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수요와 당위 사이의 줄다리기  [05/02/14]
 
[문화컬럼] 도서관, 수요와 당위 사이의 줄다리기

도서관은 책의 집이다. 어떤 도서관이 좋은 도서관이냐를 판가름하는 일차적 기준은 아무래도 어떤 책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될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 또는 읽으면 좋은 책을 소장하려고 하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

문제는 도서관으로서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도서관들은 오랜 시간 책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이 과연 도서관이라고 하는 사회적 장치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보존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일차적으로는 도서관 사서들이 직접 책을 살펴본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으로 수많은 책을 다 점검할 수는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다음으로는 대중적이거나 학술적인 잡지나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실린 서평을 꼼꼼하게 살펴 책 고르기에 참고한다. 나름대로 전문가들의 서평은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 등에 올려지는 일반독자들의 평가도 많은 참고가 된다. 또한 이러한 목적에 맞는 좋은 서평잡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서평잡지가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그래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여러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발표하는 권장도서 또는 추천도서 형태의 목록이다. 어린이 책의 경우라면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시민단체의 목록은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연말에 많이 발표되는 올해의 책이라든가 문화관광부의 우수도서 목록, 간행물윤리위원회나 출판단체 등에서 발표하는 이 달의 책 등과 같은 목록들은 도서관에는 더운 여름날 한 모금 시원한 물과 같다.

최근에 서울대학교에서 재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을 발표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읽었음직한 책들은 제외하여 입시에 쓰일 목록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다고 하지만, 이 목록을 두고 여러 언론매체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한 목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을 크게 받는 것 같다. 다른 대학에서도 이런 유사한 목록을 발표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에도 이런 관심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서울대학교가 그래도 재학생들이 읽어야 할 책 목록을 공들여 작성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너무 책을 읽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정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 목록을 보면서 몇 가지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물론 도서관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선 목록은 작가와 작품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고전이나 번역본의 경우 같은 저작이라도 많은 판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거기에다가 2004년 2월 영미문학연구회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영미 문학 고전을 평가해 본 결과 거의 대부분이 표절 또는 오역된 것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서울대학교 권장도서에 호손의 ‘주홍글씨’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영미문학연구회의 평가에 따르면 ‘주홍글씨’의 경우 출간된 52종 중 75%인 39종이 표절이라고 한다. 대신 추천할 만한 판본은 겨우 2종(4%)에 그쳤다. 도서관으로서는 그 많은 판본 중에 어떤 책을 사야할까 고민할 때, 그래도 이런 평가(이 평가가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은 영문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다만 도서관으로서는 다양한 정보를 활용할 것이며, 그 때에 이런 정보도 의미있게 활용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여기에서 검토되지 않은 책이라면 도대체 어떤 번역본이 좋은 책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물론 이같은 점은 이번 서울대학교 목록뿐 아니라 이와 같은 목록의 대부분에 있어 기본으로 깔려있는 문제이다. 앞으로 도서관을 포함해서 출판계는 물론 관계 전문가, 나아가 우리 사회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다양한 권장도서 목록은 구체적으로 책 한 권 한 권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함께 따라야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권장도서를 고르고 발표하고자 한다면 좀 더 많은, 그리고 더 정확한 목록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도서관들이 목록에 포함된 좋은 책을 사서 도서관 장서에 넣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도록 하고, 오래 보존하여 다음 세대가 읽을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세대간 대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민거리(?)는 권장도서와 도서관의 인기대출 서적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문화일보 기사(2005.2.5.)에 따르면 서울대학교가 4일 발표한 권장도서 목록과 지난 해 같은 대학 중앙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 100권을 비교해 본 결과, 둘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고 한다.

권장도서 목록은 고전 중심인데 비해 대출 상위도서는 주로 소설, 팬터지, 무협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권장도서 100권 중 박경리의 ‘토지’와 ‘그리스·로마신화’ 단 2권이 포함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도서관 입장에서는 이러한 두 양극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도서관은 서점이나 도서대여점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이용하는 사람들의 요구에만 따를 수도 없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교양이나 전문성만을 강조해서 이용되지도 않은 책만을 쌓아둘 수도 없다. 문제는 이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사실 균형을 갖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도서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도서관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도서관까지도 경제성을 따지고,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 정도로 고객만족을 따지는 시대에 읽히지도 않는 책을 소장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도서관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과 균형잡힌 이용행태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 운영자는 고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된 고전이나 좋은 책은 갖추도록 도서관 직원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것은 한 사회의 지적 균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그리고 출판산업으로 대표되는 지식과 문화산업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고객들은 도서관이 개인의 선호에만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그런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보존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합의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관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사적인 관심이나 즐거움을 위한 책보다는 좀 더 사회적 가치를 가진 책을 읽는데 도서관을 활용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 비로소 도서관은 그 나름의 전문성으로 두 극단적인 가치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서관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읽을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읽고자 하는 책만 없다!’ 그러나 도서관으로서도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 유용한 책을 골라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도서관이 어떤 책들을 갖추면 좋은지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도서관은 수많은 사상과 지식, 정보가 옳고 그름을 떠나, 맞고 틀림을 떠나 무수히 서로 투쟁하는 공간일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는 사적인 관심으로만 대한다면 도서관은 마치 잡다한 쓰레기장이 될 수도 있다. 도서관은 밀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광장에 있어야 하는 기관이다.

독자들이 서점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는 것보다 더 큰 무게의 고민을 안고 있는 기관이다. 이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 도서관에 있는 많은 책들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잘 되었건 못 되었건 지금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책들은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수준이며 고민의 결과물이다. 앞으로 도서관에 가시면 책꽂이 사이를 어슬렁거려 보시기를. 그리고 아무 책이나 꺼내 만져 보거나 훓어 보시기를 권한다.

그런 사이에 우연히 보물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하실 수 있지 않을까? 보물을 발견했다면 그 책이 보물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구해둔 도서관 직원의 노고를 한 번은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이 도서관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이 글은 신기남 의원 홈페이지(http://www.e-politics.or.kr)에 게재되는 '시선의 권리' 컬럼 란에 올라오는 글이며, 필자와 신기남 의원측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이용훈 도서관협회 기획부장)=데일리서프라이즈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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