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의 다양성 기반으로 차세대 인재들 활약해야”  [2005. 1. 8]

출판 편집인의 선택 - 2005년 출판계 화두는?

몇몇 출판 통계에 지난해 출판사들의 매출 실적이 소개되었다. 매출이 100억원을 넘는 출판사가 30개 남짓이고, 그들의 매출 합계는 500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등록한 출판사가 2만개쯤 되니, ‘우리 출판사 중 0.2%인 30개 출판사가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한다’는 결론이다. 마침 작년에 한국까지 방문한 미국의 원로 출판인 앙드레 쉬프랭의 경험적 경구를 자극하는 듯한 수치다. “출판자본의 집중으로 인한 출판의 다양성 상실”이라는….

그러나 우리 출판사 중 한 해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은 출판사가 전체의 93%에 이르고, 월 1∼2종 이상 내는 출판사가 300개 정도에 불과하니 엄격하게 말하면 ‘전체의 10%인 출판사들이 매출의 20%를 차지한다’로 바꾸어 결론을 내리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 참고로 미국의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의 시장 점유율은 17%인데, 올해 국내 상위권 5개 출판사의 매출을 다 합쳐도 5% 내외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출판자본의 집중화로 출판의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아직 우리 이야기가 아닌 듯싶다. 우리의 약 7배 정도가 되는 일본 출판계에서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의 매출이 우리 돈으로 약 2조원 정도가 되니 국내 최대 출판사의 적정 매출 규모는 적어도 3000억원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 나온 김에 매출 100억원을 하려면 100종의 책을 1만7000부씩 해서 170만부를 팔아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종당 평균 판매부수는 3000부 정도다. 어느 날 밀리언셀러를 터뜨려 100억원 매출 출판사로 단숨에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판매 중인 책을 1000종 이상 가져 나가지 않으면 100억원대 출판사를 너머 500억, 1000억원 매출로 나갈 수 없다. 지금 2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출판사는 4∼5개 정도다. 이 중 몇 개의 출판사만이 3∼5년 내 1000억원 매출 규모로 성장해갈 것이다. 관건은 ‘한 방’이 아니라 주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장르를 얼마나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출판업의 구조상 자본의 확대는 출판의 다양성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한 방만 노려서 1000억원을 만들 순 없다.

그래서 자본의 집중을 다양성의 장애요소와 등식화하는 접근은 편견이다. 자본의 영세성만이 출판의 다양성을 담보한다는 논리만큼이나 근거가 없다. ‘출판이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면 돈 되는 책만 낸다’는 전제로 주장한다고 해도 현실과 다르다. 랜덤하우스와 고단샤의 세일즈 퍼포먼스(sales performance)만 봐도 신간 중 손익분기점에 미달하는 도서가 전체의 70∼75%를 차지하고, 이를 적정 퍼포먼스로 매뉴얼하고 있으니 말이다.

매출을 늘리든 출판의 다양성을 펼치든 결국 사람이 한다. 그러나 우리 출판 동네는 90년대 초반에 밀려 들어온 운동권 출신들이 지금까지 군림(?)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40대다. 이제는 시스템의 과학화와 경영의 합리화 개념으로 출판업을 재해석할 줄 아는 다음 세대의 인재들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수익성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집하고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야 어느 인재가 미래에 투자하겠는가?

2005년 새해, 진실로 출판인들이 머리를 맞댈 지점은 바로 여기다.


최봉수 (랜덤 하우스중앙 사업운영부 실장)=문화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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