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절 가난은 人生의 힘 [2005. 1. 1]

등산을 해보면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서 다칠 위험이 훨씬 더 많다. 빠른 것하고 쉬운 것하고는 다르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작년에는 오랜만에 소설 한 편 쓴다고 김매듯이 힘겹게 보냈다. 50년대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해를 꼬박 그때를 살다 오고 나니 내 생애가 바로 우리의 근세사였구나 싶었다.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수치스럽지도 않다. 금년이, 오늘이 너무도 빨리 역사가 된다는 걸 알아먹고 나니, 금년을 열심히 제대로, 작년에 한 실수를 되풀이 안 하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생각이 든다.

50년대 그 시절엔 담 너머로 음식 냄새가 솔솔 넘어오고, 사람의 기척이 들리고, 뉘 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서로 사정이 빤했다. 뉘 집에서 김치나 부추 부침처럼 이웃에 냄새를 풍길 별식을 할 때면 으레 넉넉히 부쳐서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월급날 고기 근이라도 사게 되면 아이들이 아무리 숯불 피워 구워먹고 싶어해도 어른들은 냄새나지 않게 냄비에 볶아먹자고 했다. 나눌 수 없는 건 냄새라도 안 피우려는 이웃 간의 배려가 곧 정이 아니었을까. 우린 이런 정으로 가난을 건넜다.

젊어서 가난을 겪었다는 게 만만치 않은 힘이랄까, 저력이 되어 남아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IMF 때였던가, 내 친구 할망구한테서 들은 얘긴데, 돈 잘 버는 자식들 덕에 풍족하게 살던 집안이 별안간 기울면서 식구들이 어쩔 줄 모르는 걸 보면서 자기는 하나도 겁이 안 날 뿐 아니라, 살맛까지 나고 씩씩해지더라는 것이었다. 노욕도 가지가지라고 웃어넘겼지만 지지리도 못 사는 시절을 겪었던 이들에겐 요즈막의 물질적 풍요가 전적으로 대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어쩌면 이렇게 잘 살게 되었을까, 휘황한 겉보기가 꿈만 같으면서도 아직 돈 벌 나이가 안 된 미성년의 씀씀이나 지천으로 내버리는 음식이나 입성을 보고 있으면 문득 하늘 무서운 생각까지 들 적이 있다. 풍요의 그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통으로 겨우겨우 사는 사람도 잘 상상이 안 되는 극빈지대에 버림받은 청소년,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이 도움을 호소하는 소리를 매스컴을 통해 듣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그들이 도움 받지 못하고 그 지경까지 가게 된 사연을 살펴보면 결코 제도가 부족해서도 인정이 매말라서도 아니다. 그런 제도나 기관이 없는 게 아니라 다만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도움을 청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고, 도움을 청해도 안 들리게 인가나 인기척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도 있다. 복지제도도 제도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일정한 자격을 요하고 수속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그렇듯이 규격에 맞게 가난한 게 아니다. 틀에 끼우거나 자로 잴 수 없이 유동적이고, 자존심 때문에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방어적인 가난도 있다. 그들에게 제도에 앞서 다가가야 할 것은 인기척, 정이 아니었을까.

세금을 잘 내면서 국가에 분배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좋고, 자선 단체에 내는 기부금 영수증을 면죄부처럼 챙겨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만, 내 이웃이나 친척 중 눈치껏 보살피고 안부를 물어야 할 이들을 마음으로 챙겨가지고 있으면서 자주 오가고 정을 주고받아야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너무 올려다보고만 살았지 내려다보고 살 줄 몰랐다.

새해의 작은 희망은 올려다 볼 때보다 내려다볼 때 더 잘 보일 수도 있다.


(박완서 소설가)=조선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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