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코 출판사 장은성 사장  [05/01/13]
 
[2005 희망의 문화인 ⑷] 그물코 출판사 장은성 사장

“4년전 첫책을 낼 때에 비하면 시장이 많이 달라졌어요.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같은 책은 1만부가 팔렸지만 지금 그 책을 낸다면 1000부나 나갈려나.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힘들지만 특히 인문시장은 거의 죽어버렸어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생태환경 전문 출판사 ‘그물코’의 장은성(36) 사장. 출판사 창고에서 재고정리 담당으로 출발한 그는 8년만에 선배가 운영하는 사무실 한켠을 빌려서 독립했다. 2002년 3월에는 첫책 ‘녹색시민…’을 냈다. 폭발적인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해마다 꾸준히 7∼8권씩 알찬 책을 만드는 곳으로 입지를 굳히는가 했더니,그만 지난해 중소규모의 출판사들을 덮친 사상 최악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려버렸다.

처음에는 집에 가져가는 생활비가 줄더니,달랑 한명 있는 직원의 월급도 제때 나가기 어려워졌고,전화요금을 못내 사무실 전화가 끊겨버렸다. 종이 살 돈이 없어서 준비해둔 신간이 늦어지는 일도 있었고,아예 책을 못찍는 경우도 생겼다. 지난해 봄 생태주의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의 평전을 원고까지 모두 끝내놨지만 종이값이 모자라 미적거리고 있던 차에 다른 출판사가 그만 먼저 출판해버린 것.

결국 지난해 8월에는 아예 서울 사무실을 비우고 충남 홍성으로 내려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졸지에 ‘빈민’이자 ‘생태난민’이 된 것이다. 도시에서의 삶에 진력이 나기도 했지만,역시 가장 큰 원인은 자금문제였다.

“소규모 출판사의 운명이죠. 하지만 시골에서도 출판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또다른 시도이기도 했어요.”

아내와 아이를 서울에 남겨두고 그와 함께 기획부터 편집,교정·교열까지 온몸으로 때우는 단 한명의 직원과 함께 보따리를 쌌다. 그래도 그보다 더 맹렬하게 환경사랑을 실천하는 직원인지라 ‘같이 도 닦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제대 후 처음으로 내복을 꺼내입었다. 홍성이 추워서가 아니라,환경서 출판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출판사 설립 3년 만에 이익은 커녕 ‘빚방석’에 오를 지경이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그나마 버텨나갈 힘을 얻는다. 변변하게 생활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난데없는 생과부 노릇이지만 남편이 하고 싶어하는 일임을 알기에 바가지 한번 안긁는 아내가 있고,사정을 알고 인세나 번역료를 받지 않는 저자와 번역가도 있다. 심지어 좋아지면 갚으라며 그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준 저자도 있었다고. 하지만 굳이 이런 고생을 감수할 만큼 출판이 가치있는 일일까.

“그건 제가 아니라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예요. 독자들이 사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끝나겠죠. 제가 만드는 책들이 한번 찍어서 휙 없어지는 책들은 아니더라고요. ‘자발적 가난’ 같은 책은 무수한 재테크 책들 틈에서 계속 주문이 들어와요. 그래서 우리끼리 ‘잡초같은 책’이라고 부르죠. 그게 출판을 계속하게 하는 재미예요. 많이 나가지는 않지만 죽지는 않는거지요.”

그는 지방생활에서 통해 자금난을 극복할 지혜를 얻고 있다. 지난 해에는 처음으로 배추를 심었고,장기적으로는 자급농을 할 생각이다. 적어도 굶지는 않을 수 있을 테고,생기는 돈으로는 책을 찍을 수 있을테니.

또다른 복안도 있다. 다른 출판사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고급화를 추구한다지만 둘이 꾸려나가는 회사에서 대형 출판사를 따라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그는 반대로 올해 ‘작은 책’으로 승부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문고판을 만든다는게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아이디어다. 같은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 홍순명 선생의 주례를 들었더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 한번 하면 사라지고 마는 주례사 몇 건을 모아 책으로 만든다는 것.

“책을 내기 전에 몇부나 팔릴지 계산하지 않아요. ‘필요한 책이면 낸다’는 게 제 철칙이죠. 2월에는 ‘청소년을 위한 간디 평전’이 나옵니다. 올해라고 딱히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지만,그래도 책은 냅니다. 하하.”

희망이 보여서가 아니라 가슴에 희망을 품고 있기에 그는 계속 책을 만든다. 그가 펴낸 책 ‘자발적 가난-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더 큰 행복’이 바로 그의 이야기인 듯 싶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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