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책은 잘 나갑니다"  [05/01/21]
 
[김열규 문화칼럼] "돈 책은 잘 나갑니다"

사나운 추위가 한창 악을 쓰고 있던, 요 며칠 전에 서울서 한 출판사의 사장이 찾아 왔다.

"요즘 출판사 경영하기가 어떻습니까? 최근 날씨 같은가요?"

"그럼요! 거의 얼어 죽을 지경입니다."

모처럼 만난, 주인과 손님이 인사라고 주고 받은 게 이런 식이었다.

내친 김에 더 물어보았다.

"출판사라고 모조리 동사할 지경인가요?"

"웬걸요. 돈 책은 다릅니다."

이건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해서 따지듯이 물음을 던졌다.

"돈 책이라니요? 그게 뭔데요?"

"그 왜 있지 않습니까? 주식이나 투자로 돈을 벌고 자산을 늘리는 수단이나 방법을 다룬 책 말입니다. 그게 돈책 아니고 뭡니까?"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미욱한 주인에게 얼어 죽을 지경인 손님은 말을 덧붙였다.

"그 가운데는, 자그마치 100여만부가 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곤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글쎄 듣기에 따라서는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순리고 지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오죽 돈들이 궁했으면 그랬을까?' 하고 넘어 갈 수도 있을 법했다. 그걸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한 알뜰한 노력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합세는 못해도 격려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곱고 예쁘게만 받아들이기는 좀 무엇했다. 주식이니 투자니 하는 것에 열을 내는 사람이 정작 궁하기만 하는 축에 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아주 많이 가졌거나 아니면 장차 많이 가질 수 있을 바탕을 어느 정도는 갖춘 사람이라야 주식이니 투자니 하고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책'의 베스트 셀러는 이미 가진 자와 장차 가질 수 있는 자들의 일방적 욕망, 균형감각을잃고 외곬으로 한 쪽에만 쏠린 욕망의 증표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느껴졌다.

한국인 성년들 전체로 보아서는 평균 잡아서 1년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사서 읽는다는 통계를 이 근자에 본 적이 있다. 이것은 모르긴 해도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가 될 것 같다.

따라서 돈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 것은 보편적 교양, 다양한 지식과 경륜을 찾아서는 거의 책이 읽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인성도 정서도 식견도 나몰라라고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돈은 경제만이 아니다. 사회적 경륜(經綸)이기도 한다. 인생관이며 세계관에 걸리게 되고 세상살이의 이치로도 작용하게 된다. 또 돈은 부(富)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최후의 윤리이기도 한 것이다.

고려조나 조선조 시대에 돈은 '공방(孔方)'이란 별명으로 일컬어졌다. 엽전에는 안으로 네모(방)난 구멍(공)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 겉모양이 둥근 것까지 합쳐서 돈의 전체 모양새를 말하자면 돈은 '원방(圓方)'이 된다.

이것은 돈이 하늘 둥글고 땅이 네모난 이치, 곧 '천원(天圓) 지방(地方)'의 이치를 본떠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돈이 천지처럼 귀하다는 것이지만 그 말고도 또 다른 뜻이 거기 담겨 있다. 온 세상을 방정(方正)하게, 곧 올곧게 또 둥글게, 둥글둥글 고루고루 잘도 돌아다니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다. 우리 말, '돈'은 잘 돌고 돌아서 비로소 돈임을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데 사람이 돈에 너무 탐착하면 돈은 더 이상 경륜도 못 되고 윤리도 못된다. 공방으로서 돈이 지녔던 의의며 기능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돈책'만 지나치게 나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양의 책' '지성의 책'도 함께 읽어야 돈이 제대로 세상을 돌고 돌 것이고 따라서 세상도 제대로, 바르게 돌게 될 것이다.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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