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얼굴없는 창조자’]    2005. 2. 12

감성의 더듬이 쫑긋 세우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플래너

출판계에 있는 사람, 책을 읽는 독자 치고 누가 편집의 의미를 모르랴. 그러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편집이라도 논리화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편집의 지형도에는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씩 남아 있기 때문이다. 편집의 실체는 다면적이고, 다향악적이기에 아직 그 일면조차 다 보았다고 말할 자신이 나는 통 안 생긴다.

내가 종종 받는 물음 중의 하나는 과연 편집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와시오 겐야의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를 보면서 가장 관심 깊게 본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혹시 다음에 이와 유사한 질문을 받을 때 헤매지 않고 곧바로 대답하기 위해서. 결론적으로 과연 선각답게 지은이 겐야는 편집자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해 놓았다.

“편집자는 플래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안자다.”

그렇다. 편집자는 발안하고, 또 발언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곧잘 나오는 표현을 차용할라치면 직조의 솜씨는 천의무봉이어서 그 존재가 그늘에 묻혀 드러나지 않아야만 좋은 편집자다. 따라서 편집자는 화려한 자리에 설 수 있기보다는 한 사람의 직능인으로 변함없이 사회의 한켠에 자리할 수 있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편집자가 인기 직종이라니 참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일까? 군데군데 편집자가 새겨들어야 할 금과옥조 같은 구절을 보면서 소리내어 읽어본다. 그리고 문득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내가 어디선가 썼던 구절과 똑같다. 편집자는 국경을 넘는 만국공통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인가. 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

“젊은 편집자들이 기획의 비결을 묻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비결이란 어디에도 없다. 그때마다 자신의 감성과 감각 연마 외에 길이 없다고, 모든 현상에 전방위로 안테나를 세워 공부하면 저절로 기획이 나온다고 대답한다.”

이외에도 와시오 켄야의 다음과 같은 활달한 지적 앞에 나는 연신 무릎을 친다. “‘인간성이 나쁘다’ 하더라도 편집자만큼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오래 배기기 힘든 직업도 없을 것이다. 전문분야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다. 저자를 비롯해 디자이너, 인쇄소, 제책소, 도매상, 서점 등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하는 존재다. 달리 말하면 남의 덕에 먹고사는 직업이다.”

이 책에 나온 다소 일본적인 상황과 예증들 말고는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현실과 전적으로 들어맞는다. 특히 출판 선진국이라 할 일본의 역동적인 출판 시장에 대한 포괄적인 소개를 넘어서는 구체적인 지적은 우리 출판 관계자들이 주목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총체적으로 편집자에 대한 실용적인 안내서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는 책이라고 확신한다. 일반 독자에게도 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책으로서, 책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자리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은숙 마음산책 출판사 대표)=한겨레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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