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툰키즈 “우린 공부도 만화로 해요”  [05/02/14]
 

5급 한자자격증시험을 준비하는 이민흠 군(9·경기 성남시 분당구 미금초등학교)은 부모를 졸라 한자학원에 다닐 정도로 한자를 좋아한다. 학습만화책 ‘마법천자문’에 푹 빠진 탓이다. 매주 3000원인 용돈을 아껴서 1∼7권을 모두 샀고 요즘엔 바둑을 배우러 기원에 갈 때마다 1층 서점에 들러 8권이 나왔는지 확인한다.

아울북이 2003년 11월 출시한 ‘마법천자문’ 1권은 지난해 말까지 7권을 내놓으며 2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아이세움의 과학상식 학습만화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도 첫판을 내놓은 지 3여 년 만에 300만 권이 팔렸다.

만화에다 지식을 결합한 학습만화. 웬만한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서너 권씩 갖고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것 같아 학습만화를 사주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 학습만화 열풍… 교과서도 만화로

학습만화 열풍은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이후 불기 시작해 2000년 말 가나출판사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내놓으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형서점 아동 코너에는 학습만화가 절반을 넘고 있다.

최근엔 줄거리를 만화로 옮기는 형식에서 벗어나 교육과 오락을 가미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개념이 본격 도입되고 있다.

아울북 김진철 상무는 “과거의 아동용 한자만화책은 만화로 한자를 설명하는 수준이었다”며 “반면 마법천자문은 손오공의 이야기에다 마법이라는 장치를 결합해 아이들이 놀면서 한자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에서 살아남기’도 주인공인 어린 소년이 동굴 사막 지진 등의 자연환경에서 살아 남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면서 과학지식을 곁들였다.

지난해에는 언어 역사 과학뿐 아니라 ‘만화로 배우는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6000여 종의 신간 학습만화가 쏟아졌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박성식 과장은 “2001년부터 학습만화 시장이 커지면서 연 10% 안팎의 성장세를 보였다”며 지난해 시장 규모는 7500억 원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40% 정도가 학습만화”라고 말했다.

○ 만화 읽으면 공간지각 능력 높아져

‘좋아해야 잘할 수 있다’는 말처럼 학습문화의 장점은 신세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부 이순정 씨(32·경기 고양시 화정동)는 아들 윤호 군(9)을 위해 과학 역사 분야의 학습만화를 동네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 온다. 만화과학책을 본 뒤 “우유는 왜 흰색이죠”라고 묻는 등 주위 사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만화책에 있는 뉴턴의 위인전을 사달라고 한 적도 있다.

서울 당산초등학교 5학년 배성호 교사는 “사회에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나오면 ‘만화,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관련 부분을 복사해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만화에서처럼 한글 창제를 둘러싼 찬반 토론을 시킨다”고 말했다.

만화의 학습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려대 김성일 교수(교육학)는 “만화를 읽으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상상력이 떨어진다는 일반의 오해와 달리 장면을 상상하게 돼 공간지각 능력이 높아진다”며 “30년 전과 비교하면 교과서도 만화에 가깝게 진화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화학습지는 한두 명의 전문가가 만들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에서도 CD에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고기가 구워지기 전에 CD가 녹는다”는 독자의 지적을 받고 수정했다.

서울 방배초등학교 최정옥 교사는 “만화를 많이 본 학생들은 글자가 많은 책은 싫어한다”며 “학습만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만화로만 공부하려 들기 때문에 부교재로 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4학년 딸을 둔 김미정 씨(40·서울 양천구 목동)는 “마법천자문 1권엔 새로운 한자가 20개 정도여서 한자를 배우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초등 4학년까지 효과” vs “어휘력 떨어진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연세대 최유찬 교수(국문학)는 “만화는 영상세대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학습도구의 하나”라며 “일단 만화로 재미를 느끼면 원작소설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말했다.

그러나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 원장은 “만화가 책에 익숙해지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계속 만화책만 찾는 아이도 적지 않다”며 “만화 때문에 어휘와 상상력이 부족해져 책을 읽으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일반 책의 어휘는 평균 3000여 개이지만 같은 내용의 만화는 100여 개에 불과해 어휘와 사고가 편협해질 수 있다는 것.

또 소설책에선 ‘슬프다’, ‘안타깝다’, ‘애틋하다’ 등 다양한 표현이 만화에서는 단 한 단어로 사용되며 대부분 구어체다.

남 원장은 “어휘능력이 완성되는 6∼12세에 읽고 쓰는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만큼 생각하고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교대 양태식 교수(국어교육)는 “학습만화는 4세에서 초등 3, 4학년까지는 효과가 있다”며 “이후에도 독서의 대부분을 만화책으로 하려한다면 비디오 인터넷 등으로 관심을 돌려 교육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습만화 시장 3000억 원대▼

학습과 만화를 결합한 학습만화가 ‘나홀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출판시장의 규모는 1조6000억원대. 만화 시장은 7500억 원 정도이고 이 가운데 학습만화는 3000억 원에 이른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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