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비도 경기 따라 '실용'에 올인  [04/12/26]
 
지갑이 얇아지면 얇아질수록 지적인 욕구는 고개 숙이는 걸까. 지난 한해 국내 출판계는 책의 분야를 불문하고 ‘실용’이라는 한 지 코드로 수렴했다. 출판사들은 경제경영서를 앞세운 실용서, 교양서 만들기에 바빴고, 독자들도 처세나 가벼운 읽을 거리를 주로 찾았다.

학습서 시장에서 ‘마법천자문’ 등 만화 형식을 통해 교양전달이나 학습효과를 노리는 스토리 만화가 인기를 끌고, 문학에서 ‘정통 문학’보다는 역사적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이른바 ‘팩션(faction)’이 주도한 현상도 따지고 보면 좀더 가볍고, 달콤하게 맛나는 읽을 거리를 찾는 독자 취향의 산물이다. 인문학쪽의 베스트셀러인 ‘미쳐야 미친다’도 넓은 의미에서 실용 코드가 접목된 고전 다시 읽기라고 할 수 있다.

교보문고 2004년 연간 베스트셀러 집계를 보면 불황이 아무리 깊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소설을 가장 많이 사서 읽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연금술사’ ‘다빈치 코드’ ‘칼의 노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잘 팔린 책의 거의 절반이 국내외 중, 장편 소설이다.

이중에서 주목할 것은 ‘다빈치 코드’와 ‘칼의 노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진가를 국내에서도 유감 없이 입증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이라는 기독교에 대한 도발적인 해석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연관시킨 상상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팩션’ ‘지식소설’ 등으로 불리는 이런 유형의 소설들은 이후 ‘천사와 악마’ ‘단테클럽’ ‘진주 귀고리 소녀’ ‘4의 규칙’ ‘임프리마투르’ ‘곤두박질’ 등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칼의 노래’의 성공은 올 한해 내내 이어진 ‘이순신 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TV 드라마 방영이 촉매역할을 하긴 했지만, 믿음직한 지도자에 대한 사회적인 갈망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저변에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선물’ ‘설득의 심리학’ ‘아침형 인간’ 등 자기계발서가 연중 계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것은 그만큼 경제경영서 시장의 입지가 두터워졌다는 증거다. 경제경영분야의 책들은 ‘폭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한해 계속 쏟아져 나왔고, 분야별 판매량으로 따지면 아마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특히 올해는 리더십과 자기계발 서적에 더불어 주요 재테크 수단의 하나로 떠오른 부동산 투자관련서들이 관심을 끌었다. ‘집 없어도 땅은 사라’ ‘한국의 땅부자들’ ‘돈 되는 땅 따로 있다’ 등이 꾸준히 팔렸다.

‘중국 대망론’이 갈수록 힘을 얻어가면서 중국을 알자는 책이 적잖게 출간되고, 한자공부 관련서들이 많아진 것도 눈에 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는 못 되지만 만화로 한자공부를 돕는 ‘마법천자문’ 시리즈는 지난해 11월 첫 출간 이후 지금까지 200만 부 이상 팔리는 대박상품이 됐다.

이밖에 출판계 소식으로는 불황의 여파로 할인율을 높여 변칙적으로 책을 공급하는 서점 도매상들이 줄줄이 부도난 것이나, 해외 대형출판사의 국내 진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랜덤하우스중앙의 설립,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의 출범과 준비작업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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