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 없는 산문의 가벼움 [05/01/31]
 
[일사일언] 참을수 없는 산문의 가벼움

산문의 시대다. 시의 시대를 지나 소설의 시대에서 이제는 바야흐로 산문의 시대다.

좋은 시나 소설이 많아야 하지만, 좋은 산문도 많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 쏟아져 나오는 산문집을 보면 내용이 너무 피상적이다.

피상적일수록 감상적이고 그래야 독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는 출판 시장의 논리가 그대로 읽혀진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산문 문화는 없다. 공들여 원자료를 찾아서 섭렵하고, 거기에 자기의 사유체계를 이식해 펼쳐나가는 고급한 산문은 드물다.

산문은 피상적인 감상의 글이라도 그 인식 체계가 주밀해야 한다.

그런 좋은 산문은 좋은 시와 좋은 소설에 영향을 준다. 김수영의 산문은 김수영의 시만큼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김수영의 산문을 읽다 보면 그의 시의 전모가 드러난다.

그런 잔잔한 사유가 짙게 배어 있는 산문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기의 지적 배경을 형성하며 입장을 가지게 된다.

평범한 사물 하나에도 다양한 생각의 방식이 존재한다. 읽고 버려도 괜찮은, 그렇고 그런 산문집들이 난무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팔리는 글들이 꼭 그런 피상적인 글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도 없고, 새로운 시각도 없고,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는 산문들이 팔리고 있다는 것은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출판 문화의 문제다.

편집자들은 독자가 좋아하는 책은 가벼운 책이라는 고정 관념이 출판 시장을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함성호 시인·건축가)=조선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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