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책 안 읽는 사회

지하철에서 한 아이가 책을 읽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곁에 다가가 앉으며 은근히 물었다. “너 무슨 책 읽고 있어?” 아이가 수줍은 듯 책 표지를 슬쩍 보여준다. “어, ‘토지’네! 너 이 책 이해할 수 있어?” “그럼요, 청소년을 위해 쉽게 써진 걸요.”

체구가 작아서 4학년쯤으로 짐작했는데 6학년이라고 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는 독서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급하게 길을 나선 터라 가방 안에 책 한 권 넣어가지 못한 나는 마땅히 눈 둘 곳이 없어 지하철 안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눈길이 한 곳에 쏠려 있었다. 지하철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에서는 오락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자막으로만 시청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람들은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씁쓸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젠 매우 드물다. 그날 역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그 아이와 엄마 단 둘이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큰 대형 서점이 문을 연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줄었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이렇게 정신과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활자문화를 외면하다가 우리의 정신이 어둠 속에서 표류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김순자·도서출판 문원 편집장)=조선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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