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출판자본이 다양성의 후원자라고?  [05/01/20]
 
최봉수씨 기고에 대한 반론

문화일보 북리뷰 ‘이 책 어때요-출판편집자의 선택’ 필진 중 한 명인 최봉수 랜덤하우스중앙 사업운영부 실장은 지난 7일 게재된 ‘2005년 출판계 화두는? ’이란 글에서 근래 논란이 돼온 출판계의 자본 집중을 출판 다양성의 장애요소로 보는 것은 편견이며, 오히려 대형 출판 자본의 형성이 출판의 다양성은 물론 경쟁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문학과지성사 김수영 주간이 반박의 글을 보내와 게재한다. [ 편집자 ]

지난해 출판계 이슈 중 하나는 몇몇 출판사들이 3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형 출판사 시대의 막이 올랐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출판계에선 빈익빈·부익부 현상의 가속화, 소형 출판사들의 생존 위기,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 출판 다양성의 희생 등 여러가지 우려가 나왔다. 반면에 대형 출판 자본의 출현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는 너무 드물었던 것일까? 최봉수씨는 문화일보에 거대 출판 자본을 변호하고 이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려는 글을 실었다.

먼저 최씨의 논지가 매우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는 랜덤하우스가 미국에서 누리는 엄청난 시장 점유율을 인용하며 “출판 자본의 집중화로 출판의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고 썼다. 이같은 미국의 상황이 전세계적으로 예외적인 경우지만 어쨌든 사실 관계는 맞으니 그의 말을 인정하기로 하자. 그러나 최씨는 다양성의 위기가 ‘아직 우리 문제가 아니다’고 말하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출판 자본의 대형화가 오히려 출판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한 출판사가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베스트셀러 ‘한 방’으로는 불가능하고, 주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다양한 장르를 개발해야 한다며 대형 출판 자본은 ‘다양성’을 통해서만 유지된다고 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거대 출판 자본은 다양성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후원자인 셈이 된다. 과연 그럴까?

아마 그는 출판의 다양성 문제를 오해한 듯하다. 출판의 다양성은 출간 장르, 종수와 같은 양적인 지표와는 관련이 없다. 다양성은 양적 가치가 아니라 질적 가치며, 사람의 다양성, 자본의 다양성, 개별 출판사의 조직 문화와 출판이념의 다양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 집중은 다양성의 장애 요소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과 달리, 자본의 집중이야말로 다양성의 큰 장애 요소다. 물론 자본 집중이 절대악이 아니듯 다양성 역시 절대선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출판 자본의 집중이 출판의 다양성에 커다란 위협임은 인정해야 옳다. 출판은 자본을 통해 자본에 대항하는 문화 영역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 증명을 완수할 수 있다.

최씨는 또 자본의 집중화가 출판계의 세대교체를 가져올 것임을 암시하고 옹호했다. 시의적절한 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그의 주장처럼 “출판계에 ‘군림’하고 있는 사람들이 90년대 초반에 들어온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은 아니다. 유감스럽지만 이는 세대교체의 아무런 명분도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최씨는 월 1~2종 내는 출판사가 국내에 300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전체의 10% 출판사가 총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셈이므로 출판 자본의 집중화에 대한 우려는 과장됐다고 말했다.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계산법이다. 출판 통계에 의하면, 연간 16종 이상을 출간하는 출판사 수는 462개, 연간 21종 이상을 출간하는 출판사는 349개이다. 그는 아마도 대략 연간 24종 이상을 출간하는 출판사만을 언급한 듯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연간 24종 이하를 출간하는 출판사를 출판 통계에서 제외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오히려 1년내내 책상 앞에 앉아서 원고와 씨름하면서 고작 서너권밖에 책을 내지 못하는 많은 출판인들, 그들의 가난한 분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수영 / 문학과지성사 주간 )=문화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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