처음 선택했던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절반쯤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를 한 뒤 좀 더 읽기에 편한 책을 손에 잡았는데 이번에는 거뜬히 완독을 했다고 합니다.
지난 번 설 연휴동안 귀성차량 속에서 짬을 내 책을 읽으신 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책 읽기에 숙달된 상태가 아니라면 난해한 책과 씨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입니다.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화장실용 책'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꼿꼿하게 앉아서 온 정신을 집중해도 이해가 쉽지 않은 책들은 화장실에서 읽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뜻일 겁니다. 그건 출퇴근 지하철에서 스포츠신문이 선호되는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하긴 제가 아는 어느 분은 백과사전을 들고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이 아연실색한 적이 있긴 합니다만.
물론 모든 사람들이 편한 책만을 읽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수준이 있는 것이고 준비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책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사례로 든 베르베르의 책도 우리나라에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왕 손에 책을 잡은 바에는 한권을 끝까지 읽어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러자면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책을 고르는 지혜도 필요할 겁니다. 가물에 콩나듯 큰 맘먹고 한번 읽으려고 한 책의 수준이 너무 높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면 조금 겸연쩍지 않습니까.
(국제신문 염창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