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돌 ‘현대문학’ 양숙진 대표 [05/01/09]
 
월간 ‘현대문학’이 올해로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50줄의 나이테를 두르는 동안 둥치의 허리도 그만큼 굵어져 이달에 지령 601호를 기록했다. 단 한번의 결호도 없이 ‘개근’하며 달려온 성적표다.

현대문학은 그간 문인 563명의 산파 노릇을 하며 그 장구한 세월을 이어왔다. 이 문예지로 등단한 뒤 평생을 글품으로 생계를 일군 한국문학사의 재주꾼들 면면은 일일이 열기하기조차 벅차다.

1997년부터 현대문학 편집인 겸 주간으로 일하고 있는 양숙진 대표(57)를 서울 잠원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소싯적 문학에 마음 한자락을 뺏긴 사람치고 이 문예지에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여서 반백년 세월에 대한 감회부터 짚고 들어갔다.

“이렇게 50년을 버틴 걸 보면 우리나라에 문(文)을 존중하는 맥이 흐르고 있지 않나 싶어요.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아 여기까지 왔지요. 그래서 느끼는 책임감도 큽니다. 어떤 새로운 편집을 선보일 것인가, 또 젊은 작가들이 원하는 현대문학의 위상이 뭔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누구는 현대문학이 너무 현대적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좀 진부하다고 질책이다. 작가나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 평가가 극단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아래 위를 두루두루 아우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루하지도 현대적이지도 않다는 외부의 평가를 듣곤 하는데, 그건 현대문학 입장에선 안 좋은 거예요. 현대문학은 55년 1월 ‘현대성’을 표방하며 첫발을 내디딘 문예지거든요. 그래서 원로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각각의 의견을 잘 조화시키되 현대적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살려 나가는 게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문학은 지난 세월 동안 기(氣)가 흥한 적도 있고 쇠한 적도 있다. 여러 차례 분절의 과정이 있었다. 박경리의 스승이었던 조연현 선생이 주간을 맡았던 초창기의 열기는 그 후로 잘 살아나지 못했다. 양대표는 “조연현 시대 이후 현대문학을 이끌어가던 ‘주간’이 거의 2년 간격으로 교체되면서 한동안 어떤 구체적인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8년 전 양대표가 새 주간으로 들어오면서 현대문학은 이전과 차별되는 또 한번의 분절을 거쳤다는 게 문단의 대체적인 평가다. “공(功)으로 내세울 만한 것과 과(過)로 내칠 만한 아쉬운 점은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현대문학이 젊어졌다는 것이죠. 과거에 시도하지 않던 것을 많이 시도했어요. 이번 호를 예로 들면 ‘미래를 위한 퓨전 에세이’라는 특별 코너를 마련했지요. 그림을 텍스트화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시도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재정적 뒷받침이 안 돼 시나 소설 창작선을 좀더 많이 내지 못한 거라고나 할까요.”

그는 재능있는 사람에겐 편견없이 지면을 내줄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호에 마광수 교수의 글도 실려 있다. 그는 “마교수가 (음란물 시비로) 법정에 섰을 때 그에게 제일 먼저 원고를 청탁한 곳이 현대문학”이라고 말했다.

현대문학호(號)의 선장인 그는 장차 이 문예지의 항로를 어떻게 조정하고 싶어하는 걸까.

“앞으로 세계 유명작가들을 지면에 많이 끌어들이려 합니다. 우리 문학이 세계에 못 나가는 이유가 문학의 보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외국작가들의 글을 통해 국내작가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요. 그 사전작업으로 최근 몇년간 국제도서전을 쫓아다니며 현대문학 영문 홍보지를 외국작가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끔씩 창간사를 읽는다고 했다. “정신적 구도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둘러보면 문학이 죽어간다며 성급히 검은 장막을 둘러치려는 사람들 천지다. 그 어둠 속에서 그가 찾아낸 등대가 바로 창간사라고 양대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무정견(無定見)한 백만인의 박수보다는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옳은 판단력을 가진 단 한사람의 지지를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창간사 중에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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