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출판계 흐름-대구매일신문 [04/12/28]
 
"역사에 상상력을 양념하라"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올해 출판계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책값은 가계 지출의 '우선 제외 대상'이 됐고 좀처럼 불황을 타지 않는다는 아동서적 시장까지 움츠러들었다. 이 가운데 2004년 유행을 주도한 책들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 역사적 사실(fact)에 상상력을 버무린(fiction) '팩션(faction)'류 작품이 각광을 받았고 외국 작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땅테크' 관련 책들이 주목을 받은 점도 눈길을 끈다. 올 한해 유행을 주도했던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2004년 출판계의 흐름을 짚어본다.

영혼의 위안을 위한 책

◇연금술사=팍팍한 현실을 잊고 영혼의 위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좋은 약이 됐다. 이 책은 감성적인 문체와 잠언 같은 경구로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고 궁금해 하는 주제를 감칠맛 나게 풀어냈다. 교보문고가 21일 발표한 '2004 교보문고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에 따르면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문학동네)는 올 한해 가장 많이 팔린 책에 올랐다. 이 소설은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스페인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순간순간이 만물의 언어와 만나는 눈부신 순금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코엘료의 책은 '연금술사' 외에도 '11분'(문학동네)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문학동네) 등이 인기를 끌었다.

100만 부 넘는 경이적 기록

◇다빈치 코드=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팩션'류 작품이 2004년 서점가를 점령했다. 사실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을 총동원한 팩션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식의 즐거움과 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준다는 점이 특징. 올 하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는 1만 부만 팔려도 '대박'이라던 올 출판가에서 100만 부를 넘나드는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보였다.

'다빈치 코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을 소재로 한 소설. 초기 가톨릭에 대한 도발적 해석을 비사(秘史), 미술사, 인류학과 기호학에 관한 지식으로 뒷받침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밖에 '천사와 악마'(댄 브라운), '단테클럽'(매튜 펄), '진주 귀고리 소녀'(트레이시 슈발리에), '4의 규칙'(이안 콜드웰 외) 등도 올해 대중의 사랑을 받은 팩션. 김영하의 2004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검은꽃'도 팩션 계열의 소설이며 김탁한의 '불멸의 이순신', '방각본 살인사건' 등도 같은 계열이다.

우화 형식의 자기계발서

◇선물=불황을 이기는 힘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스펜서 존슨이 내놓은 '선물'은 한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는 여정을 그린 우화 형식의 자기계발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현재'라는 평범한 선물이 일생을 좌우하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는 것.

상반기 최대 화제작인 사이쇼 히로시의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도 습관의 변화를 강조한 실용서. 지난해 가을 출판됐지만 올 들어 탄력이 붙으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유행시켰다. 이 밖에도 '10년 후 한국'(공병호`해냄출판사), '메모의 기술'(사카토 켄지`해바라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켄 블랜차드`21세기북스) 등 개인의 변화를 권하는 책들이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비전' 갈망하는 독자에 어필

◇칼의 노래=앞이 보이지 않는 불황에 미래 비전을 갈망하는 독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위기극복형 인물의 자서전이나 평전, 자수성가한 국내 기업 CEO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는 난세의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에 주목해 사랑받은 작품. 경제 등 사회전반에 걸친 '차이나 쇼크'에 힘입어 '후진타오'(런즈추), '덩샤오핑 평전'(벤저민 양), '송미령 평전'(진정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칸트 평전'(만프레트 가이어), '체 게바라-20세기 최후의 게릴라'(장 코르미에) 등이 선보였다. 5천 부 판매를 예상했던 '덩샤오핑 평전'은 5만 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땅투자 관련서 쏟아져

◇집 없어도 땅은 사라=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으로 아파트 등 주택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눈 밝은 사람들이 땅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땅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땅투자 관련 책들이 많이 선보였다. 땅테크를 다룬 책은 적어도 1만 부는 팔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 '집 없어도 땅은 사라'(김혜경), '한국의 땅부자들'(조성근) 등이 10만 부를 훌쩍 넘겼고 '돈 되는 땅 따로 있다'(박용석), '사야 할 땅 팔아야 할 땅'(안명숙), '적은 돈으로 큰 돈 버는 땅 투자법'(곽창석) 같은 땅 재테크 실용서들도 꾸준히 팔렸다.

한자 공부와 놀이 결합

◇마법천자문=지난해 11월 1권이 출간된 '마법천자문'(아울북)은 1년 만에 200만 부를 넘어섰다. '서유기'의 이야기 구조를 빌려와 한자를 저절로 익히는 방식을 취한 이 시리즈는 학습과 놀이를 결합한 작품. 한자능력시험 5~8급에 해당하는 500자 가운데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한자의 뜻과 소리를 재미있게 공부한 것이 성공 비결. '삼국지 마술천자문', '교육부 지정 상용한자 1800', '한자가 술술 외워지는 수수께끼', '한자공부 세계명작', '재미있는 명작 술술 되는 한자', '살아 있는 한자 교과서' 등이 잇달아 나와 어린이들의 한자학습을 도왔다.


(대구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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