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해외 출판시장 전망 [05/01/11]
 
[출판] 더 치밀한 취재·더 놀라운 상상력 세계 시장 강타!

2005년 해외 출판시장 전망

한때 일상적인 것과 차별화한다는 차원에서 ‘낯설게 하기’가 문학인들의 무기와 방패 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때는 ‘중심’과 ‘기본적’ 틀을 해체하여 어떤 것이 정답이고 메시지인지를 이해하기 어렵도록, 정신 못 차리게 하는 ‘틀 없는 틀’이 문학적 장치로 이용됐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역사적 사실과 같은 ‘낯익은 것’에 ‘낯섦’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혼합된 기법을 이용한 형태의 새로운 소설양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소설 분야에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단테클럽’으로 미국의 대형서점 중 하나인 보더스가 “가장 실험적이면서 진취적인 작품을 선봬 세계 문단과 출판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작가에게 준다”며 ‘올해의 작품상’을 수여한 작가 매튜 펄. 그는 19세기 미국 문단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에 탁월한 상상력을 씨줄과 날줄처럼 섞어 품격 높게 완성한 ‘단테클럽’에 이어, 올 하반기엔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였던 애드거 앨런 포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소설 ‘포의 그림자’를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포 자신이 소설 속에서 창조해 냈던 명탐정 뒤팽을 불러내, 실존인물이었던 포의 죽음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상황을 설정했다.

펄의 에이전트인 윌리엄 모리스사의 트레이시 피셔씨에 따르면, 현재 펄은 이 소설의 탈고를 위한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해외 번역판권은 ‘단테클럽’의 판권료(선인세)를 훨씬 능가하는 조건에 이미 한국(황금가지)을 포함한 10여개 나라에 팔렸다고 한다.

올해 미국에서 출간될 굵직한 역사 추리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캐롤&그라프사의 윌 볼리엣씨는 “그간 야심차게 준비한 칼렙 카(Caleb Carr)의 소설 ‘이탈리아인 비서관’을 오는 5월에 출간할 계획”이라며 “이 소설이 올해의 리딩 타이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벌써부터 큰소리치고 있다. 이 소설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측근 두 인물이 의문의 살인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A.C. 도일이 창조해 낸 명탐정 셜록 홈스와 실존인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유전학·생물학·물리학자 왓슨 박사가 빅토리아와 메리 두 여왕시대를 넘나들며 시공을 초월해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상관관계를 풀어가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렇듯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전세계 소설시장은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의 틀 위에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가 서로 결합되어 완성된 유형의 소설이 큰 트렌드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 스토리’ ‘숀 코너리 자서전’ 등 주목

그렇다면 경제·경영·처세서 분야에는 어떤 움직임이 있을까. 해외 시장에서는 경제·경영서를 출간해 오던 출판사는 그대로 그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여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다른 장르 중심의 책을 내오던 출판사들 중심으로 보면 약간의 변화가 예상된다. 변화의 선두주자로는 랜덤하우스의 계열사인 밴텀델 출판사를 꼽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대중 소설 중심으로 책을 내오던 이 출판사가 그간의 분위기를 깨고 나선 것이다.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구글 스토리’. 올 가을 출간 예정인 이 타이틀의 저자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경력에 뛰어난 글솜씨를 지닌 저명한 인물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인터넷 온라인 업체 구글의 창업자인 서지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회사를 설립했는지에 대한 배경으로부터 그들의 고유한 경영전략에 이르기까지 그간 알려지지 않은 구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총체적으로 망라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밴텀델사의 해외 저작권 담당 차장인 리사 조지씨는 “이 타이틀은 올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타이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하드커버 75만부, 페이퍼백 수만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해, 이 출판사가 이 타이틀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이러한 외도 아닌 외도는 또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 기독교 관련서적 출판 그룹인 넬슨사가 그 예다. ‘사람들로부터 승리하기’를 선보인 이 출판사의 ‘카드’는 경영·처세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존 맥스웰이다. 이 출판사는 맥스웰의 다음 책 ‘선택은 당신의 것’을 4월에, ‘사람들에게 승리하는 25가지 방법’을 여름에 출간할 예정이다.

미국의 출판 관련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 2003년 9월 22일자는 “존 맥스웰이 넬슨사와 다시 정식 계약을 맺고 책을 출간하게 될 것”이란 소식을 전하면서 이 출판사의 대표 발행인인 조너선 머크씨의 입장을 이렇게 소개한 바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독교 출판시장에서 튼튼한 기반을 쌓았다. …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미국, 더 나아가 세계의 출판시장 중심으로 나갈 것이다. 왜냐면 기독교 시장보다는 일반시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일환으로 맥스웰을 12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재영입했다. 맥스웰은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브랜드를 가지고 비즈니스서를 꾸준히 내며 시장의 중앙으로 진입하는 데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할 작가다.”

이 같은 이야기는 “출판계에 호황이 오지 않는 한, 출판 영역을 확대하거나 경제·경영·처세서를 내 불황을 이겨보려는 몸부림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기와 자서전 분야에서는 정·재계 거물급 인사의 도서들이 맹위를 떨치며 해외 서점가를 장악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분위기에 다소간 변화가 있을 조짐이다. 그 중심에 영화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영화예술인들의 자서전이 당당히 자리하게 될 것 같다. 제인 폰다와 숀 코너리의 자서전이 그 기대주들이다. 폰다의 에이전트인 장클로&네스빗사의 컬랜 스탠리씨는 이 책에 대해 “오는 4월 26일에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될 예정”이라며 “제인 폰다의 자서전 ‘나의 삶(My Life So Far)’의 해외 판권은 현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등에 팔린 상태”라고 전했다. 제니퍼 로페즈와의 주연으로 미국에서 올 5월에 개봉 예정인 영화 ‘몬스터 인 로(Monster-in-Law)’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제인 폰다는 이번 자서전을 통해, 연기수업을 받던 시절에서 영화 제작까지, 여러 남자와의 결혼과 파경, 그리고 독립된 삶을 살기까지, 반전운동~페미니즘~어린이 변호에 이르기까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07년엔 숀 코너리의 자서전이 영국의 하퍼콜린즈출판사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 모든 영화 출연을 거부한 채 저널리스트 헌터 데이비스와 함께 자서전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코너리는, 이 책을 통해 배달소년에서 할리우드의 스타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여과없이 담아낼 예정이라고 한다. 2006년 탈고 예정인 이 책의 해외 판권은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미 계약되었다.

한국 출판계는 과연 어떤 변화와 쇄신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것인가. 경제불황 탓만 할 때는 이미 지난 것 같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귀 바짝 세우고, 눈 크게 뜬 다음 나를 보고 세계시장을 넓게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2004년의 다 빈치 코드를 노리는 2005년의 주목해야 할 책들>

1. 포의 그림자 포의 소설 속 인물 뒤팽이, 실존인물이었던 포의 죽음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2. 이탈리아인 비서관 소설 속 인물 셜록 홈스와 실존인물 왓슨 박사가 밝히는 살인사건

3. 구글 스토리 구글 창업자인 서지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모든 것’ 샅샅이 담아

4. 나의 삶 연기수업~영화제작~결혼·파경~페미니즘… 제인 폰다의 인생 그린 자서전

5. 숀 코너리 자서전 배달소년→할리우드 스타 된 파란만장한 삶 그려… 2007년 출간 예정


(이구용 임프리마코리아 에이전시 부장)=주간조선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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